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통한 풍부한 논의로 사회적 인재 배출

미국 대선 직후, 국내 언론사 한 군데에서 컬럼비아대학의 토론문화를 취재하러 와 학생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오바마의 달변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 학부시절 익힌 토론문화라고 본 것입니다.

컬럼비아대에는 강의식 수업과 토론(討論)식 수업이 공존합니다. 토론식 수업의 경우, 수업 내용을 미리 수업 홈페이지에 올라온 논문, 자료 등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소화시킨 후, 수업 시간에는 이 내용을 각자의 입장에서 이해했다는 전제 하에서 토론이 이루어집니다. 강의식 수업의 경우에도, 학생들이 수업관련 논문을 2~5편 읽고 이해했다는 전제하에서 교수님의 강의가 이루어집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다가 궁금했던 내용을 수업 내내 질문하여 어떤 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이 끊이지 않기도 하고, 토론식 수업과 마찬가지로 긴 토론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한 학기를 마칠 때쯤 보니, 저에게 충격을 준 질문을 했던 그 학생은, 본인의 전공도 아닌 인도불교미술사에 대해 교수님 앞에서 자신의 관점을 논리적으로 피력(披瀝)할 정도로 지적으로 훌쩍 성장했습니다. ‘이상한’ 질문으로 수업의 흐름을 방해한다거나, 남들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것을 꺼렸던 저는, ‘애초에 이상한 질문이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과 토론수업을 하면서 질문과 토론수업을 더 이상 부담이 아닌 생활의 일부로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수업 방식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정해진 수업 시간 내에 많은 양의 지식을 습득(習得)하기는 어렵습니다. 질문의 핵심은 어디에도 없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강의처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질문하는 사람의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 뭔가 궁금한 것이 있으나 질문자 자신이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틀린 질문은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함께 질문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굳이 ‘학제간연구’, ‘통섭’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의 예를 적용하며 풍부한 논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의 수업을 되돌아보면, 선생님께서 자유스럽게 토론을 해보자고 하시면 교실에 적막(寂寞)이 흘렀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잠깐 동안 토론이 진행된 적이 있어도, 말을 잘하고 아는 것이 많은 학생 위주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골고루 의견을 주고받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 몇몇 학생들은 저처럼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고, ‘질문해도 되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두려워하면 갇혀 버린다는 어느 선생님의 글귀처럼 말이지요. 앞으로의 여러분의 강의에서, 나아가 모든 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소통할 수 있는 나날들을 보내보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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