慶州大學(경주대학) 首席(수석)한 朴封奎(박봉규)군

  <시험을 잘 보았다고 생각했으나 기대보다 저조한 예시성적과 높은 경쟁률로 首席(수석)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 영광은 지난 악몽의 3년간을 하루같이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 돌리고 싶습니다.>
  평균 10대 1이 넘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경주대학의 감격적인 첫 수석합격의 영예를 차지한 朴封奎(박봉규)(經營(경영)․大邱靑丘高卒(대구청구고졸))군은 이번 수석합격이 전혀 예상 밖의 수확이라고 겸손해 한다.
  77年 高校(고교)를 졸업한 이래 계속 입시에 실패, 3修(3수)까지 하며 刻苦(각고)의 노력으로 수석합격의 영광을 얻었으나, 본인은 이를 ‘상처뿐인 榮光(영광)’이라며 웃는다. 그러나 한때의 좌절과 방황을 극복한 오늘의 영광은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으로 전혀 우연은 아님을 주변 사람은 강조한다.
  불교宗立學校(종립학교)인 본교를 택하게 된 동기는 자신과 전 가족이 독실한 불교신도(특히 8촌 누님은 서울 삼선교 팔정사 주지로 계심)인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또한 경영학과를 志願(지원)하게 된 것은 3명의 ‘친한 고교동창’이 꼭 國家考試(국가고시)에 합격하자는 3인의 金石(금석)의 盟約(맹약)(?) 때문이었다고 밝히며 결국 이번 수석합격으로 그간 친구들에게 진 빚을 톡톡히 갚은 셈이라고 웃는다. <앞으로 신입생들은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으로 경주대 발전의 초석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학교당국에서도 빨리 정식 校舍(교사)를 완공하여 전 경주인의 마음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58년 大邱産(대구산), 회사원인 朴榮鳫(박영안)(53)씨와 林銀祚(임은조)(51)씨의 1남 2녀 중 외아들, 77년 大邱(대구) 靑丘高卒(청구고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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