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挑戰)한다”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우리대학은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2010년 1학기 동대신문 인물면에서는 사회의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동국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인내의 예술, 위대한 행위, 언제나 최선이 요구되는 것, 삶의 방법. 이 4개의 단어가 공통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산악등반(山岳登攀)’이다.

등반에 대한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후배들에게 목표를 향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정신의 표상이 된 공을 인정받아 3월 1일자로 우리대학의 석좌교수에 임용된 박영석 동문을 만났다. 그에게 석좌교수가 된 소감을 묻자 “석좌교수가 되기에는 이른 나이인 것 같다”며 겸손해 했다. 그러면서 석좌교수 임명은 “모교와 계속해서 정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인생에 있어 모교 동국대는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어릴 적 막연히 가지고 있던 꿈을 실현(實現)시켜 준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 밟은 정상에서 꿈을 찾아

그가 산악인에 대한 꿈을 처음 갖게 된 것은 네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북한산 백운대의 정상을 밟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로도 그는 수시로 설악산, 오대산,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에 올랐다. 그러면서 검사나 의사를 꿈꾸는 주변의 친구들과는 다른 탐험가의 꿈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세계 여행 전집’을 통해 북극, 히말라야 등 대자연의 사진을 보며 탐험가를 동경하게 됐고 본격적으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산악 인생의 기반 동국대 산악부

박영석 동문이 동국대 입학을 결심하게 된 것은 시청 앞에서 동국대 산악부의 카퍼레이드를 본 순간이었다.
“동국대 산악부의 카퍼레이드를 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아, 이거다!’ 싶었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막연히 갖고 있던 탐험가라는 꿈에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순간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등반보다 동국대 입학을 위해 공부했던 게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 같다”며 동국대에 들어오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체육교육과 입학과 동시에 그의 목표였던 산악부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산악등반을 시작하게 된다.

“그 당시 동국대 산악부는 세계 최고의 산악부 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박영석 동문.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국대학합동 등반대회에서 동국대 산악부라고 하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며 그 당시 동국대 산악부의 위상을 설명했다. 50년 이상의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동국대 산악부는 박 동문 외에도 현재 대한산악연맹과 아시아 산악연맹 회장으로 재직 중인 이인정 동문 등 많은 유명 산악인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산악부 시절 40-50kg이 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등반을 하고, 암벽에 매달린 채 얼차려를 받는 등의 고된 훈련을 받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산악계의 살아있는 역사

그런 동국대 산악부에서의 고된 훈련 때문이었을까. 그는 산악계의 살아 있는 역사가 됐다. 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達成)했다. 산악 그랜드 슬램은 히말라야 14좌 완등, 7대륙 최고봉 등정, 지구 3극점 정복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엄청난 기록이다. 그의 그랜드슬램이라는 대기록은 지난 2005년 북극을 끝으로 완성됐다. 그는 GPS(위성항법장치) 수치가 90이 되는 순간 매우 기뻐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날뛰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다시는 북극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라는 그의 말에 북극 정복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후 “내가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는 사실보다 한국인이 해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며 한국인이 얼마나 대단한 민족인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박영석 동문은 그랜드슬램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도 또 다른 도전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히말라야 14좌에 코리안 루트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워 그것을 이루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는 작년 5월 에베레스트 등정로 가운데 최악의 난코스로 불리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한국인 최초로 코리안 루트를 개척(開拓)했다. 이는 에베레스트에 18번째로, 남서벽에는 미국, 소련에 이어 세 번째로 개척한 것이다.

가장 두려운 건 나 자신과의 타협

산을 오를 때마다 그는 두렵다고 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낙석도 눈사태도 아니다. 박영석 동문은 “등반을 하면서 나 자신과 타협(妥協)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타협하려는 자신이 두려워질 때마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감정을 버리고 기계처럼 움직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박영석 동문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도전해 세계 최고의 탐험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더불어 “석좌교수로서 동국 후배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후배들에게 “인생은 도전의 연속인데 요즘 후배들은 실패를 두려워 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확고한 목표(目標)가 없기 때문”이라며 “후배들에게 목표 설정의 중요성에 대해 강의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숱한 산을 넘어 왔지만 아직 도전할 많은 산이 남아있다는 박영석 동문. 그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의 한계는 어디일까. 끊임없는 도전으로 세계 산악 역사에 길이 남을 박영석 동문의 활약(活躍)을 그려본다.

박영석 주요 원정 기록

△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세계 최단기간 등정 △ 세계최초 6개월간 최다등정 히말라야 8.000m급 5개봉등정 △ 세계최초 1년간 히말라야 8.000m 급 최다등정 달성(기네스북 등재) △ 아시아 최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세계 최단기간 무보급 남극점 도달△ 북극점 도달 △ 인류최초 산악 그랜드 슬램 달성  (기네스북등재) △ 단일팀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횡단 등반 성공 △ 2009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신루트 개척

프로필
▲ 1992년 사범대 체육교육학과 졸업 ▲ 2003년 교육대학원 졸업 ▲ (주)골드윈코리아이사 ▲ 한국대학산악연맹이사 ▲ (사) 대한산악연맹 이사 ▲ 서울시 홍보대사 ▲ 교육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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