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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篇小說(단편소설) 浮游(부유)하는 손-白痴(백치)의 잠 ③
  • 李政(이정) <僧家科(승가과)>
  • 승인 1979.05.15
  • 호수 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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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나는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다. 대문의 처마 밑에 걸려 있는 외등의 불빛이 노려보는 눈알처럼 내 얼굴 위에 떠 있었다. 외등의 주위에는 무수한 많은 하루살이들이 바람결을 따라 흔들리듯 외등을 중심으로 하여 맴돌았다. 그것들은 일제히 외등을 향하여 날아갔다가는 다시 돌아서서 윙윙거렸다. 그러한 움직임이 반복적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보았다. 그것들이 외등의 빛을 겨냥하고 서둘러 날아갔을 때, 미처 돌아서기도 전에 검은 시체로 변해서 내 이마 위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외등은 흡사 나까지도 그 죽음의 빛으로 덮어씌우려는 것 같이 여겨졌다. 가슴 언저리에 소름이 오도톡 솟아올랐다. 무서웠다. 빨리 돌아서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목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가래처럼 그 생각은 나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곧 튀어나올 것만 같이 갈그락거리며 나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단단하게 불빛에 잡혀 버리고 있었다. 불빛 위에 은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얼굴이 나를 쏘아 보고 있었다. 나는 가래를 뱉듯 무슨 말인가 한 마디 하고 싶었다.
  네 옆에 있고 싶어, 영원히.
  그러나 아무 말도 발음되지 않았다.
  그때 은하가 열린 대문의 가운데에 서서 가만히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왜 집에 가지 않았어요?’
  은하는 빗방울에 젖은 내 머리털을 조심스럽게 털어 주었다. 흥분과 긴장을 방산해 버렸을 때의 쾌감이 일순간 내입 밖으로 뒤쳐 나왔다. 그것은 짧은 단음이었다.
  ‘아!’
  나는 거친 한숨을 쉬었다. 은하가 말했다.
  ‘들어가셔요’
  그러나 나는 곧 바로 뒤돌아섰다. 대신으로 내 머릿속은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의 그물 같은 얽힘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하등동물의 단순한 감정만이 내 행동의 주제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방황에 시달려야만 될까?
  은하가 따라 나와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우리 들어가서 얘기해요 제발, 날 괴롭게 하지 말아줘요’
  그녀의 목소리는 풀기가 없어진 옷처럼 구겨져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름 사이에서 동정의 진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그렇다 나는 동정이 싫었다. 내 고통을 내 스스로 감내하면서 직립보행(直立步行)을 하고 싶었다. 나는 통금으로 가로막힌 골목길을 천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발밑에서 자갈 하나가 요동을 쳤다. 생명을 가진 것들처럼 내 발바닥에 투명한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가까운 곳에서 소쩍새가 풀꾹풀꾹 울었다. 가만히 들어보면, 그것들이 이쪽저쪽에서 서로 자신의 한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패배한 자의 목 쉰 울음처럼 처량하였지만, 청량한 울림으로 밤하늘에 길게 메아리쳤다. 떡갈나무 가지가 바람에 휘어져서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것들의 잎이 비통한 조곡(吊曲)을 낮은 배음(背音)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 소리들이 산간의 침묵을 메우고 있었다.
  이제와서 나는 무엇을 더 숨겨야 할까, 육중하고 튼튼한 문으로 굳게 잠긴 내부의 소리들을 나는 벌써부터 하나하나 열어 놓을 것을 누차 다짐해 왔었다. 그것은 구태여 열림으로서의 소리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 없이 열려진 문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물들과의 화해로운 관계를 열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내부에서 움터 올라오는 그러한 의식이 은하의 편지에는 오히려 당혹감을 배가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삽시간에 터진 봇물처럼 요 근래 은하의 누차에 걸친 편지에 나는 미처 피할 데를 마련하지도 못한 채 연타를 당해버린 꼴이 되었던 것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망각을 가장하고 있었던 일이 물이 빠지면 밑바닥이 들어나 보이듯 어느 순간 갑자기 융기해 왔던 것이다. 그래 나는 은하를 사랑하였다.
  그날 밤, 통금의 거리에서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막막하였다. 내 앞에 입 벌리고 떠있는 검푸른 어둠이 파르르 진동하고 있었다.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빗소리를 타고 웅얼웅얼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분명한 음성 하나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왜 들어오지 않고’
  은하가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바로 등뒤에 서 있었다.
  ‘무엇이 그리 속상해서 그래. 사내가 너무 쉽게 좌절해선 안되네’
 

李政(이정) <僧家科(승가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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