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무거운 어둠이었다. 흐릿한 주위의 분위기에서 죽음의 냄새가 배어 나왔다. 여기저기 시체가 나동그라져 있었다. 벌써 며칠째 계속된 전쟁이었다.
  A국과 B국의 전쟁은 공장 중앙에 위치한 신전 제사장의 실종이 있고 난 약 한달 후부터 시작되었다. 그전에도 전쟁의 기운은 양국 사이에서 감돌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가뭄이 들었고 제사장이 실종되었다. 제사장의 실종은 양국에 있어서는 치명적이었다. 신전의 가장 깊숙한 중앙부에는 열쇠가 있는데 이 열쇠가 가뭄이나 홍수, 또는 질병까지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이 열쇠는 제사장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제사장이 죽거나 사라졌을 때 새로운 제사장에게 인계하도록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열쇠도 함께 제사장과 같이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은 신전의 내부는커녕 신전의 계단에도 발을 불일 수 없었으니 더욱 열쇠의 해방은 묘연했다.
  이미 고조되기 시작한 전쟁의 기운은 이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연일 수많은 젊은이가 죽어가고 있었다.
  광장에도 아침은 여지없이 찾아왔다. 시체들이 더욱 뚜렷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ㅎ은 시체사이를 거닐며 슬픔을 곱씹고 있었다.
  “왜 전쟁을 하는가? 가뭄에 시달린 백성을 구하려고? 식량을? 아니야, 가뭄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전쟁은 피할 수 없었겠지. 수상 각하! 당신은 누굽니까? 당신은, 당신은…”
  아침부터 태양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ㅎ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웃듯이 태양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하늘이 하얗게 흔들리고 있었다. ㅎ은 천천히 A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잠시 후 아홉시부터는 전쟁이 재개될 것이었다.
  양국 병사들이 광장에 약 십여 미터의 간격을 둔 채 횡대로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죽음의 공포나 긴장 따위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리만큼 초연한 그래서 흡사 세상일에 무관한 수도승의 표정을 닮아 있는 자세로 양국 사령관의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전원, 전부 준비 ―이”
  A국 사령관이 칼을 높이 치켜든 채 소리쳤다. 칼날이 햇빛을 받아 더욱 날카롭게 빛을 발했다.
  “전부, 준비―이”
  B국의 사령관도 소리 높여 외쳤다. 광장에는 태양의 열기와 함께 무거운 긴장감이 더위를 가중시키고 있었다.
  ㅎ은 창을 꼰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살아야 하는가. 이렇게 명목 없는 전쟁, 아니 몇몇 사람들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묵인된 살인을 해야 하는가. 아니 죽어가야 하는가. 이렇게 살아있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러나 살고 싶다.”
  ㅎ은 문득 생명에 대한 질긴 애착을 지닌 자신의 본능에 대해 서글픔을 느꼈다.
  A국 사령관의 손이 이제 막 신호를 보내려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B국의 진영 쪽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은 광장에서 B국 통로로 들어서는 곳으로부터 한 아이가 뛰어오고 있었다. 뒤에서 어머니인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병사들의 가슴을 파내고 있었다.
  “얘, 거기가면 안돼. 안돼. 이놈아 야단치지 않을 테니 어서 이리와. 어서”
  아이의 어머니가 미친 듯이 소리쳐 대고 있었다. 아이가 광장 한 복판, 그러니깐 양국 병사들 사이의 중앙에 들어서자 사령관의 손이 멈칫거렸다. 아이는 병사들 사이의 침묵에 질렸는지 혹은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울음을 그치고 제자리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이의 젖은 눈과 마주친 ㅎ은 전신의 힘이 풀어짐을 느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ㅎ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아이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멍하니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ㅎ은 아이를 안은 채 신전의 계단을 향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ㅎ의 등 뒤에서 덜그럭거리며 땅바닥에 병장기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전 쪽에서 제사장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ㅎ과 제사장은 계단의 맨 하단부에서 멈춰 섰다. 제사장이 양손을 벌렸다. ㅎ이 아이를 내밀었다. 제사장이 아이를 받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ㅎ의 가슴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과장에는 어느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껴안고 기쁨의 환성을 질러 대고 있었다.
  제사장이 신전을 향해 걸음을 떼놓으려 할 때 ㅎ이 다급하게 말을 건넸다.
  “저어, 그 열쇠라는 것이, 혹시…”
  제사장이 신전의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오르기 시작했다. 제사장의 가슴에도 어느새 폭우가 뜨겁게 뜨겁게 내리고 있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