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文學新人賞(한국문학신인상)’으로 데뷔

  남쪽지방엔 벌써 꽃망울이 터지고 있다니 정말 봄인가보다. 83년 3월 ‘한국문학신인상(소설부)’을 수상한 鄭燦周(정찬조)동문께 봄 인사도 드릴 겸 축하인사도 드릴 겸 커피를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았다.
  수상작인 ‘유다 學舍(학사)’는 퇴폐하거나 윤택한 젊은이의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젊은이의 사랑과 좌절을 지치리만치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치기·오기·객기는 우리 창작 하는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갖고 있어야 할 것들이죠. 막상 등단을 하게 되니 이젠 그 철없던 시절의 치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듬성듬성한 잇새로 티밥 같은 웃음을 흘리며 내게 커피를 권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교편을 잡았으나 ‘스승’이란 위치의 책임의식과 압박감 때문에 絶筆(절필)상태에 있다가 작품을 못 쓰고 있다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내는 사표를 냈다고 한다.
  “창작인이 글을 못쓰는 것은 붕어가 물을 잃은 거나 다름없어요.”
  鄭(정)동문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앞으로 1년간은 집필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한다. 대학 재학 시 ‘地圖(지도)’라는 동인지를 만들어 의욕적이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기도한 그였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땐 여자들 옷 벗기는 소설이 대인기였죠. 오죽하면 난 여자 옷 입히는 소설을 쓰겠다고 떠들어 댔겠어요.”
  鄭(정)동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없는 문학의 흐름을 안타까워하며 “난 앞으로 시대감각을 지닌 고발적인 참여문학과 김동리씨 작품세계 같은 인간내면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본격 문학을 할 작정입니다.”라면서 그의 생각을 조심스레 말했다.
  “상상은 충격이고 충격은 곧 감동입니다. 상상·충격·감동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죠.”
  구상중인 소설은 많으나 틀이 잡혀지지 않아 못쓰고 있다며 틀이 잡혀지면 소설제조기라도 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첫 딸을 낳은 애아버지답지 않게 농담을 했다.
  “치열한 프로의식이 부족한 탓으로 그동안 東大文學(동대문학)이 주춤했으나 곧 잠재적인 재능이 빛을 볼 겁니다.”
  鄭(정)동문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에서 밝아질 東大文學(동대문학)을 보는 듯 했다. 鄭(정)동문이 사주는 점심을 먹고 금방 꽃이라도 피어날 듯한 종로거리에서 우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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