亂飛(난비)하는 白球(백구)속

  힘과 기 그리고 지혜의 총화로 이루어지는 푸른 잔디 위의 예술, 젊음이 불꽃 튀는 白球(백구)의 제전이 3월 18일부터 23일까지 서울운동장에서 열려, 푸른 구장을 입추의 여지없이 관중들로 메워지게 했다.
  모든 球技(구기)는 線(선)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야구만은 선(fence)을 넘기는 자만이 영웅이 된다. 경쾌한 금속성 소리를 내며 뻗어가는 홈런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무한히 뻗어나가는 단조롭지 않음이 日常(일상)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기에 지루함을 느끼는 현대인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게 하고, 더욱이 우리 학교가 출전하는 날은 초등학교 학생이 소풍가는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며칠 전부터 마음을 설레게 한다.
  13개 대학이 출전한 이번 대회는 몇 가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였다. 투수를 던지는 것에만 신경을 쓰게 하여 게임의 박진감을 더하는 지명타자(Designated Hiter)제도, 일몰게임을 적용치 않고 경기가 종료되지 않으면 일시정지(Suspend)로 하여 다음날에 계속 되게 하는 등 많은 기술상의 제도가 채택되었다. 本校(본교)가 추첨에 의해 자동으로 8强(강)에 올랐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연대의 승리를 점쳤다. 그것은 올해 창단된 약체 圓光大(원광대)를 8대 0으로 누른 연세대와 4강 진출을 겨루게 된 21일 오후 1시, 우리들 뒤에는 영남大(대)로 스카웃, 당시 오갈 데 없는 무명선수 김재박을 백구의 제왕으로 만들어낸 대학야구 최고의 裵星瑞(배성서)감독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세대는 이 대회 10회 때부터 연속 3연패를 이룩하였고, 투수에 78년도 세계야구대표인 崔東原(최동원), 朴哲淳(박철순), 타자에 楊世鍾(양세종), 朴海鍾(박해종) 등 綺羅星(기라성)같은 선수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관중들의 판단은 옳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되자 선발투수 박철순의 볼을 정교한 短打(단타)로 치기 시작한 우리 선수들은 릴리프로 나온, 키 1m77㎝에 몸무게 80㎏이 넘고 연습부족으로 이상비대증에 걸려 있는 최동원의 볼을 치기는 쉬웠다. 그날 최동원의 볼은 스피드가 떨어져 있었고 동계훈련용 비닐하우스 속에서 2백 개씩의 배팅연습을 한 우리 선수들에겐 후리베팅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날 1學年(학년) 張浩淵(장호연)의 낙차 큰 커브는 앞으로 4년간 金城漢(김성한)과 더불어 주전투수로서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하였고, 공격에 있어서도 대전고 출신 韓大化(한대화)의 4타수 3안타의 높은 타율은 앞으로의 기대를 더욱 크게 하였다. 延大(연대)와의 대전은 4대 2로 나타났으나 4회말 우리가 내어준 2점이 실책이었다. 4구를 골라나간 늙은 곰 박해종이 3루에서 리드를 했을 때 잡을 수 있는 순간에 견제미스를 범했다. 이 내야진의 실책이 다음 게임을 어둡게 하는 신호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날 경향의 각 신문들은 분명 실력의 차에서 온 결과를 이변이니 波瀾(파란)이니 하면서 보도했다.
  다음날 22일 오후 3시 준결승으로 힘차게 도약한 우리에게 장효조, 김한근이 빠져나간 한양대는 연세대보다 약하게 보였다. 그라운드의 문제아(?) 金東燁(김동엽)감독이 버티고 있는 한양대는 金始眞(김시진) 金勇男(김용남) 李相潤(이상윤)이 버티고 있는 투수 왕국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다만 포수 이만수의 어깨와 타격력이 돋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게임에 들어갔을 때 한 뭉치의 실이 엉켜있는 모양 아무리 풀려고 해도 끊어지기만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연속되었다. 1회 초 2루수의 실수로 나간 한대 李根植(이근식)이 4번 李萬洙(이만수)의 중전 적시타로 1점을, 5회 초 포볼로 나간 7번 吳大錫(오대석)이 1루수의 수비실책과 보내기 번트로 3루까지 갔다가 배터리의 패스트 볼로 1점을 빼내게 되었다. 일시 정지 게임으로 23일 속개된 9회 초에 있어서도 오대석 이승희의 연속 안타에 의한 더블 스틸 후 對延戰(대연전) 승리의 디딤돌이었던 유격수 한대화의 에러와 중견수의 홈 악송구로 2점을 내주게 되니 수비미스에 의한 실점으로, 8회 말 혼신의 정열을 쏟은 1점의 만회가 역전될 수 있는 발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기는 우리에게서 멀어져가는 결과를 빚었다.
  게임은 이기고도 질 수 있는 것. 시즌오픈 전에서 2대 0으로 이긴 高大(고대)가 이번 결승에서 2대 1로 역전당한 것처럼 앞으로의 승리를 위해 칭찬보다는 아끼는 마음으로 채찍을 가하며 이번 우리팀이 출전한 두 게임을 정리해 보겠다.
  첫째, 너무나 두드러진 수비의 난조다. 본교 야구선수들이 1․2년생이 주축이 되어 호흡이 잘 안 맞는 점도 있으나 2게임을 통해 6실점 중 상태팀의 타점에 의한 것은 對(대) 한양대 전에서의 1점뿐이었다. 盜壘(도루)의 실수가 너무 많다. 對(대)한양대전에서 우리는 2개의 도루 밖에 성공시키질 못 하였으나 한양대에겐 5개를 허용하였다. 상대팀보다 포수의 어깨가 약하다는 점도 있으나 앞으로 포수의 2루 견제연습을 좀 더 충분히 하였으면 한다.
  셋째, 순수 아마츄어의 입장에서 본 裵(배)감독의 작전 미스(?)를 감히 지적하고자 한다. 對漢(대한)전 1회말 무사 2.3루의 찬스에서 3번 김성한에게 투스트라익 후 실패율이 높은 스퀴즈를 시킨 것은 잘못인 것 같다. 플라이만 깊숙이 날려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전체적으로, 3,4,5번 클린업 트리오가 너무 못 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앞섰겠으나 생각해 보고 넘어갈 문제로 지적하고 싶다. 그 다음 역시 한양대 전에서, 장호연을 8,9회에도 계속 던지게 했어야 했다. 전날의 완투로 피로한 점을 계산했겠으나 김성한과 구질이 같은 정통파 투수 3명이 있는 한양대에게, 좀 더 다른 컬러의 장호연이 유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9회 초에 난 연속 2안타가 잘 말해 주는 것 같다.
  이상 단순히 느낀 점을 적어 보았는데 한 마디 덧붙이면, 대구지방이 고향인 나는 裵(배)감독이 영남대 재직시 춘․추계 대학리그에서 우승하고 내려와 동대구역 플랫홈에서 목에 화환을 걸고, 믿음직한 체구에 童顔(동안)의 미소를 띠우는 것을 자주 본적이 있다. 우리 6천 東國人(동국인)의 야구에 대한 정열은 그 날을 목 놓아 기다린다. 앞으로 춘․추계 대학리그, 백호기 시합 등 많은 게임에서 건투를 빌 뿐이다. 이번 시합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중반전부터 봅시다.’ 裵(배)감독의 말이 자꾸만 귓전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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