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 문학적 현상의 하나로서 6·25전쟁 또는 민족분단의 상황을 형상화하려는 노력의 급증을 손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특히, 그러한 노력은 소설 분야에서 가장 활력 있고 생산적인 작업의 중심이 되어 왔다. 사실, 해방이후 한국의 개인적 집단적 생존의 역사에서 6·25가 차지하는 의미의 막중함을 감안한다면 문학이, 더군다나 삶의 구체적이고 총체적인 인식을 지향하는 소설이 민족분단의 현실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은 정녕 필요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민족분단의 상황을 취급한 종래의 소설들은 우리가 그 제재의 중요성에 비추어서 기대함직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6·25의 참화를 家族史(가족사)의 차원에 즉, 친족의 相殘(상잔)과 離散(이산)이라는 차원에 국한된 재난으로 처리하거나 정치적·이념적 대립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선한 자와 악한 자 사이의 충동적인 분쟁으로 단순화하거나 또는 민족분단을 원한과 복수와 화해로 점철되는 聚落社會的(취락사회적) 인간관계의 배경 정도로 강등시키는 결함에서 우리 소설은 좀체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그처럼 소박한 이야기의 유형들이 거창한 명분의 비호 아래 양산되고 복제됨으로써 그 문학적 과제의 무게에 걸맞은 새롭고 다양한 시도가 자칫하면 위축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간행된 鄭昭盛(정소성)의 소설집 ‘아테네 가는 배’는 고무적인 수확으로 평가될 만하다.
  여기에 수록된 표제작을 비롯한 ‘쌀 안치는 소리’ ‘슬픈 歸國(귀국)’ 등의 작품은 분단현실의 소설적 수용에 있어서 어떤 새로운 방향을 시사하고 있다. 그 새로움은 일차적으로 관습적인 소설기술의 양식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작가의 실험적 태도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鄭昭盛(정소성)은 종래의 분단소설을 지배했던 단선적, 평면적 因果律(인과율)에 입각한 이야기의 전개를 배격하고 현실과 환상, 역사와 신화가 서로 넘나들고 맞물리는 경험의 복합성 속에서 분단시대의 황폐한 삶을 조명한다. ‘아테네 가는 배’의 서사적 구조를 떠받치는 비유적 등위의 설정-남편을 잃은 트로이의 왕비가 망부에 대한 그리움의 눈물로 파놓았다는 <시모이강>과 북쪽에 남편을 둔 남쪽의 아내가 오지 않는 재회를 기다리며 만든 <청천강 하류 송림땅> 자수폭과의 연결은 그 전형적인 예다.
  이야기의 양식에 있어서 ‘쌀 안치는 소리’와 ‘슬픈 歸國(귀국)’은 표제작과 다소 거리가 있으나, 6·25의 비극 또는 그로 인한 삶의 跛行(파행)을 경험의 중층적인 연관 아래서 묘사했다는 점에서 역시 이채롭다. 그 작품들은 민족의 상쟁과 분열이 개인에게 입힌 정신적 外傷(외상)을 추적하면서 그것을 원색적인 恨(한)의 응어리로서가 아니라 내밀하고 가혹한 실존적 고통으로서 제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물론, 鄭昭盛(정소성)의 이번 소설집으로 해서 분단소설이 안고 있는 난제들이 모두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욕적인 작업이 우리가 소망하는 분단소설의 새로운 모색에 값진 공헌을 했다는 것은 쉽사리 인정할 수 있다. 이번 소설집의 간행을 계기로 그의 문학적 탐구에 한차례의 비약이 있기를 기대하면서 양식 있는 독자들의 一讀(일독)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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