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세계의 명문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7> 중국 - 베이징대학교

△  9백만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한 베이징대 중앙도서관. 이곳에는 최신 서적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고서가 소장돼 있어 동양학을 연구하는 외국학자들로 늘 붐빈다.
드넓은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청(淸). 청나라 시대 황궁 정원 원명원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곳. 베이징대학에 발을 들이면 진나라 시대의 건축물들이 시야 한 가득 들어온다. 그 중 하나인 원명원은 1709년 강희제(康熙帝)가 네 번째 아들 윤진에게 하사한 별장이었다. 하지만 윤진이 옹정제(雍正帝)로 즉위하자 1725년 황궁의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원명원뿐만 아닌 다른 건축물 역시 베이징대학, 중국의 길고 찬란했던 역사를 증명하는 듯하다.

이런 베이징대학의 오랜 역사와 전통은 중국 어느 대학도 넘볼 수 없는 베이징대만의 강점이다. 중국은 약 5000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를 지닌 아시아 최대의 대국이다. 5000년이란 긴 세월은 중국의 역사와 문학, 문화, 예술을 세계 최고 경지에 올려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자와 맹자, 노자 등의 수 많은 중국의 철학자들과 문인과 예술인들이 중국의 학문을 더욱 풍부하게 했으며 그것이 현대사회에도 그대로 이어져 중국의 문화는 말 그대로 거대한 장강대하(長江大河)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베이징대는 이러한 중국문화의 거대한 흐름의 적자(嫡子)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자양분으로 삼아 아시아의 맹주로 거듭나려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1898년 설립된 베이징대는 지난해 개교 110주년을 맞았다.

 

‘다칭제국’, ‘베이다 황’이란 말


중국에는 ‘다칭(大淸)제국, 베이다황(北大荒)’이란 말이 있다. 칭화대는 국가 지도자급 인사를 많이 배출했지만, 베이징대는 그렇지 못해 ‘황량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이공계 전공의 칭화(淸華)대 출신 인맥이 중국 정부의 4세대를 이끌고 있다면, 5세대 미래 지도자군에는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한 베이징대학 졸업생들이 약진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차세대 주자의 상당수가 베이징대 출신이며 실무급 간부진도 베이징대 졸업생 비율이 높아져가는 상황이다. 우선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베이징대학 일본어과를 나왔다.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 쉬관화(徐冠華) 과학부장도 베이징대 졸업생이다. 차세대 지도자들의 선두주자인 리커창(李克强) 랴오닝(遼寧)성 서기는 베이징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상무부장 보시라이(薄熙來)도 베이징대 역사학과 출신이다. 리위얜차오(李源朝) 장쑤(江蘇)성 서기 등도 베이징대 동문이다.

△베이징대 100주년 기념 상징물 사자상

이처럼 베이징대 출신들의 약진의 배경에 는 바로 5천년이 넘는 장구한 배경을 바탕으로 세계의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베이징대 인문학이 있다. 사실 베이징대의 인문학은 승승장구하듯 평탄한 길을 걷진 못했다. 중국이 국가 발전을 위해 중공업 정책을 펼치면서 중국 정부의 핵심은 이공계를 전공한 칭화대 출신들이 대부분을 장악했다. 그리고 그들이 추진한 대대적인 산업개발과 자본주의화 정책은 중국을 일약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며 약진을 거듭했다. 그러나 눈부신 경제성장속에 중국은 안으로는 온갖 부정부패와 범죄, 사회문제로 속병을 앓게 됐다. 베이징대학 역시 자본주의 이념에 의해 인문학부가 위기를 겪었다.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처럼 여겨졌던 인문학은 그 입지를 점차 잃어가게 된다. 자본주의 정책 수립 이후, 중국은 ‘교육 및 과학기술’을 모토로 내세우며 실용위주 학문의 육성에 주력했고 당연히 반대되는 인문학 분야의 지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줄어 인문학은 2중의 어려움을 겪게 됐다.

베이징대학에서도 실용학문의 육성을 위해 인문학부에 대한 지원을 줄였고 교수 임용 또한 뒷 순위로 밀리며 인문학부는 비인기학에 이어 재정적 문제에까지 직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인문학을 연구했던 베이징대학의 인문학부 교수들은 재정문제 및 사회 정책적 문제로 인해 인문학부가 없어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궁핍하되 자신들의 것을 공고히 지켜내기로 마음먹고 어려운 시절을 꿋꿋이 견뎌냈다. 베이징대학 인문학 교수들은 재정문제 및 학생유치 등의 문제에 대해 학과 차원의 자구책을 사용해 인문학부의 생존을 고수했다. 그 일환으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행정적으로 기업과의 연계 및 국내ㆍ외 인문학 연구 프로젝트의 수주 등을 위해 노력 했다. 그 결과 베이징대학은 재정적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세계 석학들과의 연구 연계를 통해 인문학 분야의 큰 성과를 얻었다.

베이징대학 인문학부의 또 다른 문제였던 학생들의 유치를 위해 교수들은 정계, 재계의 동인들의 실적 및 베이징대학 인문학부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용하였고 베이징대학의 찾는 학생들의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인문학부에 외국학생 유치해 성공

 

이러한 자구책을 통해 베이징대학 인문학부가 위태롭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때, 중국에서는 또 한 번의 개혁 정책이 시행된다. 중국이 개방정책을 본격화한 것이다. 이 개혁과 동시에 외국학생들의 유입을 허용한 중국은 세계 각지의 엘리트 학생들을 중국 내부로 불러들인다. 그 결과 중국의 오랜 역사, 그 역사 속에서 꽃피운 철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세계의 엘리트들은 100여년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많은 인문학 연구 자료, 우수한 교수진을 보유한 베이징대학에 몰리게 됐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낸 베이징대학 인문학부는 현재 중국 내 최고 인문학부로 성장하게 됐고, 매년 세계 각지의 많은 엘리트 학생들이 베이징대학의 인문학을 배우고자 베이징대학을 찾고 있다. 또한 베이징대학은 현재 ‘중국 내 오랜 역사 및 권위를 가진 인문학부’로 선정되어 중국문학 및 철학의 우수성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베이징대학이 최고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베이징대학의 명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고란 명성 아래 꾸준한 노력, 엄격한 자기 관리와 자기혁신이야 말로 지금의 베이징대학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베이징대학은 베이징대학 박사과정을 졸업한 후 5년이 지날 때 까지 졸업생들을 교수로 임용하지 않는다. 이는 베이징대학만의 특수한 전통으로 베이징대학에서 학업을 이수한 학생은 베이징대학의 학풍에만 길들여져 있어 그를 다시 임용할 경우 베이징대학의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베이징대학에선 ‘학문의 동종교배 방지 정책’이라고 부른다.

 

엄격한 교수 임용 및 교수평가

베이징대학 박사과정 졸업 후 5년이 지나야만 졸업생들은 베이징대학 교수임용 지원 자격이 생긴다. 하지만 베이징대학의 정식 교수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욱 힘들다. 모두 2단계로 나누어진 교수임용은 엄격한 서류전형의 1단계를 통과한 지원자에게 학부별로 다시 평가를 받게 된다. 역사학과의 경우 베이징대학에서 인정한 역사학 분야 권위자 12명으로 구성된 학술위원회 위원들 앞에서 30분정도 강의를 진행하고 12명의 권위자는 지원자의 강의를 듣고 지원자를 비밀투표를 통해 선발한다.
투표결과 학술위원의 3분의 2 이상에게 찬성표를 받지 못하면 2단계에서 탈락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마지막 3단계는 학교전체위원회(각 학부별, 행정실장, 총장 등이 참여)의 평가를 다시 한 번 받아야 한다. 3단계에서는 강의를 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2단계까지의 채점표 및 그 지원자의 사회ㆍ학술적 명성을 평가하여 투표를 하며, 3단계 역시 3분의 2이상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베이징대학의 교수임용제도는 분야별로 어느 정도의 학술적 명성이 있는 자를 지원자로 한정함으로 실력 있는 교수를 선발 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세계 석학들의 열띤 경쟁

하지만 교수가 됐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게하지 않는다. 베이징대학의 교수평가는 매학기 진행된다. 교수평가는 크게 학생들이 시행하는 강의평가와 학교에서 시행하는 교수평가로 나뉜다. 강의평가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여 교수를 채점하며, 강의평가에 불참한 학생은 불이익을 받는다. 학생들이 시행하는 강의평가는 크게 3가지 항목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로 교수의 학습 준비태도를 평가한다. 이어 교수들이 진행하는 강의에 대하여 자신의 학문적 발전에 도움이 되었는가의 여부를 평가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강의의 존속여부를 평가하는데 이는 그 강의가 어떠한 점에서 존속돼야 하는지 까지 평가해야 한다.

△ 지난 8월 방학과 휴일이 겹쳐있던 공휴일임에도 강의실과 도서관은 공부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한편, 교수들은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제외하고도 학교 측에서 시행하는 교수평가를 받게 된다. 이는 교수의 연구실적, 배정학생들의 진로, 교수의 논문을 기준으로 평가를 받게 되며 강의평가 및 학교의 평가를 통해 매년 학과 당 부교수 중 1명을 정교수로 승진시키는 자료로 쓰이며 승진 대상에서 제외된 부교수들의 경우 재계약 때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인구 100만명당 1명꼴’로 입학하는 베이징대학에 대해 중국에선 베이징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선택받은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베이징대학에 입학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중국의 각 성에서 1, 2등, 즉 성에서 수석, 차석을 한 학생들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베이징대학 학생증을 거머쥘 수 있다. 또한 베이징대학에 입학하는 많은 외국 학생들 역시 국가에서 내놓으라 하는 엘리트들뿐이다.

베이징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학생들 간의 경쟁이 끊이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기 발전을 이루고, 이전에 발표된 연구보다 더욱 심화된 연구를 진행하여 학교의 명성을 높이는데 이바지 하는 학생들의 노력이야 말로 베이징대학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기자가 찾은 8월 베이징대의 교정은 방학중임에도 계절학기 과목을 이수하기 위해 캠퍼스를 누비는 학생들과 학기 중 밀렸던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학생들, 베이징대학에서 열리는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세미나 장소로 달려가는 학생들로 소란스러웠다. 베이징대학의 경우 취재 당일만 해도 2개의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됐고, 많은 학생들이 심포지엄에 참석하여 국제 석학들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방학, 휴일가리지 않고 공부에 공부

 

심포지엄이 이뤄지고 있는 강의실에서 만난 루소소(자율전공 1)학생은 “베이징대학에서는 해외 유명 석학을 만날 기회가 많다”며 “많은 석학을 만남으로 자신을 더 진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어 “베이징대학의 장점은 여러 해외 석학을 만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포지엄이 이뤄지는 강의실을 둘러본 뒤 찾아간 도서관은 학구열에 사로잡힌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방학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은 피곤하거나 지친 기색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하루의 공부량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공부에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베이징대학의 학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공부에만 전념하는 공부벌레들은 아니었다. 우리대학에서 베이징대학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손정은(중문 3)학생은 “베이징대학의 학생들은 공부를 제외하고도 많은 활동을 한다”며 “운동을 하거나 동아리에 가입하여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한다. 이어 그녀는 “이처럼 시간을 배분할 수 있는 이유는 중국엔 한국과 달리 음주 문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대학의 학사 관리는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베이징대학 학생들은 시험중 커닝은 꿈도 꾸지 못한다. 만약 학생들이 커닝을 하다 적발될 시 학교는 적발된 학생에게 졸업할 때 학위를 수여하지 않는다. 졸업장보다 학위를 중시하는 중국 사회에서는 치명적인 벌칙이라 할 수 있다.

학위증 발급을 받지 못하게 된 학생들은 베이징대학에 재입학하여 처음부터 학위를 이수해야 한다. 엄격한 학사관리만큼이나 이들의 문화도 독특하다. 한 유학생은 “베이징대는 남학생들이나 여학생들이나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캠퍼스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다. 늘 책을 끼고 다니면서 이곳저곳에서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또한 , 학생들의 경쟁 의식과 학습열의가 대단하기 때문에 복수 전공을 택한 학생들은 일요일에도 이뤄지는 강의를 듣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베이징대는 중국을 상징하는 대학이다. 잠에서 깨어난 중국이 세계를 호령하듯 베이징대도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그들만의 몸짓을 펼치고 있다. 그 안에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되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하려는 베이징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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