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연재를 시작하며

차례

1.연재를 시작하며
2.新羅佛敎(신라불교)
3.新羅美術(신라미술)
4.新羅佛塔(신라불탑)
5.新羅金石文(신라금석문)
6.新羅歌謠(신라가요) (狼山(낭산)을 中心으로)
7.新羅(신라)남산유적
8.新羅古墳(신라고분)
9.新羅(신라)화랑도
10.新羅社會相(신라사회상) (골품계를 中心으로)


  한 민족의 문화형성은 투쟁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국가와의 역학적 관계로 인한 대립과 투쟁으로 그 민족의 文化가 형성·발전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경제적 강국이 문화적 강국으로 확대되어 약소민족은 문화적 식민지로 전락되어 가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할 때 우리 文化의 뿌리를 찾아 그 원류를 올바로 인식하고 퇴색되어가는 민족 文化의 뿌리를 찾아 그 원류를 올바로 인식하고 퇴색되어가는 민족文化 재정립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특히 韓·日교과서 왜곡사건 등 외부적 혼란으로 흔들리는 민족문화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절실감이 우리 모두에게 피부로 느껴야만 하겠다. 더군다나 근래에 드러나고 있는 虛失(허실) 즉 남의 文化를 내나라 文化인 듯 借用(차용)하는 國民性(국민성)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純粹性(순수성)을 잃은 채 외래 文化에 휩싸여야하는 것인가.
  氏族社會(씨족사회)로부터 部族社會(부족사회)를 거쳐 부족연맹, 古代國家(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추면서 우리의 魂(혼)을 만들고 신라 千年(천년)의 歷史(역사)의 文化를 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전통을 흡수한 상태에서 未來(미래)로 향한 발전은 가일층 완전할 것이며 이를 통한 기점에서 外來文化(외래문화)의 수입은 더욱 견고하고 참신하게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이에 민족성의 회복내지는 新羅人(신라인)의 얼을 찾자는 의미에서 ‘신라 文化 그 맥을 찾아’란 타이틀로 늦은 감이 있으나마 연재 기획이 나가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지면을 통해 新羅(신라)의 전반적 사항을 고찰하고자하는 지점에서 신라의 근원 說(설)을 잠시 살펴보면 12中升頃(중승경)인 高麗(고려) 仁宗(인종) 23年에 金富軾(김부식)이 편찬한 三國史記(삼국사기) 卷第一新羅本紀(권제1신라본기) 第一에 의하면 “始祖(시조) 性朴氏(성박씨), 諱赫居世(휘혁거세), 前漢孝宣帝王鳳元年申子(전한효선제왕봉원년신자), 四月丙辰(사월병진) (一日正月十五日(일일정월십오일)) 卽位(즉위) 號居西干(호거서간) 時年十三(시년십삼), 國號徐那伐(국호서라벌)”이라고 전해진다.
  한편 古代(고대) 三國時代(삼국시대)에서는 한강유역을 國土化(국토화)하는 국가가 국가의 제도적 정비 및 國力(국력)의 신장을 기할 수 있었으므로 6세기 후반에 들어 三國(삼국) 중 신라는 한강유역을 포함한 대동강유역을 최후로 확보하고 최초의 민족통일의 유업을 달성하였다. 三國統一(삼국통일)의 歷史(역사)적 의의를 들자면 원래부터 후진성을 면치 못했던 신라가 국가의 존속만을 위하여 투쟁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부산물 격이 된 三國統一(삼국통일), 그것은 신라 국가세력의 자기 성장과 그 발전과정의 추진에서 쟁취한 성과였다는 것과 삼국이 대립하고 항쟁하는 과정에서 각기 독립된 민족국가의 분열 상태로 고정 지속될 수 도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였던 데서 그 당위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민족적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의 민족국가로 통합되어 한 민족의 형성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그 지니는바 의의가 큰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이후 신라사회와 文化, 정치, 경제, 종교, 예술의 각 분야에 걸쳐 종래의 삼국시대와는 다른 성격의 독자적인 통일된 민족문화를 형성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삼국을 통일하고 불교를 통한 민족文化의 暢達(창달)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통해서라도 폐부 깊숙이 한번 음미해보고 넘어감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민족의 통합성을 토대로 발전한 신라史를 재인식하고 수긍하는 입장에서 활동 중인 各 연구소를 살펴보면 60년 4월5일에 발족한 영남 大學校의 ‘신라·가야 文化연구’라는 12집의 논문 간행과 몇 차례의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으며 지난 80년 9월 1일字 同大學(동대학)의 ’民族文化(민족문화)연구소‘로 통폐합되어 실질상 신라 文化의 연구는 축소화되었다.
  한편 신라문화의 연구에 대한 학계의 전문적 기관으로서 그 시초가 될 本大學(본대학)의 ‘신라 文化연구소’가 지난 81년 9월9일자로 개소식을 가져 현재까지 ‘신라文化의 諸問題(제문제)’란 타이틀로 2回(회)에 걸쳐 심포지엄을 가져 어느 정도 신라史뿐 아니라,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해석, 연구하는 歷史學的(역사학적) 초석을 다지고 있다.
  신라시대의 불교사상, 미술, 문학 역사 등 제반 문화유산과 그 유지 보존 및 경주지방의 개발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민족문화의 계승발전을 도모하고 신라문화에 대한 현대적 재조명을 근본 취지로 삼고 있는 신라문화의 지속적인 연구가 이 시대의 마지막 횃불을 당기는 민족 문화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날로 변조되어가는 문화의 맥을 찾아서 민족중흥의 근원이 되었던 신라인들의 유업, 즉 동양사상의 핵심을 이루며 신라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후에는 고려시대의 佛心(불심)의 총합으로 이룩한 팔만대장경 조선시대의 억불승유정책에 숨어 지내야만 했으면서도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석보’ 등의 고전이 현재까지도 그 빛이 면면하는 불교를 재조명하는 입장에서 신라의 고대불교를 고찰하고 그와 함께 자리를 굳혀온 고대미술, 종교적 영향과 불심의 정수를 달성한 불탑, 佛(불)의 사상과 儒敎魂念(유교혼념)을 바탕으로 世俗五戒(세속오계)를 실천이념으로 하여 호국이념을 기리며 심신을 달련시키던 花郞徒(화랑도), 신라고분, 봉우리계곡 속속들이에 숨어있는 신라문화의 보고인 狼山(낭산)을 중심으로 한 남산의 巡禮(순례), 또 불교적 도량, 자연과 인생에 대한 소박한 감정을 또는 安民魂世(안민혼세)의 이념까지 평출해냈던 신라 중엽부터 고려 초까지 민간에게 널리 유행하던 우리나라 고유의 詩歌(시가)인 신라 가요 등을 재조명하는 기조에서 문화 예술 종교 사회구조 및 사회상으로 나눠 필진을 구성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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