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45분.

마라케시 중앙광장인 제마 알프나 광장 알리 호텔 앞에서의 약속까지 약 15분의 시간이 남았다.

모로코 전통 가옥 ‘리아드’에서 알게 된 마름모와 나는 아직 태양이 떠오르지 않은 비좁고 어두운 길을 유유히 걷고 있었다. 나는 마름모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마름모의 얼굴형을 보면 떠오르는 도형인 마름모를 그의 이름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마름모와 나는 골목에 늘여놓은 야채나 양탄자 따위를 밟거나 넘어뜨리지 않기 위해 잔뜩 긴장한 채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기 일쑤였다.

 때때로 골목 귀퉁이에서 불쑥 자전거가 튀어나와 겁을 주기도 했고 겹겹이 쌓은 계란 판을 아슬아슬하게 양손에 올려 배달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들은 이제 갓 나온 동그랗고 넓적한 모로코식 빵을 진열대에 올리고 있었다. 나는 졸음이 가시지 않은 두 눈을 비비며 눈앞에 펼쳐진 생경한 세계에 넋을 잃고 있었다.

분명 어제 늦은 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 올 때까지만 해도 목격하지 못한 진기하고 활력적인 풍경들이었다. 마름모가 왼쪽 골목길에서 내 이름을 외치며 서두르라고 손짓 했다. 마름모가 골목의 사람들이 모두 주목할 정도의 큰 소리로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자칫 길을 잃을 뻔 했다. 발걸음에 속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마름모와 나는 아슬아슬하게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를 광장 한쪽 모퉁이에 주차하고 우리를 기다리던 가이드 겸 운전사가 반갑게 오른 손을 들어보였다. 곧이어 마름모와 나, 그리고 가이드와 동행하게 될 역삼각과 타원도 도착했다. 둘의 졸린 듯 한 눈매, 하얀 피부가 닮은 것으로 보아 나는 역삼각과 타원이 남매라고 추측했다.

우리는 악수를 하며 반갑기보다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역삼각의 머리를 덮고 있는 붉은색 모자와 붉은색 눈동자가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우리 넷은 이제 막 몸을 실어야 할 차의 작은 규모에 놀랐지만 좌우로 입을 씰룩거렸을 뿐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곧 빈 찻잔과 찌그러진 신발, 먹고 버린 깡통들이 실린 트렁크에 짐을 싣고 제마 알프나 광장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이드는 시속을 늦춰야만 했다. 도로 위는 망아지에 짐을 싣고 가는 사람, 말을 타고 가는 사람,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성이 났는지 움직이지 않으려는 말을 채찍질하는 소리, 망아지 목에 달아 놓은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차는 시내를 벗어나 희미한 새벽안개 속을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야 아주 멀리서 어렴풋이 닭 우는소리를 들었다. * 가이드는 잎이 둥글고 넓은 열대 선인장과 야자수가 드리워진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나와 역삼각은 번갈아가며 선인장 속으로 낮게 사라졌다.

 나는 도로 밑의 경사진 길에서 바지를 내리고 오줌 줄기가 개미 몇 마리를 데리고 흘러가는 것을 구경했다. 방향을 잃은 개미들이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마름모와 타원은 차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를 등진 채 양쪽 어깨를 떨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장악한 태양이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가이드와 나는 운전석 근처에 기대 맛이 강하고 텁텁한 모로코산 담배를 나눠 피웠다.

그러는 동안 역삼각과 타원은 트렁크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던 캔디나 카메라를 꺼냈고 마름모는 두꺼운 외투를 구겨 넣었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차 속에서 가이드는 우리를 위해 준비한 모로코 대중가요 테이프를 재생시켰고 테이프 속의 여자가 타악기 소리에 맞춰 목을 떨며 노래했다.

가이드가 손가락을 모아 핸들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우리들은 덜컹거리는 차의 리듬에 맞춰 덩달아 몸을 덜컹였다. 나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 차 내부에 달린 손잡이를 잡은 채 모래가 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높은 산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뾰족한 산 위로 하얗게 쌓여있는 눈이 눈부셨다. 우리가 탄 차는 뾰족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험준한 산세를 자랑하는 길을 달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는 멀미에 대한 두려움으로 잔뜩 긴장해야만 했다. 밑이 보이지 않는 계곡에서 공중곡예를 하는 기분이었다. 산을 내려가는 차들이 왼쪽 오른쪽의 산모퉁이에서 떨어지듯이 내달릴 때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낮은 숨을 쉬었다. 너무 밝은 태양, 산을 뒤덮고 있는 새하얀 눈으로 나는 점점 어지러워져 갔다.

 “얼마나 더 참아야할까요?”

가이드는 잠시 차를 멈추어 내가 앞좌석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휴식도 잠시, 우리는 또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갈 길이 멀었다. 앞으로 이틀을 쉬지 않고 달려야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평지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두 세 개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쳤다.

마을이라고는 해도 고작 삼분이면 지나쳐버릴 건물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도로가 전부였다. 주로 관광객을 겨냥한 전통 도예품이나 양탄자 따위를 걸어둔 기념품 상점들이 많았다.

장이 서는 날인지 닭이나 야채를 실은 트럭들이 건물 앞에 즐비했고 여자들은 푼돈을 손에 쥐어들고 아이들과 어슬렁거렸다. 남자들은 상하의가 연결된 원피스 같은 전통의상을 입고 트럭에 비스듬히 기대 있거나 높은 바위에 앉아 하얗고 뾰족한 산들의 정상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가이드는 마을을 지나가는 동안 차의 속력을 줄이고 창문을 열어 사람들에게 수인사를 건넸다. 마을 사람들도 가이드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수염을 씰룩거리며 웃어 보였다. “인샬라.” 나는 아랍어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가이드가 그 사람에게 손사래를 쳤고 그 사람은 작고 단단해 보이는 손으로 볼록한 배를 두드리며 큰 소리로 웃었다.

호기심 많은 마름모는 대화의 내용을 짐작하기 위해 두 손으로 코를 비비며 눈알을 굴렸지만 마름모를 제외한 역삼각이나 타원은 별로 궁금하지 않은 눈치였다.

“인샬라가 무슨 뜻이죠?”

마름모가 물었다.

“인샬라.”

“대체 인샬라가 무슨 뜻이냐구요.”

“인샬라는 인샬라야.”

가이드가 대답했다. 나는 가이드의 대답에 마름모는 입을 닫았고 나는 덩달아 의욕을 잃고 해발 1300m 남짓 되는 길을 천천히 걸어 오르내리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동물을 몰거나 짐을 들고 있지도 않았다. 단지 양 팔을 뒤로 묶어 뒷짐을 지고 걸어가거나 바위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인샬라.”

“어디로부터 돌아오고 있는 걸까요?”

“인샬라.”

역삼각이 가이드에게 물었고 가이드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웃음을 지었다. 나는 자꾸 그런 시원찮은 답변을 하려거든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변이 마려운지 두 발을 동동 구르며 타원이 말했다.

“얼마나 더 참아야 하나요?”

우리는 아직도 험준한 산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이드는 차를 세워 타원이 차에서 내릴 수 있게 했다. 뾰족한 산꼭대기에서 오싹한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차창 문으로 팔을 넣어 앞좌석 뒤에 달려있는 작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바람이 불어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코트 자락으로 동그란 바람막이 공간을 만들어 불을 붙였다. 타원은 이미 저 멀리로 작게 사라지고 있었다.

평지로 내려와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모로코 정통 음식을 잘한다는 식당에 가기 위해서였다. 가이드는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허름한 마을의 한쪽 건물에 차를 대었다. 건물 안에서 터번을 두른 남자가 뛰쳐나와 가이드를 부둥켜안았다. 가이드는 그의 등을 두어 번 다독거렸고 우리는 테라스에 앉아 메뉴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터번을 두른 남자는 우리가 메뉴판을 받아보기도 전에 토마토와 양파, 오이를 다진 샐러드와 감자와 양념된 고기, 콩 위에 계란을 덮어 오븐에 구운 요리를 가지고 나왔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마름모는 계란으로 뒤덮인 요리를 보고 당황했다. 하지만 곧 식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가이드는 모로코의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거듭 강조했다. 어려운 모로코의 경제를 위해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타원과 마름모는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고 역삼각은 쓰고 있던 붉은색 모자를 벗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나는 타원과 마름모의 입 속에 든 요리의 부서진 감자를 관찰하며 감자를 익힌 정도가 아주 적당하다고 잠깐 생각했다.

후식으로 차를 한 잔 마시고 차 앞으로 돌아와 누가 앞좌석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 눈치를 살폈다. 그 때 가이드가 하얀 종이의 계산서를 차의 지붕 위로 내밀었다.

“계약서에 따라 우리는 모든 돈을 미리 지불했어요.”

식사 후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역삼각이 가이드에게 말했고 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나는 역삼각의 왼편에 서서 나 또한 2박 3일간 모든 일정에 관한 돈은 모두 지불했다고 중얼거렸다. 가이드는 보조석의 작은 보관함에서 계약서를 꺼내들며 ()가 쳐진 조항을 가리켰다.

“계약서를 보라구.”

마름모는 계약서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계약을 할 때에는 분명 그런 조항이 없었던 것 같은데. 분명 이 계약서에는 가이드의 식비를 포함한 모든 식비는 여행자들이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군요. 우리 모두 돈을 지불해야 할 것 같은데요?”

가이드는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모욕감이 서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샬라.”

우리는 각각 800 디르함의 돈을 지불했다. 가이드는 차에 올라 음악의 볼륨을 높였고 졸음을 이겨내지 못한 우리들은 고개를 각각 다른 방향으로 돌려 잠을 청했다.

나는 회색빛 자갈들로 이어지는 사막 속에서 구름이 주저앉는 소리를 들었다. 옆자리에서 고개를 뒤로 젖힌 마름모의 입속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구름이 사라져갔다. 입속으로 사라지는 구름을 목격하는 일은 깊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유유히 떠다니고 있는 구름을 보는 일과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몇 시간이고 그 잿빛 사막을 달렸고 잎사귀가 없는 나무들이나 바닥으로 목을 고 코를 긁는 짐승을 마주했다.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아끄는 온 몸을 검은 천으로 휘감은 여자의 두 눈과 마주치기도 했고 자꾸만 머리 위로 미끄러지는 천을 끌어올리는 아이의 까륵 까륵 하는 웃음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서로가 목격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괜찮아?”

가이드가 물었을 때, 우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서로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이드는 커다란 모래 운동장 같은 사막의 한 귀퉁이에 차를 세웠다. 가이드는 안전벨트를 푸르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보이며 웃었다. 그를 따라 내려 기지개를 폈다.

오랜 시간 구류되어 있던 뼈마디들이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일행들은 듬성듬성 자라 있는 나무들이 있는 곳까지 걷기도 했고 담배를 태우기도 했다. 사막의 베르베르인들처럼 머리에 터번을 둘러보기도 했고 낮잠을 자는 맹수처럼 나무에 올라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는 나무가 있는 곳 주변을 서성이며 모래먼지를 마시거나 담배를 반쯤 태웠다. 타원처럼 터번을 둘러도 보았으나 베르베르인들이라기보다는 북유럽의 해적 같아 꼴이 우스웠다.

 나는 다른 일행들처럼 나무에 올라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마름모가 엉덩이를 쑥 내민 채 나무에 매달려 기를 쓰는 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키득거릴 때 그 결심을 거두었다. 나는 잠시 내가 잘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을 상상해보았다.

한 가지를 상상해보기도 전에 나는 가이드의 출발을 알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우리는 다시 비좁은 차에 실려 가이드의 애창곡을 들었다. 벌써 대여섯 번째 같은 곡이었다. 반복적인 리듬으로 졸음이 쏟아졌다. 테이프 속 여자는 오랜 시간의 노래 부르기로 거의 울 지경이었고 나 또한 그 목소리를 견디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 여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가이드는 핸들을 꺾고 비포장도로를 벗어나 사막으로 질주했다. 굵은 자갈들로 차가 덜컹거렸고 우리는 트렁크의 찌그러진 신발이나 짐짝처럼 함께 덜컹거렸다. 저 멀리에서 정체 모를 것이 반짝거리는 것 같기도 했으나 모래바람이 도무지 시야를 밝게 하지 않았다. 가이드는 차를 멈추었다. 우리는 멈춘 차 안에서 잠시 술렁거리는 모래바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죠?”

나는 총대를 짊어지고 가이드에게 물었다.

“사막.”

가이드는 짧은 대답을 하고는 차 문을 열어 밖으로 사라졌다.

“우리를 대체 어디로 데려 온 거지? 사막이 시작된 지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구.”

가이드가 사라진 차 속에서 마름모는 가이드의 비협조적인 답변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모래바람이 가라앉자 작은 호수가 부서진 빛들을 모아 반짝였다. 일행들은 차에서 내려 호수 쪽으로 걸었다. 중간 중간 작은 조약돌을 줍기도 했으며 손으로 물을 튀기며 웃음을 나누기도 했다.

 나는 자꾸만 진땅에 질척거리는 운동화나 조약돌 혹은 사람들이 성가셨고 너무나 차가운 물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어서 잽싸게 차에 실려 이 길의 끝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만 자꾸 들 뿐이었다. 그 때 저 멀리서 두 점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두 점은 점점 커져 바퀴가 되고 터번이 되고 몸이 되었으며 이내 손잡이와 손 페달을 돌리는 다리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 두 사람은 10초 남짓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자전거에서 내려 등에 맨 배낭을 내려놓고 우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잽싸게 배낭을 열어 간이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화석이나 장신구 따위를 진열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공손하게 우리를 우러러보았다. 크고 깊은 눈으로 일행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했다. 우리가 미안하다고 말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이반은 어머니의 화장대에 올려놓을 동그랗게 웅크린 소라모양의 화석을 사야만했다.

야자수가 빽빽이 들어선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가이드가 물었다.

“곧 카스바에 도착하니 문제없어.”

나는 카스바가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괜찮을 것 같았다. 뒷좌석에 앉은 나는 마름모와 몸을 부딪치지 않으려 몸을 잔뜩 곧추세워야 하는 이 여행을 잠시 멈추고 싶었다. 가이드의 말대로 길을 쫓아 간 곳엔 적당한 규모의 카스바가 있었다. 우리의 차가 카스바에 도착하자 다양한 연령층의 남자 대여섯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리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저마다 벽이나 차에 기대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그렇다고 믿기에 아직 그들의 숨이 너무 가빴다. 가이드는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500 디르함이에요.”

낯선 남자들은 카스바는 자신들의 소유이며 자신들의 안내 없이는 카스바 내에서 길을 잃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몇 초간의 고민 끝에 우리는 500 디르함을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카스바 구석구석을 탐색하다 보니 낯선 남자들이 없었다면 그들의 말처럼 우리는 길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카스바의 옥상에서 우리는 부드러운 능선 아래로 줄지어 있는 야자수 무리들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간격이 좁은 옥상과 옥상을 건너뛰며 날이 어두워지는 것을 구경했다. 우리는 가이드가 소개한 카스바를 개조해 만든 호텔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호텔의 옥상에서 우리는 닭과 호박, 양파 등을 꼬챙이에 꿴 요리와 라벨도 붙어 있지 않은 모로코의 와인을 마셨다.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친 역삼각과 타원은 마름모와 함께 와인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술기운이 오른 타원과 역삼각은 종종 손을 마주 잡거나 입을 맞추기도 했다. 마름모와 나는 잿빛 사막에서 주워온 열매에서 나는 냄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스바에 도착했을 때 우르르 몰려나온 남자들 중 두 명이 북을 두들기며 옥상으로 올라왔다.

우리는 북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었고 옆 테이블의 꼬마 여자아이도 신이 나 겅중겅중 뛰었다. 북을 두들기는 남자들이 비록 우리의 테이블에 있는 음식과 술을 집어 삼켰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잠을 청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왔다. 우리 모두의 지갑이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안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

우리는 또 다시 길을 달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식사 탓에 배가 고파오던 참이었다. 가이드는 근처의 한 식당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간밤에 도둑을 맞은 우리는 유일하게 도둑을 맞지 않은 가이드에게 여비를 빌릴 참이었다. 가이드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위험한 거래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빌린 돈의 2배를 갚는다는 조건을 걸고 우리들의 요구에 응했다. 가이드의 친절로 인해 우리는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당은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곳이라 비쌀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갈 길이 멀고 그 길에서 식당을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야만했다. 가이드는 식당 매니저와 악수를 하며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와 메뉴판을 건넸다. 우리가 메뉴를 고르고 있는 사이 역삼각이 가이드에게 물었다.

“아는 식당인가요?”

우리는 가이드 쪽을 한 번 쳐다본 뒤 메뉴판을 읽어 내려갔다.

“동생이 하는 식당이야.”

가이드가 말했다. 메뉴와 가격을 훑어 본 마름모가 말했다.

“다른 식당들보다 세 배나 비싼데요.”

나는 배가 고팠고 다른 식당으로 가는 긴 시간을 배고픔으로 견디고 싶지는 않았다.

“음식이 아주 훌륭하거든.”

가이드가 말했다.

“가이드의 말이니 한 번 믿어 보도록 하죠.”

타원이 말했다. 타원은 그렇게 말한 뒤 종업원을 불러 음료를 주문했다. 우리 또한 각자의 메뉴를 주문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가이드는 음식의 값을 계산하며 영수증을 써주었다. 우리는 고맙다며 싱긋 웃어 보였다.

드디어 우리는 모래 언덕이 시작되는 사막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우리는 꼭 필요한 짐들을 트렁크에서 꺼내 작은 가방에 옮겨 넣었고 사막의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었다. 가이드가 낙타지기에게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우리는 가이드로부터 또 다른 영수증을 받았다. 나는 낙타와 가까워질수록 그의 압도적인 겉모습에 놀랐다.

상상했던 것보다 털은 거칠었고 불룩 튀어 오른 등은 매우 단단했다. 조련사와 낙타지기는 낙타의 고삐를 단단히 붙들었고 내게 손을 건넸다. 나는 두 다리를 있는 대로 벌려 낙타의 안쪽 다리와 꼬리 안쪽으로 단단히 연결된 안장 위에 올라탔다.

몸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는 두 손을 가까스로 말아 쥘 수 있는 손잡이가 전부였다. 낙타위에 얹힌 안장은 자전거나 오토바이의 안장보다 훨씬 커서 다리를 벌린 허벅지 안쪽 근육이 저릿저릿했다. 낙타지기가 낙타의 목을 두드리자 낙타는 기우뚱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중심을 잃고 흔들리며 비명을 질렀고 조련사는 ‘쉬-쉬-’라고 할 뿐이었다.

일행이 하나 둘 자신의 낙타에 올라타는 것을 지켜보며 누군가는 나처럼 소리를 지르길 바랐으나 신기하게도 단 한명도 그러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낙타가 일서서는 동안 잠시 호흡을 멈추거나 두려움을 감추려 어색하게 웃는 소리를 내기는 했다. 우리는 팔려가는 물건처럼 줄줄이 엮인 낙타위에 얹혀 사막의 입구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낙타위에 혼자 남은 나는 숨을 죽이고 낙타들이 모래 차는 소리를 들었다. 혹은 종종 앞서가는 일행의 낙타가 모래를 차는 소리에 맞춰 용변을 해결하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나는 도무지 낙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낙타를 이해하는 대신 정지한 시간 속에 멈춰있거나 깨져버린 사막의 느리고 무거운 바람들을 세는 데에 몰두했다.

모래언덕을 이루는 부드럽고 강한 선들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모양이 같은 선은 없었다. 그것은 직선 같기도 했고 곡선 같기도 했다. 선들이 모여 언덕을 이루었고 계곡도 이루었다.

우리는 방향을 잃은 채 모래사이로 끌려 다녔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갈 때 쯤 낙타지기는 걸음을 멈추고 순서대로 낙타의 다리를 걷어차 그들을 꿇어 앉혔다. 나의 낙타는 왼쪽 앞다리를 시작으로 오른쪽 앞다리, 왼쪽 뒷다리, 오른쪽 뒷다리 순으로 다리를 접었고 나는 사방으로 흔들렸다. 나는 손잡이 하나로 쏟아지는 몸을 지탱하는 동안 왈칵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나 그러지는 않았다.

나는 낙타가 주저앉자마자 모래땅으로 서둘러 내려왔고 낙타지기는 낙타가 주저앉자마자 낙타의 접힌 종아리와 허벅지를 노끈으로 동여맸다. 낙타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붉은 모래언덕 너머를 바라보거나 묶인 다리에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졸았다. 우리는 붉어지는 해를 자세히 보기 위해 모래 언덕을 오르기로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적마다 모래언덕이 삽시간에 무너질 것만 같아 조심스러웠다.

경사가 높아져 발등과 종아리 사이를 이루는 각의 각도가 줄어들었고 나는 순식간에 뒤로 넘어질 것만 같아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발목의 힘이 빠져 아래로 미끄러지는 것만 같았고 눈앞엔 손에 쥘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행들은 답답하다는 듯이 정상에서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는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제 그만 이 길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 낙타지기가 언덕 꼭대기에서 내 손을 잡아주러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욕지기를 어질 모두가 떠나간 그 모래언덕의 중턱에 주저앉아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낙타지기는 내 손을 잡아끌었고 나는 한 손으로는 그의 손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바지춤을 잡은 채 언덕을 기어 올라갔다. 울상이었고 낙타지기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연신 괜찮다고 했다.

붉은 노을은 저 멀리 단단해 보이는 모래언덕들을 두들기며 스러져갔다. 모두가 잠시 침묵했고 나는 모래 언덕을 어떻게 내려갈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했다. 일행들은 소리를 지르며 모래 언덕을 뛰어 내려가거나 두 손을 가슴에 놓은 채 모로 누워 굴러 내려갔다. 낙타지기는 평평한 길을 걷듯 모래언덕을 걸어갔고 나는 눈썰매를 타듯이 엉덩이를 미끄러뜨리며 언덕을 내려갈 참이었다. 하지만 모래언덕에서 엉덩이는 생각보다 잘 미끄러지지 않았다. 모래가 머금은 습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쪼그려 앉은 채 양 손으로 땅을 짚고 내려와야만 했다. 일행들은 언덕 아래 낙타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고 더 빨리 내려가려 다리를 조금 더 곧추 세웠지만 걸음은 좀처럼 빨라지지 않았다. 낙타에 오를 때 낙타지기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또 다시 괜찮다고 위로했으나 일행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낙타나 모래 언덕 따위를 두려워할 수도 없는 이 상황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해가 모두 지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둠이 사막을 덮칠 때쯤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의 막사 무리에 도착했다. 숙소는 듬성듬성 무리 진 천막들 중 하나였다. 막사 입구에는 언제부터인가 남매로 보이는 예닐곱 살의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하나가 무릎을 꿇고 화석이나 장신구 따위를 진열해놓은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들은 밝은 미소로 그들에게 인사하였으나 아이들의 물건을 사지는 않았다. 마름모는 입구를 지나치며 아이들에게 동정심으로 물건을 파는 법을 가르친 부모를 욕했고 타원은 아이들이 가엾다며 돌아가 물건을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그들에게 30 디르함을 주고 검정 조약돌 두 개를 샀다. 역삼각은 천막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시설을 점검했다.

나는 이곳에서 보게 될 칠흑 같은 어두운 밤하늘의 별들이나 작은 모닥불을 고대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의 막사는 모두 다섯 개의 천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왼쪽으로는 우리의 침실이 될 두 개의 천막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간이부엌과 낙타지기의 침실인 천막이 있었다.

정면으로는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나무 테이블과 의자, 램프가 놓인 다용도 천막이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천막으로 들어가 짐을 놓고 다용도 천막으로 모였다. 낙타지기가 끓여온 민트차를 마시며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일행들은 스피노자나 보르헤스 혹은 사르트르나 헤세와 같은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유일한 문학전공자였던 나는 종종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그들이 언급한 작가들에 대한 의견을 내놓으려 했으나 관심이 없어 하거나 금세 잊혀 질 이야기 같아서 관두었다. 나는 통기타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였으나 역삼각이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나는 와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 때 타원이 통 기타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으나 타원이 좋아하는 그룹을 나머지 두 사람 또한 좋아하는 바람에 그 그룹의 이름을 메모장에 적어 넣는 정도의 일을 하는 정도로 그쳤다.

낙타지기가 통기타와 모로코 전통 타악기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기타를 취미로 배웠다는 타원이 기타 현을 매만지며 연주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타악기는 낙타지기와 마름모가 나누어 두드렸다. 역삼각과 나는 박수를 치며 아무 노래나 흥얼거렸다. 그들은 타악기를 바꾸어 가며 두드렸고 나는 음악에 맞춰 소리 없이 터지는 폭죽 같은 별들이 보고 싶었다.

낙타지기는 직접 요리한 음식들을 하나 둘씩 내왔다.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보다 맛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또한 훌륭한 맛이었다. 우리는 낙타지기와 저녁식사를 하며 낙타지기를 비롯한 사막에 사는 베르베르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낙타지기는 사막을 걷다보면 모로코와 알제리에의 국경이 맞닿는 곳이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사막에도 군사경계선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나는 우리나라의 휴전선처럼 철조망이 길게 드리워진 사막에 서 있는 어린왕자를 상상해보았다. 저녁을 마친 후 우리는 낙타지기가 마당에 피워놓은 모닥불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 보았다. 사막 위로 반짝거리는 별들이 그물망처럼 걸려있었다. 그들이 나뭇가지를 하나씩 들고 모래땅에 무언가를 적어가는 동안 나는 그 별 그물 아래서 막사와 멀리 멀리 떨어져 달렸다.

마구 달리다 보니 막사를 등진 사막은 경험해보지 못한 어둠이어서 더럭 겁이 났다. 티브이에서 보았던 사막의 독사를 상상하기도 했고 만화에서 본 모래 늪을 기억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작은 모래구덩이를 파고 바지를 내려 세차게 오줌을 누었다. 사막의 독사가 허우적거릴 수도 있겠고 모래 늪으로 사라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막사로 돌아온 나는 새벽이 올 무렵의 모래언덕엔 울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모든 울음은 정리되어 습기를 머금은 모래언덕처럼 단단해진다고 생각했다. 양 손으로 두 눈을 비비니 눈가에서 모래가루가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내 눈 속을 스쳐간 모든 풍경이나 얼굴들이 흐려져 가고 있었다. 나는 바닥으로 떨어져 사라진 모래가루들을 모아 1.5L짜리 물병에 차곡차곡 담았다. 낙타의 용변으로 보이는 검은 알갱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나는 담요 다섯 장이 놓인 천막의 침실로 돌아가 몸을 뉘였다. 자꾸만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

손뼉 사이로 차갑게 공기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다섯 시를 알리는 소리였다. 낙타지기가 낙타를 깨운 뒤 우리들을 깨우러 왔다. 이제 우리의 짐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가슴을 짓누르는 담요를 걷어 내고 밖으로 나왔다. 마름모가 바지런한 소리들을 듣고 머리를 매만지며 따라 나왔다. 역삼각도 타원도 낙타에 올라탔다.

우리는 낙타의 등에서 흔들거렸고 낙타의 꼬리들이 푸르스름한 새벽을 공기 속에서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가 흔들리는 시간은 그대로 길이 되었다.

그것은 직선 같기도 했고 곡선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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