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목 잘린 해바라기는 되지 않겠습니다”

검은 오열이 터져
오열로 쏟아져 내린다.
빗속에 어우러져 새겨지는
창가의 향연은 막잔을 기울던
얼굴들을 되토한다.

門(문)을 뒤돌아
꼬옥 잠가버린채
열쇠 잃은 자물쇠이고 싶다.
실없는 무리속에
가벼운 저항마저 스러지는 몸을
흐스러지는 빗물에 씻긴다.

무엇이 그리 그리워
그 무엇이 보고파
눈물로 와서는
발밑에 또각이는 恨(한)으로 쌓이고
온몸을 짙지게도 때려보지만
간지러움, 그 애무만이 허용될뿐.
통곡소리, 통곡소리
여기저기 떼과부들 세상살이 서러워
울음바다 이룬다
내리는 비
내 마음 같으리
애절한 나의 마음 비 되어
그대 입술을 타고
가슴에 앉으려 한다.

  J.  듣고 계십니까?
  거리를 둘 줄 모르는 사람은 가까움의 가치를 알지 못하며 가까이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혼자가 된 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거리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나의 옛 얘기를 기억하시는지요.
  지난 24일에는 온종일 비가 왔습니다. 그게 모두 하얀 눈으로 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가식의 제 더러운 껍질을 씻어내기에는 족한 자연세례였습니다.
  지나간 두 달간의 시간시간은 최소한 나 자신에게는 더 없이 행복했던 나날이었습니다. 이 점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을 건네고 싶군요.
  학교를 오던 길에 옥수수수염처럼 파르르 떠는 입술로 ‘우산 사려!’를 외치는 꼬맹이 우산장수의 안쓰러운 모습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소년의 딱한 표정을 보지 않으려는 편리한 도구로 우산을 이용하는 인간들의 정내미가 색색이 낡아빠진 헝겊조각이 되어 도로변 하수구물에 나뒹굴어 범벅이 되어버리더군요.
  정말 이 세상은 더럽습니다.
  J. 들어보세요.
  당신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계속 엄습해오는 허무와 싸워야만 했습니다. 무의미로 그쳐서는 안되는 만남의 당위성 앞에 저는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리는 썩은 고목덩이였습니다. 저의 어두운 가슴속으로 빛으로 다가오는 당신 영상은 만남의 책임이라는 무거운 추궁으로 제 모습을 여위게 하였습니다.
  인간굴레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것만이 이 못난 세상에서 가장 잘나게 사는 법이니까요. 전 당신의 求愛(구애)의 대상으로서 진실을 상실한 항로이탈의 조타질을 이미 첫 만남에서부터 하고 있었나 봅니다. 정말, 서로의 아픔만을 가만가만 상대방 가슴에 심었던 인연 닿지 않는 억지관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에 의해 설정한 선상위의 행동과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전 저의 모든 행위를 나와는 상관없는 판단과 결론에 의해 이끌려가는 그리고 멍하니 구경만 해야 하는 나약한 족속 중에 하나로 전락해가고 있었습니다.
  최소한 목 잘린 해바라기는 되지 않겠습니다.
  神(신)에 의해 매겨진 내 몫의 문제를 어차피 풀지 못하고 죽는다면 아름다운 유혹에 불구하고 모든 고통의 장애들을 과감히 받아들이겠습니다.
  J. 나의 아명을 빌려 쓰는 이 글도 지면이 벌써 펜 놓기를 강요하는군요.
  그럼 건강해야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바보로 남을 수 있음을 명심하시길 빌며 끝으로 당신을 위해 비워두었고, 당신으로 하여금 채우고 싶었던 단어는 ‘사랑’이었음을 낯 붉게도 밝힙니다.
  세상을 밝게 보려는 사람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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