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型(인형) <完(완)>

  다시 만들어져 보는 거야. 여기 있는 네 동료들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똑같기 만한 너희들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야. 너희들을 그렇게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구. 너희들은 한 틀 속에서 일률적으로 생산되고 조각되어선 안돼. 나름의 생명을 가져야 한다구.”
  일호는 거의 매일 밤 인형의 모습을 바꿔주는 작업을 진행해 왔고, 그 작업은 항상 의식을 거행하듯이 진지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지만, 오늘밤 일호의 작업은 그 엄숙함과 진지함의 밀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진했다. 마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 화가가 마지막 걸작을 탄생시키기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정열 덩어리마저 화폭에 쏟아넣듯 일호의 작업은 진행되었다. 가능하다면 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라도 할 것처럼.
  일호의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인형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변해갔다. 가게에 진열되어 있었을 때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다시 탄생된 인형은 두 발을 굳건히 버티고 서서 무엇을 움켜잡을 듯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고 있었다. 그것은 온통 발가벗고 있었으며 몸은 온통 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입과 눈이 상식 이상으로 확대 되었고 번민하듯 일그러진 얼굴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절대적인 것을 향해 호소하고 있었다.
  일호는 그동안 모습을 바꿔 놓은 인형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가부좌를 한 채, 기도하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석상처럼 앉아 있는 일호 앞에 인형들이 눈이 하나밖에 없거나, 눈을 감아버렸거나, 물구나무를 했거나,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거나, 미친 듯이 웃고 있거나 얼굴 전체에 입만 크게 달려있거나… 한 모습으로 방금 전에 만들어진 인형과 함께 시위하듯 몰려 있었다. 인형제조업자나 <인형의 집>주인이 본다면 이미 상품가치가 전혀 없는 폐품덩어리라고 할 그런 모습들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의 모습을 본떠 만든 인형(人形)이 아니라 일호 자신의 내부에 잠재된 인간형(人間型)의 인각이었다.
  한참 후에 일호는 결심한 듯 그 인형들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호는 인형이 든 가방을 들고 <인형의 집>을 찾아갔다. 가게의 문을 열고 있던 주인이 인사를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인형을 사시려오?”
  “아니오. 그저….”
  일호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
  주인은 가게 정리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똑같은 모습으로 진열된 인형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먼지를 털어 냈다. 일호는 쭈그려 앉은 채로 가방에서 인형들을 꺼내놓으면서, 자신의 행동과 주인의 행동이 묘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치밀하고 숙달된 솜씨로 정리를 끝낸 주인이 일호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경악의 빛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그곳엔 일호가 모습을 바꾼 인형들이 정성스럽게 놓여 있었다. 그것은 <인형의 집>주인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형태의 인형들이었다. 얼마 후에 주인은 놀랐던 표정을 거두고 여유 있는 웃음을 흘렸다. 그는 그 인형들이 이미 인형의 가치를 잃어버린 폐품덩어리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결국 저런 짓을 하기 위해서….”
  “그렇소. 당신의 궁금증은 일단 풀린 셈이요.”
  “잔인하군요. 멀쩡한 인형들을 저런 꼴로 만들다니.”
  일호는 그냥 피식 웃어버렸다.
  그는 빈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주인이 황망하게 일호를 잡으며 말했다.
  “어쩌자는 것이요. 저런 폐품덩어리를 갖고 와서.”
  “이제 나는 할 말이 없소. 나머지는 저 인형들이 말해줄 거요. 그건 폐품이 아니오. 그리고 난 잔인하지도 않소. 다시 말하지만 저건 폐품이 아니오. 이제야 제 모습을 찾은 것이오. 정 모르겠거든 한 번 만들어 보시오. 그럼, 수고하시오.”
  주인은 얘기를 계속하려 했으나 일호는 그냥 그 곳을 떠나 버렸다.
  그 후, 닷새가 지나도록 일호는 <인형의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길어도 사흘을 넘기지 않고 가게에 들르던 일호였다. 주인은 날짜가 지나감에 따라 초조하게 일호를 기다렸다. 주인은 자기의 초조함이 어디에서 기인되는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막연히 그 인형들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일호가 남기고간 인형들의 비밀을 풀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생각날 듯하면서도 생각나지 않았다. 닷새가 지나고 또 며칠이 지나면서 주인은 보이지 않는 줄에 자기가 끌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호의 인형들은 그가 마지막 떠나던 날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주인은 그 이상한 인형들과 가게 밖을 지나는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호가 남기고 간 인형들의 의미를 알아내야 한다는 외골수적인 강박관념이 주인을 엄습해 왔다. 그 날도 밤이 깊어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 되어도 일호는 타나나지 않았다. 주인은 일호가 어쩌면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게 문을 닫으면서 그는 일호가 마지막 남기고 간 말을 되살렸다. –그건 폐품이 아니오. 한 번 만들어보시오.
  주인은 일호가 남긴 인형 중의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대로 만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 사람들은 <인형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네킹 가게 앞에서 일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호의 주위에는 구경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그 속에서 일호는 미친 듯이 마네킹을 두들겨 부수고 있었다.
  희뿌연 공기를 가르고 달려 온 햇살이 피곤한 색깔로 그곳을 비추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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