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아래 간지러운 낯을 하며 뜨락에 섰다. 가을—피부에 와 닿는 기운이 자연의 섭리를 어김없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진정 구월은 어정쩡하게 가버리고 마는가? 아직도 난 해야 할 일들이 많고 풋풋한 내음 속에 접어두었던 소망이 채 여물지도 않았는데 오래 참으로 많이 기다렸던 인내의 나날들에 베풀어짐도 없이, 갈리는 시간 속에서 벌판 가운데 홀로 서있는 사람마냥 이리저리 헤매다 보내버리는 걸까?
  적어도 막바지에선 최선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게 살아가리라고 굳게굳게 다지며 걸어온 스물하고도 몇 해.
  마지막이라는 여운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4학년, 그 가을에 나는 너무도 초라한 빛깔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 같다.
  무척 힘들게 시작된 만남과 만남 속에서 그 얼마나 나의 울타리를 허물고 모두를 다 들여놓고 싶었던가. 힘찬 악수 속에 그리 어렵지 않은 언어에 진실을 담으며 감정의 순수를 드러내 놓고 싶었던 날들, 맘껏 터놓고 웃고 울며 그들 젊음 속에서 나도 늦게나마 젊음을 누려보고 싶었던 어리석은(?) 갈망의 몇 해가 이제 졸업이라는 문턱에서, 작은 바램은 저만치서 휘적대기만 하는데 방관자인양 난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도 전에는 학기말에 가선 곧잘 무엇인가를 깨닫고 자신이 커감을 대견스레 생각하곤 했었는데, 이제 더 많이 느껴져야 할 마지막 학기에 와서 난 아무것도 모르는 시작보다 더 어설프기만 함을 느껴져야 할 마지막 학기에 와서 난 아무것도 모르는 시작보다 더 어설프기만 함을 느껴야 함은 왜일까?
  자꾸자꾸 살아보다 어느 극한 상황에서나 우린 生(생)이란 걸 알게 될까?
  애써 쌓았던 인내와 냉정히 돌아서 걸어왔던 그 핏빛 진한 삶이 이 가을에 주는 답은 과연 무엇인가?
  그동안 무엇을 얘기했을까? 거짓은 아니지만 어리석은 몸짓으로 숱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닌지.
  나름대로 들어선 길 복판에서 ‘의미’를 지닌 윤기 있고 진지한 생활의 얘기를 나누기 위하여 이제야말로 훌훌 털고 일어나 걸어야 할까 보다.
  이제 자연이 주는 은혜로움에 고마워하며 오늘을 챙기다보니 새삼스레 지난 일들이 생각난다.
  추위 속에서도 열띤 마음으로 들어서던 東國(동국)의 문, 호기심과 열망이 섞여 뛰어본 써클활동, 우리를 無知(무지)에서 일깨워주느라 애쓰시던 科(과)교수님들의 열강, 4주간의 교육실습 그리고 방학 때면 달려가 함께 山(산)을 오르던 고향의 친구들, 특히 지난 해 3월 어느 교수님께서 주셨던 책에서의 놀라움과 애틋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오늘도 진리탐구에 정진하는 학우들, 더욱이 나이(중년)를 무색케 하는 큰언니와의 진지한 대화들은 망설이다 보내버린 학창시절 속에서도 금싸라기 같은 보석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소중한 것들이 있기까지는 뒤에서 힘이 돼 주셨던 外叔(외숙) 내외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며칠 전 小金剛(소금강)으로의 나들이에서 하얗게 부서져 내리던 물줄기, 푸르고 곧게 뻗어 인간을 부끄럽게 했던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자꾸 나를 흐트러뜨린다.
  일어서야지.
  살아가야 한다.
  파란 가을 하늘을 향한 눈이 시리다. 두 눈을 감는다.
  나의 빛대로 열심히 살아가리라. 하는 일에 진실을 갖고 열중해야지. 그리고 베풀 수 있는 것은 주저치 말게 하소서—어머니!
  난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며 이제 시월을 맞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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