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회식이란 것도 그녀의 발상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 전입병만 불러다 관사에서 저녁 대접을 하는 일이었다. 부디 탈 없이 있다가 고향에 계신 분들과 좋아하는 사람 곁으로 돌아가게 해주라는 그녀의 기도와 함께 드는 만찬이었다. 그런데 놈은 그날 저녁 그녀를 밀어 넘어뜨리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놈의 말은 우리 모두에게 그 고백만이라도 해야겠다는 우스꽝스런 꼴이었는데, 우리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 솔직함 때문에 그가 전입병임을 탓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우리를 부끄럽게도 했다. 일요예배 때면 그녀는 예의 원피스를 입었다. 회색 구두가 덮이는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길바닥에 고인 물을 건널 때도 있었다.
  그녀가 와야 예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따로 예배할 곳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식당에서 식사 때처럼 머리와 머리를 맞대고 설교를 들었다.
  군목의 설교는 훈련만큼이나 우리를 괴롭혔다. 그는 왜 우리에게 그런 얘기를 해 주는 것인가? 알 수 없어 귀하지도 못한 얘기들을…. 우리는 졸았다. 우리가 초라한 자세로 졸기 시작하면 보스들은 조바심을 했다. 그녀는 의연한 표정인데도 보스들은 안달이었다. 그들의 눈짓은 깨어있는 몇을 더 불안하게 할 뿐이었다.
  예배는 기도와 설교로 찬송은 마지막 순이었다. 찬송가를 따로 배운 적이 없어서 부르기가 어려웠다. 목소리가 굵은 군목과 군종병이 큰소리로 부르면 우리는 가집(歌集)을 보고 따라서 불렀다. 부르다 들으면 대고 부르지 못하고 웅얼대는 신음 같은 소리 위에 한줄기 청량한 그녀의 목소리가 떠돌았다. 우리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이때였다. 아름다고 조용하기만 하던 그녀의 노래는 높고 주저함이 없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슬며시 그녀 쪽을 바라보면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는 늙은 보스들은 노래를 부르진 않았다. 거북해하며 찬송집을 뒤적일 뿐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다. 그들은 우리가 눈을 감고 기도할 때에도 여전히 눈을 뜬 채 무방비 상태의 우리를 바라볼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를―그들은 고려해주지 않고 막무가내인 그녀의 옆얼굴을 상심해서 바라볼 것이었다. 우리가 보다 편한 마음으로 예배할 양이면 보스들은 따로 그들의 식당에서 그들의 바램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할 일이었다. 그들과 우리의 소망은 같을 수가 없었고 같아서도 안될 일이었다.
  그녀의 입회 아래 누리는 평등은 예배 직후부터 깨어져야 하는 것이 우리와 그들의 관계였던 것이다. 그 상하의 구조를 발발거리며 애써 쌓아 놓으면 그녀는 슬쩍 건드려 무너버리고는 모른 체하는 깜찍한 얼굴이었다.
  그때마다 보스들은 아픈 표정이었다. 그들의 상심을, 그녀는 고소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에겐 보스들의 권위가 보스들이 우리의 가치를 느껴주는 만큼의 이상이 못 되는 것처럼 보였다.
  보스들은 때로 우리에게 걷잡을 수 없는―신경질에 가까운 화를 내곤 했다. 그 히스테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틀어 올린 머리밑의 하얀 목덜미와 푸슬거리는 귀밑머리를 가진 그녀의 얼굴은 부드럽고 예뻤지만 새촘하게 굳어버리는 때가 있었다. 그러면 보스들의 아무리 간곡한 해명도 그 얼굴을 풀게 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그녀로부터 받는 위로는 자정쯤 해서 보초선에 날라다 주는 커피였다. 대개는 군종병들을 대동했으나 혼자일 때도 있었다. 될 수 있는 대로 한잔을 아껴 마시노라면 그녀 편에서 말을 걸어왔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건강은 어떤가라는 자상한 물음과 생활에 불편한 점은 무엇인가, 고향에 사랑하는 사람은 있는가, 편지는 자주 오는가, 예쁜가, 나를 어떻게 생각 하는가….
  우리는 그녀의 덕분에 많은 방문을 받았다. 여러 부인회, 미션계의 학생들, 그리고 원아(院兒)들, 원아들은 별빛에 인도되는 동방박사를 공연하기도 했다. 조건반사 비슷한 그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수양의 일부였다. 아이들이 실수를 하면 보모는 연신 땀을 훔치며 아저씨들 앞이라 그러나보다고 했다. 연습 때는 잘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방문예배는 우리가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우리를 상냥하게 위로하며 부추겼다. 또한 우리의 책임을 환기시켜 긴장하게 했다. 그들은 즐겨 우리를 위하여 또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우리는 그들의 축복분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후면 그들은 가고 우리만 남았다. 그들이 남긴 체취가 우리를 혼미 속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이것이 괴로웠다. 변절한 보스들이 먹이처럼 우리에게 주의시키는 유예기간의 이전과 이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고향과 미래가 꿈틀거렸기 때문이었다. 보스들은 한정된 기간 속의 최선을 종용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끝없이 속이는 명제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우리의 삶에서 보스들과 같이 지내야 하는 기간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극도로 비루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었던 것이다. 왜 우리는 극열하게 살아가는 순간을 외면하고 알 수 없는 내일에 기대를 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없이도 우리의 내일은 여전하게 찾아올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지금처럼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보스들이 우리를 초월한 능력으로 보이게 했던 것은 확고한 자신감이었다. 그들은 그녀가 자신의 매력과 함께 무엇인지 불확실한 것을 제시하기 전엔 망설임이 없었다. 적어도 괴로워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보스들이 우리보다 한 발 앞서 그녀에게 열심히 하게 되자 우리는 그들로부터 멀어졌으며 보스들은 그것이 불만이었으나 그녀 앞이라 전전긍긍이었다. 그 관계를 얼마 더 계속하다가 우리는 합동세례식을 갖게 되었다.
  합동세례식이 있기 며칠 전부터 자기 이름을 쓴 꼬리표를 준비해두라는 전달이 있었다. 그때는 거의가 무연한 얼굴이더니 막상 당하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하긴 말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자기의 생각을 알 턱이 없는 것이니까. 거기에다 아무러한 표정을 지어도 상관이 없을 터였다. 하여튼 지휘하는 보스의 한 마디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하얀 꼬리표가 나부꼈다. 모두가 간직해왔던 것이 동시에 공개됨으로써 이루어진 비밀의 완결이 되었다. 그것은 얼마쯤 뻔뻔스럽기도 해서 우리는 겸연쩍어했다. 각자가 비밀을 갖는 일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혼자만의 것이 되지 못하고 탄로됨으로써 배반의 감정이 우리를 압박했던 것이다. 우리는 허위의 증거를 버젓이 가슴 위에 달고 수줍게 모여섰다. 괴로웠지만 어쩔 수도 없었다. 모든 게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속에 숨어버리길 잘하는 우리이기도 했다. 보스들의 과격함을 애써 자위하던 우리였다. 그것이 필요한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점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보진 않았다. 왜 그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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