單幕戱曲(단막희곡) 勝負(승부)

  어느 저수지가 있는 소읍(小邑)의 역 부근 술집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왕대포와 국밥집. 드럼통으로 된 연탄화덕과 나무탁자, 의자들이 보인다. 어느 구석엔가 비에 젖은 비닐우산 하나가 보임으로 봐서 밖은 비가 내리고 있는 모양이다.
  사내1은 낚시꾼차림. 범접할 수 없는 무장을 하고 있는 듯하다. 사내2는 노무자차림이며 벌써 제법 취기가 올라있다. 그러나 결코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사내들은 모두 삼십대 중반에 들어선 듯하다. 다른 탁자에 않아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비바람소리 열차의 소음 등을 적절히 효과음으로 사용해도 좋다.
  사내2 사내1을 바라보며 자꾸 뭔가 얘기하려는 듯 몸을 들썩거린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사내2=저어-, 봅시다 노형! 실례 좀 할까 해서 부르는 거요.
사내1=(빤히 쳐다보며)좋습니다. 실례 좀 하십시오.
사내2=실례가 턱없이 많아질지도 모를 일이요.
사내1=가는 데까지 가봅시다.
사내2=후후 (웃으며)거 좋시다. 댁이 막힌 분이 아니라 어딘가 뚫려있다고 내 첫눈에 알았으니까…. 그건 그렇고 보시오. 내 주전자는 이렇게 비어있고 (주전자를 흔들며) 노형의 술병(4홉들이 소주병)은 그렇게 꽉 차있다 이고요. 바로 이점이 문제가 됐다 이 말씀이요.
사내1=그래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참이요.
사내2=(주전자를 들고 일어나 사내1에게 가서 소주병을 반쯤 비게 따른 후 돌아와 앉아서) 이렇게 할 작정이었소.
사내1=그것 참 해결치고는 아주 그럴듯한 해결입니다. 그려 그럴듯해요.
사내2=그렇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는 않을게요. 내 훤히 내다보지만 여기서 끝나지는 않을게요. 그렇구말구. 가면 갈수록 첩첩산중이요. 물 건너 또 물이 있거든. 언제나 그랬으니까. 넘어진 다음에는 쓰러지고, 쓰러진 다음에는 엎어지고 또 들이받히고… 깨진 코 아물라치면 뒷통수가 터지더만 말이지. 손에는 붕대 푸는 날이 바로 다리에 기브스하는 날이더라 이거요. 아시겠오. 노형. 노형이야말로 그럴듯하군. 저 낚시가방이며 옷차림하며 면도질 잘한 턱주리가리하며…형씨야말로 그럴듯해.
사내1=턱주가리라. 당신은 뜸 들이는 법은 모르고, 항상 속전속결만 해오신 모양인데. 그랬으니 코 깨지고 뒷통수 터질 수밖에.
사내2=히히, 노형 말씀에 까시가 있구만. 쇠못같은 까시 말씀이야. 그런 까시는 목에 걸린 갈치 뼈다구하고는 다르지. 그 집에 있어서 다르구말구. 될 어쩌자는 수작인지 그 정도는 나도 알고 계시지.
사내1=알고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자아, 그러니 어찌됐던 인연이요. 우리 건배나 한잔 듭시다. 한 시간 반 후면 떠나야할 몸이요. (잔을 든다)
사내2=아 그러셨던가. 그렇지만 노형의 기차표는 벌써 날라가 버린게나 다름없지. 오늘밤 비도 촉촉이 내리는 밤, 제대로 임자를 만난 다음에야 기차표가 무슨 소용이 될라구.
사내1=글쎄, 가는 데까지야 가보는 것이지만…거 건배를 청한 사람 손 떨어지겠시다.
사내2=(잔을 들어올린다) 거 좋지 건배! …위해서 건배!
사내1=(웃으며)…위해서 건배! (두 사람 마신다)
사내1=이거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사내2=반갑소, 참으로 오랜만이요.
사내1=그럼 서두르지 말고 서서히 시작해 보실까요.
사내2=서두르지 말고 서서히… 물론이지 서두르면 내기에서 질껀 뻔하니까. 마음만 앞서서 다급해지면 벌써 일은 반 넘어 그르친 셈이니까. 이점 어떻게 생각하시오. 노형.
사내1=전적으로 동감이요. 서두르면 가장 중요한 가장 기초적인 단서를 지나쳐버리기 일쑤니까. 조심성, 찬찬함, 용의주도함, 이런 건 다 먹고 살자면 필요한 덕목(德目)들이지.
사내2=그런데 올라가실꺼요, 내려가실꺼요.
사내1=올라갈 겁니다. 이 마을 분이십니까?
사내2=아니, 아니, 난 고향이 없는 놈이요. 척 봐서 아셨겠지만 난 주거지도 없는 놈이요. 그러니까 발길 닿는 데마다 내 고향 머무는 곳마다 내 집. 뭐 이런 유행가에 걸맞는 놈이라고나 할까.
사내1=불심검문 당하면 골치 꽤나 썩히겠시다.
사내2=불심검문이라. 형씨 부탁이 있는데 이점 짚어두고 넘어가야겠구만.
사내1=무엇을?
사내2=날 시시하게 보지 말라. 나를 뭇뭇하게 보지 말라. 나를 불쌍하게 보지 말라. 이거요.
사내1=그래요. 내 부탁은 오해하지 말라 잘못 짚지도 말라 속단하지 말라 이거요.
사내2=후후 좋았어. 그럼 노형 이제 우리 한바탕 우습시다.
사내1=…
사내2=내 청을 거절할 생각이요. 한바탕 웃어주지 않겠다는 거요.
사내1=하나 더 보태서 내 부탁은 웃음을 강요하지 말라도 넣어야 되겠군.
사내2=후회하실걸.
사내1=당신 또한 후회할거고.
사내2=내가?
사내1=바로 당신이.
사내2=왜?
사내1=당신의 이름, 당신의 나이, 당신의 직업, 그 밖에 당신에게 속한 모든 것 때문이지.
사내2=제법 능숙하게 떡밥을 뿌리시는데. 제법 능숙해, 숙련되어 있어.
사내1=당신 또한 마찬가진걸.
사내2=나라는 사람 이래뵈도 시시한 미끼따윈 물지 않는 놈이요. 이무기가 낚시꾼의 낚시바늘에 걸려물었단 말 들어봤오. 지렁이를 무는 건 언제나 붕어나 메기새끼들 뿐임을 아실 법도 한데.
사내1=모르시는 말씀. 내 고기 바구니에 그 이무기란 놈이 버젓이 포로가 되어있다면 어찌하겠소.
사내2=그건 분명히 이무기가 아닐테지.
사내1=당신 눈에 그놈이 분명 이무기임을 확인시켜준다면
사내2=악착같군, 한 번도 내기에서 져 본적이 없는 모양이야. 그래 당신은 악착같은 데가 있어. 너무 악착같아서 많은 사람 약을 올렸을거야.
  비바람소리 그 사이로 둔박한 시계종소리 울린다. 아홉 번일까 아니면 열 번,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
  사내1 장난기 섞인 웃음으로 어색한 긴장을 준다.
사내1=형씨, 수수께끼 많이 들어보셨소,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를 아시오 그 맛을 아시오…이를테면 나는 낚시질 방법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사람이요. 떡을 두둑히 뿌린다. 좋은 미끼를 건다. 불을 최대한 밝힌다. 정신통일을 하여 찌를 응시한다. 이런 따위는 누구나 써먹는 상투적 방법이지. 그러나 찌보다는 하늘의 별을 더욱 많이 바라볼 것. 침묵할 것이 아니라 콧노래를 부를 것, 등등이 내 신조요. 그러다보면 문득, 참으로 문득…
사내2=이무기가 잡힌다. 이 말씀이렸다.
사내1=………
사내2=그러나 나는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수수께끼를 던지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보시겠소.
사내1=아직 차시간도 남았겠다. 술을 한 병 더 사리다. 당신이 원하는 술로 당신이 원하는 만큼.
사내2=현명하시군. 놀랍도록 현명해 어디서 저런 똑똑한 생각이 나오는 걸까.
사내1=글쎄.
사내2=그렇지. 그래 부인께서는 안녕하시오.
사내1=마누라는 언제나 안녕.
사내2=(손을 들어 흔들며)안녕. 그랬군. 역시 보름달같은 부인께서 언제나 안녕하신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거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아드님께서도 안녕하시구.
사내1=죄송스럽게도 아드님은 안계시오.
사내2=그랬던가. 그럼 따님께서는 물론 안녕하실테지.
사내1=물론. 따님이 아니라 따님들이지만.
사내2=그랬군 역시 그랬어. 따님들이 안녕하신 덕분에 형씨가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거야. 그렇지만 그렇지만두 말씀야. 아드님이 안계신다는건 좀 섭섭한데. 형씨의 약점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섭섭한 일이야… 그건 그렇고, 당신이 기르고 있는 개님은 포인터든가, 아님 도사견 세파트 클리, 진돗개, 그레이하운드? 그래 당신의 개님은 치와와나 스피츠 또는 코커스바니엘 그런 따위는 아니겠지. 아니어야하고. 아닐꺼야.
사내1=죄송스럽게도 내가 기르는 것은 고양이요.
사내2=그래요…당신이 고양이를 기른다구, 웃기는군 웃기면서 놀래주는군. 놀래주면서 웃겨.
사내1=실망을 시켜드려 죄송하오.
사내2=실망이라기보다는 뭔가 좀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고양이를 기른다. 아들이 없다. 역시 시시한 일이야.
사내1=그러나 나는 내 아내와 내 딸들과 고양이로 만족이요. 만족한다구.
사내2=왜?
사내1=사랑하니까.
사내2=사랑!
사내1=그럼 사랑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이지.
사내2=(갑자기 노하여) 야! 약 올리지마.
사내1=뭐요?
사내2=약 올리지 말라구.
사내1=뭐라고 하는 소리지.
사내2=임마, 약 올리지 말라고 했어.
사내1=왜 이러는거야.
사내2=재지말라 이 말씀야.
사내1=재다니 뭘
사내2=까불지 말아
사내1=나 원…
사내2=어깨에 힘 빼지 못해.
사내1=(격해서) 야!
사내2=(맞받아) 야!
  서로 노려보며 침묵, 긴 사이, 두 사람 모두 굳어있다. 그러다가 사내1, 알았다는 듯이, 상황을 이해하겠다는 듯이 몸을 푼다.
사내1=(매우 단호하게)경고하겠어 잘 들어둬. 귀 후비고 잘 들어두라고. 당신 함부로 약 올려서는 안돼. 재지말아, 까불지마, 어깨에 힘도 넣지 말라구, 섣불리 춤추다가는 큰코 다칠거야.
사내2=역시 멋진 양반이셔, 나 형씨를 위해 건배해야겠어, 자아 건배, 멋진 양반을 위해서.
사내1=화해하자는 건가.
사내2=정말 똑똑하신 양반이야, 하긴 항상 안녕하신 사모님과 항상 안녕하신 따님들과 항상 안녕하신 고양이를 거느리신 양반이니 똑똑할 수밖에. (일어나 진열장에 가서 소주병을 꺼내고, 마개를 이빨로 딴다. 한 모금 따라버리고 한 모금 마신다. 사내1의 옆에 엉거주춤 선다) 이것 봐 노형, 울어본 일 있어?
사내1=있지.
사내2=정말이야?
사내1=정말이야. 나도 울어봤어.
사내2=(정색을 하며) 정말?
사내1=그래
사내2=아하 맙소사, 이 양반한테도 울음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군. 그래 몇 번 울어봤어,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울었던거지, 그걸 얘기해봐.
사내1=별로 생각이 안나는데…
사내2=생각이 안난다구 나한테 사기칠 속셈은 아니겠지, 나를 노엽게 하지 마. 당신이 소주로 머리를 감는 일이 생길지도 모를테니까 아니면 머리통에 붕대 감아야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사내1=세상에 안 울어본 사람도 있을까.
사내2=그걸 말씀이라구 천치같은 소리 하는군. 울음이 뭔지 모르는 치들이 세상엔 수두룩 수두룩이지. 이 사실은 적어도 내 이 불타는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지. 그래 노형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울었었지 그걸 말해봐 나는 정말 궁금해 죽겠는 걸.
사내1=이태전 가을이었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급성 뇌일혈로 그때 참 세상이 깜깜해지도록 울었었네…
사내2=(실망하여)시시한 자식, 사람 죽어서 운 얘기는 천지사방에 모래알처럼 깔려있는 얘기야. 내가 듣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냐.
사내1=시시한 자식, 그건 천지사방에 모래알처럼 흔한 얘기일지라도 항상 새롭고 또 새로운 얘기라는 것도 알아둬.
사내2=그래 형씨 소원대로 내가 알아두지, 그런데 그 밖에 또 울었던 사건은 없을까, 진짜 신나게 울어봤던 얘기 말씀야.
사내1=또 하나 있군, 어느 놈인가 2년 동안 방방곡곡 헤매다가 기어코 찾아냈을 때, 그때도 울었었지, 그 녀석을 끌어안고 울었었어.
사내2=이건 흥미있는 얘긴데, 어느 놈을 2년만에 찾아내고 울었다. 이를테면 기뻐서… 그런건가 어느 놈이야. 그걸 밝혀.
사내1=그냥 어느 놈이야, 별것도 아닌 그냥 형편없는.
사내2=말해 어느 놈이야?
사내1=당신은 사람 죽여 봤어?
사내2=(사이)죽여 봤어.
사내1=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사내2=형씨, 아직 울음얘기가 다 끝난게 아니잖아. 어떻든 울음얘기를 끝내야 할거야.
사내1=왜 죽였니?
사내2=그래 노형은 진짜 시시한 울음얘기밖엔 없단 말인가.
사내1=언제였지?
사내2=진짜 울음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단 말이야.
사내1=어떻게 죽였지?
사내2=할 수 없군, 내 울음얘기를 들려주는 수밖에는,
사내1=어디서였어.
사내2=그래 다 털어놓겠어.
사내1=좋아 진작 그러실 일이지.
사내2=멀지도 않은 작년 여름일이야. 한낮의 더위는 사람을 푹푹 삶아대고 있었어. 나는 역전 근처의 철길을 걷고 있었지. 철길 좌우편에 다닥다닥 판자집들이 계집들의 빤즈며 속옷이며 브래지어들을 빨래줄에 대룽대룽 매달아 놓고 죽 늘어서 있었어. 정말 멋진 동네였다니까. 그런데 그 가운데서 갑자기 그년이 뛰쳐 나왔던거야. 그래서는 지 치마를 까뒤집어 보이면서 눈을 찡긋…나는 순식간에 불에 달군 쇠덩이가 되어서는 쳐들어갔어. 단숨에 그년을 해치워버리고 말았지. 들어보라구 첫 인사로 한탕 펄펄 끓는 것으로 대접했고, 점심식사 삼아서 제법 뜨끈뜨끈한 걸루 다시 한탕.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새참으로 한탕. 그랬더니 그제서야 이 몸은 정신을 좀 차리겠더군.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해장술 삼아 네년 좀 마시자 꿀꺽. 그리고 떠나오면서 이별주로 눅진눅진하게 한탕, 차려드렸지…그랬더니 떠나올제 아이년 거동 좀 보소. 내 바지가랭이를 붙들고 늘어져 한다는 하소연. 가지마소 가지마소, 정주고 가지마소. 그래도 가시려거든 이별의 정표나 받아가시오. 얼씨구! 그러더니 다짜고짜 내 바지를 훌렁 벗겨 버리고 내 빤즈도 훌랑 벗겨 내리고… 내 엉덩이 양쪽에 진짜 이빨자죽을 날 죽여라하고 내놓더란 말씀야…그때 나는 울기 시작했어. 꺼이꺼이, 엉엉 목 놓아 울기 시작했었다구. 그년도 내가슴을 쥐어뜯으며 아이갸 아이갸 대성통곡 했고, 아참 멋진 울음이었지. 진짜 최고로 멋진 울음이었다구.
사내1=쎄긴 쎄구만 과연 쎈데.
사내2=허튼 소리 하지 마. 내 울음을 이해 못한다면 그 돌대가리를 까부수어 놀테야.
사내1=할 수 있다면…. 그래 몇 명이나 죽였어. 이제 울음얘기는 끝난거야. 이리와 앉아. 그리고 얘기해 봐. 몇 명이나 죽였지. 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아니 순서야 어떻든 좋아, 이리 와서 앉으라니깐 쎈 양반.
사내2=(사내1의 앞자리에 앉는다. 술병을 탁자에 놓는다.) 형씨는 사람을 죽여본 일이 없소?
사내1=없어.
사내2=정말?
사내1=물론.
사내2=진짜 사람을 죽인 건 내가 아니고 형씨일수도 있을텐데.
사내1=도망치지마. 도망쳐봐야 그물안이야. 어서 말하라구. 언제였지? 언제였느냐구 묻지 않아.
사내2=(사이) 그건 어느 해 어느 날이 아니야. 그러니까 언제나였지.
사내1=어디서?
사내2=어디 특정한 곳이 아니었어. 어디서고였어. 발이 머무는 곳, 손이 머무는 곳, 눈이 머무는 곳이면 어디서나였어.
사내1=누구를?
사내2=그분을, 그놈을, 그녀를, 그녀를, 그리고 당신. 바로 너를
사내1=왜?
사내2=내 얘기를 들어줄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내1=무슨 얘기고, 무슨 부탁이지.
사내2=길고 긴 얘기…
사내1=부탁은
사내2=내 목을 좀 졸라달라는 거였어 이렇게 이렇게 (자기 목을 두 손으로 조른다)
사내1=(갑자기 탁자를 치며) 연극하라는게 아니야, 그래 말해, 어떻게 죽였는지를 말해.
사내2=이렇게 이렇게… (계속 자기의 목을 조른다)
사내1=(맥이 풀리며, 자기 목을 만진다) 내 목은 여기 있군.
  비바람 소리, 조명 약해지면 쓰러질 듯 휘어졌든 사내2 제자리로 돌아온다. 조명 서서히 그림자같은 두 사람을 빛 속에 드러낸다.
사내2=형씨는 누구야?
사내1=누굴까.
사내2=누구지.
사내1=누구지 당신은.
사내2=누굴까.
사내1=나는 낚시꾼.
사내2=나는 술꾼.
사내1=나는 밤차로 떠날 사람.
사내2=나는 밤차로 떠나지 않을 사람.
사내1=그 뿐일까.
사내2=아니지.
사내1=그 이상의 그 무엇…(조명 완전히 밝아지고. 사이)
사내2=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
사내1=한곡 하시지 그래.
사내2=형씨 때문이야. 참 오랜만에 노형을 만났군. 이렇게 제대로 임자 만나지기가 쉽진 않거든. 많이 돌아다녔고 많이 만나보았지. 그런데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게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오늘은 재수 오지게 터진 날인 셈이지. 첫눈에 나는 형씨를 알아보았어. 형씨야말로 내 맞수가 되어줄 사람이라는 것을 형씨가 이 술잔에 들어설 때 나는 보았지 형씨의 그림자를…형씨는 이미 나에게 형씨의 그림자를 들킨거라구. 아 어쨌든 오늘은 째지게 복튼 날임에 틀림없어. 그러니 이 밤을 헛되이 써버릴 수는 없지. 그런 낭비할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는 거야.
사내1=이 낚시도구들을 산 것은 벌써 7년전 일이야. 그리고 어젯밤 밤낚시는 만 5년만의 일이었고, 그건 거의 딸들같은 결단이었어. 혼자서 오직 혼자서 낚시터를 찾는다는 일은…5년 5년이라는 세월의 크기를 이해하겠어 그 부피를 그 내용들을 짐작하겠느냐구, 그래 형씨 나는 돌아갈 수 있을까?
사내2=돌아갈 수는 없을거야
사내1=돌아가야해.
사내2=그러나 오늘밤은 돌아갈 수 없을거야.
사내1=돌아가야해.
사내2=돌아가지 못하게 하겠어.
사내1=밤새 나는 별을 헤아렸지. 별 하나에 내 나이를, 별들에 내 직업을, 별 셋에 내 아내를, 별 넷에 내 딸들을, 별 다섯에 내 고양이와 별 여섯에 내 월급과 별 일곱에 내 진급과 별 여덟에 내 죽으신 어머니를 그리고 별 아홉에, 별 아홉에 내 목숨을…
사내2=별 열에 그리고 별 열에…
사내1=나는 한 마리의 붕어도 낚아 올리질 못했지. 단 한 마리도 그래서 나는 결심했어. 빈털터리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무언가 큰 것, 아주 좋은 것, 아주 멋진 것을 채워가야 한다고.
사내2=형씨 그럴듯해. 제대로 만나진 것 같아. 어허 참 반가우이.
사내1=그래 나한테 무엇을 원하지?
사내2=딱 한 가지.
사내1=무어야.
사내2=노형, 나한테 얻어터지고 싶지 않아. 나는 노형을 때려주고 싶어. 그게 내 소원이야. 이제 모든 것이 밝혀진 셈이군. 나는 노형을 때릴 것이고 형씨는 오늘밤 나한테 얻어 터질거야. 살살 만져줄게 그냥 손좀 봐주겠다구. 다섯탕정도 죽여주면 아주 골로 갈테니까 그냥 한두탕만….
사내1=때려본지 오래됐나?
사내2=오래됐지. 너무 오래됐어. 임자를 못 만났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오늘이 횡재한 날을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거야. (일어난다)
사내1=그래 맞아주지, 맞아주겠어. 그러나 당신을 먼저 고기바구니에 포획한 다음에 맞아주겠어. 생각해봐. 빈 바구니를 들고 마누라한테 돌아갈 수는 없잖아. 두 딸년들 그리고 고양이는 얼마나 실망할 것인지 생각해 봐.
사내2=후후후, 나를 잡아다가 한상 뻑쩍지근하게 차리겠다는건가. 오늘 밤 형씨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내가 몇 차례고 가르쳐줬는데.
사내1=나는 돌아갈꺼야. 분명코 나는 오늘밤 돌아갈꺼야.
사내2=좋으실 대로 하라구. 그러나 이미 칼은 뽑혔어.
사내1=화살은 벌써 활시위를 떠났고.
사내2=이젠 끝장을 내는 수밖엔 없지.
사내1=자기 능력만큼 자기의 몫을 가져가는 수 밖엔 없어.
사내2=한바탕 웃어보지 그래. 그리고 시작하자구. 자아 어서 패를 내놓아보시지. 마지막 카드를 좀 보여달라구.
  두 사람 노려보면서 대치한다. 비바람소리 거세다. 번개도 지나간다.
사내1=선수를 너에게 양보하겠어.
사내2=도리어 내가 양보하지. 나는 너무 오랫동안 흑만 쥐어왔거든. 오늘은 내가 백을 쥐어봐야겠어. 나도 나에게 백을 쥘 수 있는 놈이라는 사실을 보여줘야 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시작해 어서 나를 낚아봐. 포획해 봐.
사내1=잊어버렸나. 나는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이지 수수께끼를 던지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 던져 너의 수수께끼, 나의 올가미를 던지라구. 너의 비밀, 너의 정체를 던지란말야. 나는 기어코 너를 가두고 너를 벗겨버리고야 말꺼야. 자 어서 던지라니까.
사내2=너는 역시 악착같은 놈이야. 기어코 날더러 흑을 쥐란 말인가.
사내1=그건 오늘밤 우리들의 내기의 법칙이야.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을 뿐이야.
사내2=너는 참 악착같은 놈이야. 철거머리같은 놈.
사내1=시간이 없어. 나는 돌아갸야 해.
사내2=그래 끝장을 내주지. 그래서 네가 돌아가야 할 곳이 진짜 어딘지 가르쳐주겠어.
사내1=서둘러 빨리!
사내2=(탁자 위의 술병을 친다. 떨어져 깨진다. 순간 빼어드는 잭크나이프 날을 세운다. 겨눈다.) 지금은 네가 이겼어, 결국 나로 하여금 또다시 흑을 쥐게 만들고야 말았어. 그게 너의 능력이야. 그러나 그러나, 이제 너는 나의 패를 보았지. 자 보라구. 나는 너를 때리지는 않을걸. 그래서 너는 나에게 얻어터지지도 않을테고, 그 대신 나는 쑤실꺼야. 자아 어서 고기바구니를 열어. 그리고 나를 담아보시지. 어서! 기차는 잠시후에 들이닥칠거라구. 어서!
사내1=(한발 물러섰다가 희게 발광하는 수갑이다. 수갑을 치켜들며) 봐라, 이게 나의 정체다. 이게 내 카드다. 이 패는 먼저 내놓을 수는 없는 운명을 가졌지. 이건 수수께끼를 푸는 카드지 수수께끼를 던지는 카드가 아니거든.
사내2=역시 그랬군.
  두 사람 원을 그리며 오랜 대치. 서로 몇 차례 칼과 수갑을 허공에 번득인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들의 행위 멈춰지면.
사내1=(수갑을 탁자 위에 던지며) 보시오. 이것이 당신께 드리는 나의 선물이요. 받으시오.
사내2=(수갑과 사내1을 번갈아 보다가 탁자위에 칼을 꽂는다. 손잡이가 잠시 떨리다가 멎을 때까지 바라본다.) 잘된 셈이야. 제대로 끝장이 난 셈이지….
  사내2 수갑을 집는다. 천천히 사내1에게 걸어온다. 사내1은 사내2를 향하여 손을 내민다. 사내2, 사내1의 손목에 수갑 한쪽을 채운다. 사내1은 나머지 수갑한쪽을 사내2의 손목에 건다. 기적소리 멀리로…
사내2=지금 떠나시려오.
사내1=아니, 오늘밤은 아니야.
사내2=그럼 내일?
사내1=아니면 며칠 후.
사내2=오늘밤은 내 얘기를 들어주시겠오. 그리고 내가 우는 모습을 좀 보아주시오. 그리고… 그리고 내 목, 내 목을… (幕(막))


[受賞所感(수상소감)]
‘勝負(승부)’는 열린 세계에 대한 소망의 暗示(암시)

金時岸(김시안) (佛敎大(불교대)·印哲科(인철과))

  따리에게.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나가고 싶었다. 이 ‘勝負(승부)’는 그 소망의 어떤 暗示(암시)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살면서, 이 세계, 이 나라, 이 도시에서 살면서 배운 것은 ‘감추는 法(법)’이었다. 내가 가진 匕首(비수)를 은밀히 숨겨야 했다. 내가 가신 牛匣(우갑)까지도 뒷전에 감춰야했다. 이것은 生存(생존)의 兩面性(양면성)이었지만 언제나 극복의 과제였다.
  ‘慘酷(참혹)한 세계여, 和解(화해)하지 않으면 滅亡(멸망)하리라.’
  이것이 나의 世界認識(세계인식)이었다. (이건 너무 상투적이고 좀 웃기는 얘기는 안됐는지 몰라?) 그러니까 숨기며 사는 긴장으로부터 다 드러내고 사는 明朗(명랑)으로 가기 위해서 싸워야 했다고나 할까.
  겨울에 바다쯤에 다녀와야지. 가서 내 19살의 家出(가출)이 무엇이 되어 살아있는지를 탐사해봐야겠어. 그리고 몇몇은 소중히 채집하여 돌아오면서…
  그래도 이 세상은 살만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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