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25일 18대 국회는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일본으로 반출되어, 현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을 촉구(促求)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문화재의 원산국 반환’이라는 유네스코 정신이 책임감 있게 구현되기를 기대하고, 과거사에 대한 의미 있는 반성의 표명(表明)과 함께 ‘조선왕실의궤’를 즉각적으로 반환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조선왕실의궤’의 환수(還收)를 위해 일본 정부와 적극적인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조선왕실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의 주요의식과 행사의 준비과정 등을 상세하고 적고 그림으로 만든 문서이다. 이는 의례의 본보기를 만들고 후대에 전하고자 도감에서 직접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록문서로서,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자랑스런 한국민족의 문화유산이다.
지난 2006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의 환수 성공을 토대로 우리는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의 환수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본 궁내청에 소장된 명성황후 장례의 기록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이다.
명성황후를 찌른 칼 ‘히젠도’를 일본 후쿠오카에서 본 것, 명성황후를 죽이고 국부검사를 자행한 기록 ‘에이조 보고서’를 입수한 것 등이 ‘의궤환수’ 운동에 더욱 사명감을 불어 넣어 준 사건이었다. 뻔뻔스럽게 남의 나라 국모를 죽이고, 국부검사를 자행하고, 장례식의 기록마저 약탈해간 채 아직도 일본 왕실도서관에서 소중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가 이 사건에 깊이 끌어 들였다고 할까?
명성황후 장례식은 ‘대한제국’의 성립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불안한 정치구조 속에서 2년 2개월이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조선의 슬픔은 ‘대한제국의 성립’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또한 명성황후의 장례는 조선시대 치러진 마지막 국장이자 황제국을 선포한 뒤 이뤄진 최초이자 마지막 장례이다. 그런 마지막 왕비의 슬픈 장례식에 대한 기록이 일제에 의해 일본 왕실로 옮겨진 것, 그것은 한 나라에 대한 모욕(侮辱)이자 되찾지 못한 인질과 같은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60년이 지나도록 되찾지 못한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우리는 지난 100년동안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잃어 버렸왔지만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그냥 먹고 살기에만 급급해 왔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지금 우리는 그간의 삶을 되돌이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되새겨 볼 시점에 서있다. 잃어 버린 것을 찾는 것은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 주인이 스스로의 입지를 다지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재 제자리찾기는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정신을 찾는 과정이자, 우리 스스로가 주인임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온 민족이 노예로 떨어졌던 100년 전의 슬픈 역사를 디디고 주인으로 우뚝 서는 운동으로써 문화재 제자리찾기가 자리 매김되기를 부처님 전에 기도한다. 조선왕실의궤 환수는 잃어버린 어떤것에 대한 간절한 민족적 갈망(渴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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