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珉叔(강민숙)의 “風向(풍향)”을 읽고

本稿(본고)는 856號(호)부터 6回(회)에 걸쳐 연재된 短篇小說(단편소설) ‘風向(풍향)’에 대한 短評(단평)으로 專門家(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서술한 글로서 大學文學(대학문학)의 共感帶(공감대) 조성을 위한 독자, 작자, 필자의 共同硏究作業(공동연구작업)의 시도임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註>


  文學(문학)은 Platon이 지적한 바의 ‘3段階的(단계적) 模倣(모방)’이 아닌 ‘自然(자연)의 模倣(모방)’이다. 그리고 그것은 眞實(진실)이나 現實(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蓋然性(개연성)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문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想像力(상상력)일 것이며, 그 상상력은 作者(작자)의 直·間接的(직·간접적) 體驗(체험)의 産物(산물)일 것이다. 人間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간접경험이 더욱 많고 따라서 경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作品內(작품내)에서의 必然性(필연성)과 蓋然性(개연성)이 문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姜珉叔(강민숙)의 ‘風向(풍향)’은 간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兵士(병사)가 <로사 수녀>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미 제목에서도 암시되어 있지만 <나>는 <바람의 方向(방향)>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존재이며 <미리 써낸 답안지에 승복하는 것처럼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별다른 동요 없이 현실적이고 사무적인 일로 받아 들이>고 있다. <나>의 자기존재의식은 고공낙하훈련 도중 사고로 인하여 <가벼운 골절>을 입었으나 실제 病名(병명)은 <간암>임을 알고 나서 일어나게 된다. 그때에 <그녀>로부터 <修院(수원) 생활>을 하겠다는 편지를 받게 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順命(순명)>하려는 <로사 修女(수녀)>의 人生觀(인생관)에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고 만다.
  그러나 <그녀에게 보다 자신을 이해시키는 명분>으로 대구로 후송 가는 도중 풍대리에 들른다. 당연히 면회는 거절되고 <위로 받고 싶은> 내게, 신부는 그러한 능력은 단지 神(신)만이 지닐 뿐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하릴없이 돌아서면서 <너 역시 검은 두건의 뒷모습을 보이며 고요히 웃었을 것>이라고 이해되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며, <결국 우리가 구하는 것이 작은 불티처럼 사소한 위안>에 불과한 것이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대구로 가기 위해 여관을 나서는 순간 <미답의 땅을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설레>이며 그 감격은 <살아 있는 날 까지는 충분히 그 불씨를 간직>하겠다는 강한 意志(의지)로 발전한다.
  이상 개략적으로 살펴본 대로 “風向(풍향)”은 대단히 觀念的(관념적)일 수 있는 作者(작자)의 간접 경험을 특유의 깔끔하고 냉정한 文體(문체)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 특히 고공낙하훈련시의 내면적 갈등은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과 함께 절실한 리얼리티를 느끼게 해주고 있으며, 바람 부는 대로 順命(순명)하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는 作者(작자)의 力量(역량)을 확인케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消化(소화)되지 못한 경험으로 인한 감정의 흔들림이 곳곳에 보이며, 그것은 文章(문장)의 껄끄러움으로 드러나기도 해 눈살이 찌푸려진다. 더욱이 <높새바람>의 상징은 미흡했고 신중치 못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의 껄끄러움을 지녔더라도 “風向(풍향)”은 근래 ‘東大新聞(동대신문)’에 실린 어느 작품보다도 우수한 점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의 作品(작품)을 수차례 보아 온 筆者(필자)로서는 같은 小說(소설)을 공부하는 동료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건필을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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