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역사에서 다수의 동참으로”

  아이가 놀다가 갑자기 책보고 있는 나의 뺨을 때린다.
  자기와 놀아주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멀뚱히 쳐다보는 이십사개월 아이의 눈동자는 맑고 깨끗하다.
  이 세상의 어떤 진실보다도 더 뜨겁다.
  아이의 손목을 잡아 매만질 때마다 우리 세상 사람들의 삶도 이렇게 부드러울 수 없을까.
  거짓이 없는 사랑의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다.
  속살을 보여주어 가슴과 가슴을 부빈다면 아이의 데모처럼 성공적일 수 있다.

  위에 쓴 詩(시)는 필자의 근작으로 요즈음 시도하고 있는 ‘八行詩篇(팔행시편)’中(중)의 하나다.
  순하디순하다고 믿는 생후 몇 개월짜리 아이들도 자기주장을 펴는 걸 볼 수 있다. 하물며 어른들의 세계나 조직사회에서는 자기주의·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한쪽의 의견만 옳다하고 다른 쪽의 의견을 듣지 않는 ‘흑백논리’가 너무나 무성하다.
  학계나 다른 단체에서도 마찬가지며 심지어 종교단체까지도 파급되고 있는 사실을 볼 때 저 순진한 아이들의 의견을 받아 주듯이 그런 따사한 봄볕은 없을까 자문해 본다.
  좁혀서 볼 때 우리 대학은 새학기를 맞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개교 100년을 향한 장을 열고 있다.
  민족정신이 발상지며 국난에 처했을 때마다 중심역할을 한 선배들을 볼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옛것에만 집착하지 말고 새 시대의 조류에 발맞추기 위해서도 학구적인 연구탐구와 지속적인 현대적 조명이 어울릴 때 우리 <동악학파>가 형성되리라 믿는다.
  <동국 문학> <동국 불교> <동국 사학> 등이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을 때 다시한번 삼보의 언덕을 빛나게 할 것이다.
  타 대학과의 경쟁적 관계에서 우리의 학문이 살아남을 때 누구의 뺨을 때리더라도 아기의 애교처럼 다른 이들이 봐줄 수도 있다.
  편협적인 관계에서 좀 더 큰 바다로 혼자만의 역사에서 여럿의 동참으로 사부대중을 다 몰아칠 수 있는 자비로운 동국의 태어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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