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과외공부는 하나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지나친 과외공부로 인한 청소년들의 건전한 심신발달의 지장, 정상적인 교육풍토의 파괴, 학부모에게 가중되는 경제적 압박 등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과외가 교육적 배려에서 검토되고 계획된 보충학습이라면 오히려 장려되어야 할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요즈음의 과외는 課外(과외)망국론이 나올 정도로 너무나 정상적 궤도에서 빗나간 사회적 만성병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만성적 현상이 이제는 거의 일반화된 현상으로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되고 가열화되어 가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서 과외의 구체적 실태와 거기에서 빚어지는 부작용을 세세히 열거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그 목적이나 내용 및 형태에 따른 課外(과외)의 성격이나 類型(유형)을 구구하게 論(논)하고 싶지도 않다. 이 자리에서는 그럴 겨를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도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으며, 또 그간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단지 필자는 여기에서 요즈음 크게 문제화되고 있는 빗나간 課外現象(과외현상)을 우리의 특수한 문화현상의 하나라는 관점에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여기에서 문화현상이란 말은 有形無形(유형무형)의 생활양식이라는 넓은 의미로 쓴 말이다.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현상은 곧 사회적 사실이며, 이 사회적 사실은 바로 역사적 사실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에밀 뒤르켐은 교육적 諸 事象(제 사상)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사실로서 파악되어야하며, 그 사회적 사실로서의 諸(제) 敎育(교육)문제는 역사적 접근을 통한 파악과 분석이 요청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우리민족은 저 아득한 神話時代(신화시대) 이래 現世志向性(현세지향성)이 강한 민족이다. 따라서 本鄕(본향)에의 還元思想(환원사상)이나 終末論的(종말론적) 來世觀念(내세관념)이 희박하다.
  어디까지나 기존의 현세에만 관심을 가지는 민족이다. 우리의 신화나 무속신앙은 물론이며 불교나 기독교도 우리 민족에게 접합되어서는 영원과 무한에 기준을 둔 絶對善(절대선)의 體現(체현)보다는 現世福樂(현세복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 그 유례가 드물 만큼 강한 우리의 교육열도 사실은 이러한 현세지향성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교육 그 자체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서가 아니라 현세복락의 획득을 위한 道具的(도구적) 가치로 교육이 중시되어 오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교육사에 있어 학교교육의 성쇠는 언제나 현세복락획득의 관문을 뜻하는 과거제도와 표리일체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대학진학에 있어서 그 대학의 교육내용이나 교수를 고려하기보다는 사회적 인식에 따른 이름에 집착하고 있으며, 소위 명문대학의 티켓을 따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다 동원하는 심리가 분명하게 파악된다. 명문대학의 졸업장이 사회적 출세, 즉 현세의 복락획득의 보증서로 인식되고 있는 한, 우리의 강한 현세지향성은 명문대학의 티켓을 따기 위한 경쟁으로 하여금 가히 생존을 위한 치열한 死鬪(사투)의 성격을 띠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이미 무의식 세계에 있어서의 문화의 유전을 말한 바 있거니와 오늘날 학교 밖의 課外熱風(과외열풍)의 심리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하나의 문화적 유전병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학교교육에 대한 불만 내지 不信(불신)은 韓國敎育史(한국교육사)에 있어서 대단히 뿌리 깊은 바가 있다. 끊임없는 內憂外患(내우외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敎育史(교육사)에서는 정규의 학교가 정상적인 발전을 별로 누려보지 못했다. 더욱이 修己治人(수기치인)을 생활이념으로 하는 儒學(유학)에 있어서는 政治(정치)와 敎育(교육)은 治人(치인)의 兩面(양면)임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우리민족의 現世志向性(현세지향성)은 儒學者(유학자)들로 하여금 政治的I(정치적) 官職(관직)에만 집착케 하고 學校(학교)의 敎信(교신)은 기피의 대상이 되게 해왔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부실했고 이에 따라 부유층은 언제나 사랑방에 獨先生(독선생)님을 모셔왔다. 그리고 우리는 아늑한 방에서 三三五五(삼삼오오) 모여 학습하던 書堂敎育(서당교육)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敎育文化(교육문화)의 전통은 무의식의 심층에 유전되어 오늘날에도 학교교육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아늑한 곳에서 혼자 또는 몇 사람의 그룹으로 지도받아야만 정말 공부한 것같이 느끼게 하고 있다. 여기에 대학입시의 심한 경쟁률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불안감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자꾸 학교 밖의 課外(과외)를 찾게 한다. 정규수업이든 과외수업이든 60~70명이 한 교실에서 배우는 학교수업만으로는 만족치 못하며, 또 학관에서의 다수의 집단수업으로도 직성이 완전히 풀리지 못하는 심리는 결국 韓國人(한국인)의 특수한 교육문화적 전통에 멀리 그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우리의 생활은 크게 보아 儒敎的(유교적) 文化(문화)의 테두리 속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의 문화권에 속하는 西歐(서구)나 美國(미국)과는 行動規準(행동규준)을 달리하고 있다. 막스 베버(Max Weber)를 위시해서 여러 사람들이 이미 지적하고 있듯이 기독교사회의 문화는 罪意識(죄의식)의 文化(문화)라고 한다면 儒敎社會(유교사회)의 문화는 羞恥意識(수치의식)의 문화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는 행동을 규제하는 역할은 개인에게 內面化(내면화)되어 있는 罪責感(죄책감)이 아니라 他人(타인)들이 나를 어떻게 보아줄 것인가에 대한 自意識(자의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되도록 소문난 사람들을 모셔다가 과목별로 거액을 주고 강제로 어린이들에게 특별지도를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부유층 학부모들의 심리는 단순한 허영심만이 아니고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는 儒敎文化(유교문화)의 뿌리 깊은 羞恥意識(수치의식)이 심층에서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社會階層的(사회계층적) 위치유지와 체면유지는 동일시되어 체면손상은 바로 수치감으로 직결되는 사회적 위치의 상실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課外(과외)로 인한 병폐는 여러 가지로 논의되어 왔고 여러 개선책도 모색되어왔다. 그러나 대부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음은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深層的(심층적) 요인은 고려하지 않은 對症療法(대증요법)의 수준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課外病(과외병)으로 일컬어지는 언뜻 보아 간단한 듯한 문제도 실은 우리의 특수한 문화현상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우리의 가치관이 심층에서 작용하고 있다. 이 가치관은 일조일석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現世志向性(현세지향성)이 강한 우리의 가치관은 또한 그 나름의 많은 장점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해결의 방향은 단순한 금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現世志向性(현세지향성)이 건전하게 만족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그 길을 열어주는 구체적 방법은 학교에서의 교육활동이나 교육제도의 개선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사회전반적인 차원에서의 고려가 있어야한다. 또한 이러한 고려에 있어서 우리의 문화사를 심층에서 지배해 온 요인에 대한 통찰은 필수적 전제로서 요청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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