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에서 날아온 황사는 텁텁한 맛뿐 대륙소녀의 체취 같은 것을 생각해 낼 수도 없었다. 황사가 바다를 건너다가 모두 스며버린 때문인가? 그래서 그들의 동해(東海)는 끈적거리는 황토 빛이리라 생각되었다. 대륙의 여인들은 황사처럼 텁텁하고 그 바닷물같이 끈적거릴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훈련 중 때때로 웅크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제 나름의 생각에 잠겼다. 생각을 따라 비강에서는 말간 콧물이 흘러나오고 여름날의 소나무 냄새가 맡아지기도 했다. 그것은 판자가 시멘트벽에 붙어버리지 않도록 칠하는 콜타르 냄새 같기도 했고 독한 밤꽃 냄새 같기도 했다. 그것이 어쨌거나 우리의 의식이 말라버리지 않은 것 같아 반가웠다. 외출에서 돌아온 보스들에게선 그런 내음을 곧 잘 맡을 수 있었는데 그들은 깃을 털듯 우리 앞에 그 냄새를 풍기곤 했다.
  불편한 마음으로 먼지 속에 뒹굴던 우리는 그녀가 우리 앞에 나타나자 그 이전을 잊어버리고 맡았다. 그녀는 이례적으로 남편과 같이 소개되었다. 우리가 기뻤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검은 비로드 원피스 차림의 그녀가 사열대에 올라서자 황사는 우우 몰려들어 그녀의 가슴 위에 머리위에 심지어 코끝에까지 내려 앉아 그녀를 금방 우리처럼 만들어 버렸다. 차이나칼라위로 드러난 그녀의 목은 틀어 올린 머리 때문에 더 하얗고 가늘어 보였다. 그녀는 얼굴에 엉겨 붙는 황사를 손끝으로 물방울을 튕기듯 털어내며 겸연쩍다는 미소를 지었다. 웬일인지 그 웃음은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대해서 우리 모두에게 파문져왔었다. 그 후 우리는 나름대로 그 미소를 간직해 두었다가 혼자만의 구석에서 은밀하게 펼쳐보는 것이었다.
  보스들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은 이 미소 때문이었다. 그들은 의연히 위엄을 부렸지만 전처럼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고 교란되어 버렸다. 놀라운 것은 보스들이 속수무책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보스들도 잊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녀가 나타나기 이전엔 모든 것이 잘되었었다는 것을….
  그녀의 틈입(闖入)으로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기로 보스들은 안간힘이었다. 우리도 괴로웠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입장이 종교적(宗敎的)이었기 때문이다. 종교적이라 함은 우리와 보스들이 다 같이 괴로워하기 시작했음을 말한다.
  그녀가 먼저 하게 한 일은 일요예배와 취침기도였다. 그녀는 일요일 외에는 관사(官舍)에만 있었으나 우리의 생활을 의외로 세세한 곳까지 잘 알고 있었다. 군종병(軍宗兵)들이 우리에게 배척을 받는 것도 그 이유였다. 비록 우리들의 침실 창문에 분홍빛 커튼이 걸리고 면도기와 크림이며 로숀 등이 마련되었다 해도 그건 별개의 문제였다. 우리는 생각했다. 땀에 젖어 부식되어 가는 옷을 발치에다 벗어던진 채 하는 우리의 기도와 그녀가 자기 전에 하는 기도와의 차이를…. 그녀는 무어라 기도하는 것일까? 기도가 끝나면 무엇을 생각할까? 우리의 취침기도는 순번제였다. 하나가 일어서고 나머지는 누어서 그 기도를 들었다. 기도는 매일 똑같았다.
  오늘도 무사히 보내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것, 내일도 그래주면 고맙겠다는 것, 고향에 계신 분들도 그래 주라는 것.
  처음 취침기도가 우리에게 맡겨졌을 때 우린 당황했었다. 무어라고 기도해야 되나? 고민하던 우리는 할 수 없어서 군종병을 데려다 시범기도를 들었다. 그는 고참도 아니면서 뜻 모를 미소를 지은 채 기도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는 거라며 상당히 긴 기도를 해 주었다. 그걸 나름대로 기억해 두었다가 차례가 오면 약간 부끄러워하며 암송해버리는 것이 우리의 취침기도였다. 나중에 우리는 자매학교의 여학생들이 만들어준 일주일어치의 기도문을 요일에 맞게 읽으면 되었기 때문에 취침기도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린 기도거리가 많을 것이었다. 가지가지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소리 내어 기도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들끼리의 예의는 고향에서 지냈던 얘기를 안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깨어지는 것은 술을 마셨을 때였다. 그러면 싸움이 벌어졌다. 취침기도를 한 후부터 우리가 부둥켜안고 우는 버릇은 없어졌다. 간혹 무섭게 싸웠을 뿐이고 그때마다 보스들은 낭패였다.
  보스들에게 주는 그녀의 영향은 젊은 층일수록 더했다. 젊은 보스들은 훈계에 맛을 들였다. 그들은 보스에겐 많은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을 잊어가기 시작했다. 보스들의 말은 그들이나 우리나 똑같다는 것이었다. 같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으나 우리는 아무도 그것을 믿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말은 일요예배 때마다 짓는 늙은 보스들의 피곤한 표정이 얼마쯤 그 허위성을 암시했다. 그 표정은 노련한 맹수의 불안 같은 것이었다. 보스들은 일요일이면 따로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일요예배에는 참석해야 한다는 맹랑한 규제에 묶이게 되었던 것이다. 예배의 강요가 부당하다는 몇몇 우리의 의사는 인격수양이라며 무시되었다. 보스들은 자기들도 참석한다는 것을 은연 중 말하려 들었다. 전에 없던 떳떳치 못한 행동이었다.
  일요예배가 시작되기 전의 일요일은 평화로웠었다. 우리는 늦잠을 잘 수가 있었고 기름땀에 젖은 옷들을 벗어버려도 좋았다. 심지어 점심식사를 거를 수도 있었다. 일요일은 배고픈 전입병들이 포식할 기회였고 혼자만의 생각을 가지고 뒹굴어도 되었다. 일요예배는 이런 만족들을 박살내버렸던 것이다.
  그녀가 관심을 갖기 전엔 우리에게 몇 가지의 냄새가 있었다. 가솔린 냄새 겨드랑이의 땀 냄새, 헝겊 신발에서 올라오는 냄새, 탄수화물이 기화하는 냄새―이런 것들은 둔탁한 기분으로 우리 주위를 감돌았다. 우리는 검은 공기를 마시듯 이것들을 맡아왔다. 그리고 풀잎처럼 충혈되곤 했다.
  그녀는 항상 감미롭고 향긋해서 우리를 끝없는 갈망으로 이끌었다. 그녀의 능력은 그 자신을 우리에게 똑같은 소유감을 갖도록 하는 점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확인되지 않는 소유감으로 충만 시켰다. 우리가 기진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녀의 매력은 보스들의 능력과는 또 다른 점이 있었다. 보스들은 육체적인 고통―그로 인한 공포로 그들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주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감복하는 이유는 그 실체감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우리를 매료했음에도 불만의 원인이었다.
  신임 보스들의 병폐는 특히 그녀에게 간단히 압도당하는 점이었다. 그들의 말은 그녀가 있음으로서 삭막하지 않아 좋다는 것이었다. 가능성을 믿음으로써 상기된 그 앳된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는 신병회식에서 돌아온 한 녀석의 말을 씁쓸히 기억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