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토론을 교육의 핵심경쟁력으로 생각하는 소르본

기자가 찾았던 지난 8월 파리 중심부의 소르본 거리는 서늘해진 늦여름의 공기가 낮게 드리워 있었다.

소르본의 분위기는 기대했던 젊음과 자유, 토론이 오고가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인적은 드물고 경비는 삼엄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 2월부터 4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파리 4 대학의 파업사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2008년 초 사르코지 정부는 지난 수년 간 무산되었던 ‘대학 자유와 책임에 관한 법 (LRU)’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사르코지 정부의 대학 개혁의 핵심은 각 대학이 정부의 지원을 벗어나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라는 것이었다. 개혁안은 연구실적의 질이 아닌 양을 평가하여 교수를 선임하는 방식과 정부 보조금을 점진적으로 차등지급함으로써 대학 간의 경쟁을 촉발시키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파리 4 대학은 이러한 정부방침에 맞서 2009년 3월 19일 “지식은 시장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총장이 직접 나서서 파업을 주도했다. 학생과 교수, 교직원이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이같은 저항의 배경에는 1968년 수많은 학생들이 68혁명으로 일궈낸 ‘모든 인간을 위한 교육’이라는 고등교육의 전통이 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짙게 깔려있다.

인간을 양성하는 인문학전통

파리 4대학이 위치한 라틴 구역은 12세기부터 신학과 인문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학생들과 여러 스승들이 모여 야외 학술토론을 하면서 근대적 개념의 대학이 등장한 곳이다. 점차 철학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문화로 명성을 얻게 된 이곳에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파리 4대학의 원래 이름은 소르본대학이다. 800년의 역사를 가진 소르본 대학은 1968년의 혁명을 지나오며 평등주의에 입각한 파리 4 대학으로 교명을 바꾼다. 학벌주의의 폐해를 거부했던 68혁명은 파리에 있던 대학의 이름을 파리 1대학, 파리 2대학 식으로 바꾸었다. 파리 대학의 명칭으로 나뉜 13개의 대학은 각각 저마다의 특화된 학문을 바탕으로 유럽 고등교육의 산실이 됐다.

혁명 이후 파리의 대학은 평준화 교육을 제공하고 바칼로레아 (Baccalaureat)라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통과한 모든 학생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했다. 바칼로레아는 겉으로는 한국의 수능과 비슷하지만 논술과 구술면접으로 시험이 이루어지는 절대 평가 시험이라는데 큰 차이가 있다. 개인의 철학적 지식과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바칼로레아 시험은 정답이 없다. 이러한 독특한 교육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고력의 확장을 도우며 프랑스가 예술과 문학과 같은 기초학문을 발달시킨 원동력이다.

스페인어 3학년에 재학 중인 Lea는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 독서습관과 다양한 문화경험이 학업의 거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불어를 전공하는 소경미 씨는 강의를 들으며 문화충격을 경험했다고 한다.

“강의과목과 무관하게 강의 중에 교수들이 프랑스의 역사 혹은 서양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학생들이 그에 대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프랑스 친구들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습득한 인문학 소양을 바탕으로 수업에 임하기 때문에 그들과 어깨를 겨루기 위해서 밤낮없이 노력 해야만 했다”

공부잘하는 몇몇의 학생이 아닌 모든 사람을 향하는 교육을 실현하기위해 프랑스정부는 그동안 대학 재정의 77%를 지원했다. 프랑스정부는 국가예산의 23%를 교육부문에 투자하고 크루스(CROUS)라는 학생복지기관을 직접 운영한다. 크루스는 상담센터와 학생식당을 운영하며 내외국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기숙사를 제공, 아르바이트를 알선해주는 등 프랑스 대학생의 생활을 책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해 소르본 학비는 약 150유로(약 27만원)다. 그 중 60유로 (약 10만원)만이 등록금으로 지불되며 나머지는 보험료와 도서관 이용료로 쓰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상에 가깝다. 학생 등록금은 학교 운영에 30%를 차지하지만, 실제 거의 모든 대학재정은 정부지원에 의존한다.

불어학과장인 Olivier SOUTET 교수는 누구에게나 열린 평등한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보다 훌륭한 인재로 완성시켜 프랑스 사회에 기여하게 한다고 말한다. “정부로부터 교육의 혜택을 받은 개인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교육의 핵심

프랑스 특유의 토론문화는 사르트르, 카뮈와 같은 철학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소르본 대학 주변에 즐비한 노천카페에서 과거 소르본에서 공부하던 프랑스 지성인들은 철학 담론을 나누곤 했다. 파리 4대학은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옆으로 기다란 형태의 건물로 이루어져있다. 캠퍼스에는 잔디밭이 없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 주변 카페나 룩셈부르크 공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만난 Loan은 공강 시간이나 방과 후에 그녀의 친구들과 토론 하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토론 주제는 정치적 이슈는 물론 교수들의 신간 서적이나 고대 그리스 철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토론을 통해서 다양한 시각과 능동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습니다. 토론은 소르본 학생들의 문화가 아닌 열정이죠”

토론과 독서를 즐기지 않는 학생은 소르본에서 공부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왕성한 토론문화는 소르본 교육 체계에 고스란히 담겨 강의실로 이어진다. 수업은 약 200여 명의 학생들이 대형 강의실에 한데 모여 수업을 듣는 대강의(大講議)수업과 20명 단위의 소그룹으로 토론을 나누는 소강의(小講議)수업으로 나눠진다.

주목해야 할 수업은 TD(Travaux diriges)라는 소그룹 토론 수업으로, 교수는 심층적인 주제를 던져 학생들 간의 생산적인 논쟁을 유도한다. 논쟁은 학생과 학생을 넘어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조별 토론은 대규모 수업에 따라 2주 혹은 1달에 1회로 추가되고 이에 별도로 성적이 산출된다.

각 조에는 강사들이 배정되어 실습과 토론을 돕는데 이를 위해 학과마다 특정인원의 전문 강사(주로 박사과정)를 매년 임용한다. 토론 수업의 목적은 개인의 의견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위함이 아닌 논리의 줄기가 얼마나 일관적이고 올곧은 지를 판단하기 위함이다.

자기 자신과의 경쟁을 유도하는 학풍

소르본 학생들은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기 위해서 매년 일정 학점을 이수하기 위한 시험을 본다. 시험은 논술과 구술로 이루어지며 논술 시험은 학생들이 충분히 생각하고 글을 정리할 수 있도록 4시간으로 배당되고 있다. 논술 점수의 절반은 학기동안 부여되는 논술 과제로부터 오는데 이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학생들이 학문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돕는다.

이러한 유급시험에도 학생들 간의 경쟁 심리는 크지 않다. 학점은 절대평가로 20점 만점에 10점만 넘으면 진급이 인정된다. 그러나 교수진의 평가가 까다로워 합격점인 10점을 넘기 쉽지 않아 매년 진급하는 학생의 수는 줄어드는데 매년 시험 난이도를 조절하여 진급률을 약 50%선에서 유지한다.

그래서 학생의 분포는 고학년으로 올라갈 수록 학생 수가 줄어드는 완만한 피라미드 모형을 나타낸다. 소르본의 유급제도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상대적인 점수와 등수를 매기지 않아 그들이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도록 이끌고 있다. 자기 자신과의 경쟁은 교수와 연구원들에게도 적용된다.

미국식 교육개혁의 파도

프랑스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교육의 공공성과 전인적(全人的) 인간의 완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프랑스의 대학도 이제 경쟁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미국식 대학개혁이라는 큰 파도에 직면해 있다. 인간 보다는 경쟁을 통한 이윤의 창출이라는 파도속에서 프랑스 대학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자신들의 길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거센 신자유주의의 파도에 굴복할 지 그것도 아니라면 제 3의 길을 선택할 지 세계는 그들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식 교육제도 만능주의에 빠져있는 한국 대학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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