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型(인형) <2>
글‧ 김승재 <사범대 국교과> 그림‧ 송재흥<농림대 임학과>

  일호가 잠시 머뭇거렸다. 주인은 주머니를 뒤졌다. 동전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하루에도 몇 번씩 구걸을 하는 거지들 때문에 익혀진 동작이었다. 드디어 주인의 손이 누런 동전을 하나 꺼내들었을 때, 일호가 인형(人形)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나 주시오.”
  주인은 순간 당혹감을 느꼈다. 주인은 멍청하게 일호를 쳐다보았다. 인형에 잠긴 듯 깊숙했다. 한참 만에 주인이 입을 열었다.
  “뭐라고 했소?”
  “인형 하나 주시오”
  대답하는 일호의 목소리가 차분하고 단호했다.
  “돈 있소?”
  주인의 목소리에 비양거림이 섞여 있었지만, 일호는 말없이 돈을 건네주었다.
  그 후로 일호는 종종 인형을 샀고, 주인은 일호를 단골로 생각하게끔 되었지만, 그들은 피차 매매에 필요한 얘기 이외의 다른 말들은 하지 않았다. 일호 쪽에서 얘기를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매매행위가 여러 번 되풀이 되면서 그들은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일호가 가게에 들어가면 주인은 말없이 인형을 하나 집어 주었고, 일호 역시 말없이 돈을 건네는 것이 그들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었다. 주인은, 안녕히 가십쇼 라든지 또 오십쇼 하는 따위의 인사말을 일호에게만은 생략했다.
  신축공사는 조금의 차질도 없이 진행되었다. 설계자의 의도대로.
  하루가 다르게 건물은 높아져갔고, 그에 따라서 일호가 피식피식 웃는 것과, 인형을 사는 빈도가 잦아졌다. 일호는 부지런히 벽돌을 나르고, 그것들이 제자리에 틀림없이 놓여져서 건물의 높이를 더 해가는 것을 보면서 계속 피식피식 웃어댔다.
  “바보 같은 자식.”
  일호는 웃음 사이로 중얼거렸다. 그는 벽돌 나르기가 역겨웠다. 벽돌 나르기보다 그것을 하고 있는 자신이 역겨웠다.
  잔등을 압박해 오는 벽돌의 무게와 높아가는 건물이 자신을 조그맣게 축소시키고 있다고 일호는 생각했다. 등에 진 벽돌을 팽개치고 싶었다. 일호는 벽돌을 짊어진 채 걸음을 멈추고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거기 희뿌옇게 색이 바랜 하늘이 납작하게 매달려 있었다. 감독의 호르라기 소리가 들렸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는 신호였다. 일호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자식.”
  그날, 저녁 <인형의 집>앞에서 일호는 지하상가의 풍경을 훑어보았다. 그곳은 해가 비치지 않아도 항상 밝은 곳이었다. 그곳의 빛은 늘 창백했다. 알미늄 샷시와 투명한 유리, 화려하게 만들어진 상품들, 휘황한 조명이 눈을 현란하게 했다. 정사각형의 반들반들한 타일로 빈틈없이 포장된 바닥이 너무 미끄럽고 차디차다고 일호는 생각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자루가 긴 걸레를 밀고 다녔다. 물기가 있는 바닥이 번들번들 빛을 냈다.
  이 바닥에 계산된 만큼의 물을 붓고 물고기를 풀어 놓는다면 물고기들은 최소한의 호흡만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바닥을 헤엄쳐 나갈 수 없는 답답함에 거의 사투(死鬪)에 가까운 몸부림을 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의 몸부림이 아무리 결사적이라 해도 그것들은 이 바닥에서 탈출할 수 없을 것이며, 바닥에는 한 방울의 거품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철저하게 조작되어 있으니까.
  일호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인형가게의 문을 열었다. 주인이 인형을 집어주었다. 일호가 자기 몫의 행동을 하고 밖으로 나가려할 때, 주인이 그를 불러 세웠다.
  “당신은 거의 매일 인형을 사야할 이유라도 있소?”
  주인이 일호에게 이런 식의 말을 했다는 사실은 의외의 일이었다. 사실 주인은 일호에 대해서 숱한 궁금증을 가져왔지만 일호의 의식적인 대화기피 때문에 혼자만 그것을 꾹꾹 눌러오다가 이제야 폭발시킨 것이다. 일호는 돌아서서 주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주인을 가련하게 여기는 것도 같고 혹은 경멸하거나 증오하는 듯도 했다. 한참 만에 일호가 입을 열었고, 그의 말은 주인의 물음과는 전혀 무관한 엉뚱한 것이었다. “당신은 인형을 직접 만들어 팔고 있소?”
“아니오. 만드는 사람은 따로 있소. 난 그저 팔기만할 뿐이오. 그런데, 내가 묻고 있는 것은…” “곧 알게 될 것이오.”
  일호는 주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막연하게 한 마디 남기고는 가게를 떠났다.
  가로등이 뿌옇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일호는 인형을 손에 꼭 쥔 채, 숙소를 향해 걸었다.
  “무엇하러 인형을 사느냐고 너를 판 주인이 물었단다.”
  일호는 인형을 향해 정어린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인형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말을 해봐야 그 사람이 알아듣기나 하겠니? 그는 그저 인형을 팔아서 이익금을 얻는다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인걸.”
  일호는 마치 인형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기를 바라듯 중얼거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캄캄한 하늘에 별이 몇 개 희미하게 떠 있었다. “얘야, 별을 찾을 수 있겠니?”
  일호는 다시 인형에게 말했다. 인형은 눈동자도 없는 눈알을 멀뚱히 뜬 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일호의 눈에 순간 노여움이 서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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