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台思想(천태사상)은 적극적인 實相論(실상론)을 세워 諸法(제법)이 곧 實相(실상)이고 現象(현상)이 곧 實在(실재)라는 깊은 理論(이론)과 實踐法(실천법)을 보여준다. 대각국사 의천은 법화경의 “會三歸一(회삼귀일)” 사상을 국가 이념으로 삼기도 하여 한 때 크게 떨치기도 하였다. (이 논문은 李永子(이영자)교수의 日本(일본) 大正大學(대정대학) 박사학위취득 논문임을 밝히는 바이다)
<편집자 註(주)>


  天台思想(천태사상)은 중국의 天台智顗(천태지의) (538~597)에 의해 조직된 哲學思想體系(철학사상체계)이다. 智顗(지의) 이후에도 계속 발전하여 隋(수)·宋(송)·元代(원대)까지 중국불교를 대표한 사상의 하나이다.
  天台敎學體系(천태교학체계)는 法華經(법화경)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법화경을 이론적으로 전개한 哲學體系(철학체계)인 敎相門(교상문)과 이 經(경)의 실천방법을 제시하는 觀心門(관심문)의 二門(이문)으로 분류된다. 이 二門(이문)의 철학적 근거로서는 敎相門(교상문)은 法華經(법화경)의 解釋書(해석서)인 “法華玄義(법화현의)”와 “法華文句(법화문구)”이고 觀心門(관심문)은 “摩詞止觀(마사지관)”이다. 敎相門敎學體系(교상문교학체계)는 五時(오시)·八敎(팔교)라고 하는 佛敎敎理(불교교리)의 理解方法(이해방법)인 敎相判釋(교상판석)에 의해 조직되어 있다. 관심문이란 禪(선)(dhyana)을 실천하는 방법으로서, 天台哲學體系(천태철학체계)의 核心(핵심)인 <一心三觀(일심삼관)>을 실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眞理(진리)를 體得(체득)하는 方法(방법)이다. 같은 禪(선)이라고 하더라도 中國(중국)의 祖師(조사)들의 禪(선)은 論理的 說明(논리적 설명)이 없는데 天台思想(천태사상)은 論理(논리)를 適用(적용)하여 實證(실증)하려는데 특징이 있다.
  즉 眞理(진리)가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觀(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는 觀點(관점)에 따라 空(공)일 수 있고 假(가)일 수 있고 中道(중도)일 수 있지만 그것을 우리 一心(일심)속에서 體得(체득)하는 灌法(관법)이므로 一心三觀(일심삼관)이라고도 하고 또 三諦圓融(삼체원융)의 진리라고도 표현 한다. 달리 표현하기를 一念(일념)으로 <三千世界(삼천세계)>를 체득한다고도 한다. 이 眞理(진리)의 실천방법은 四種三昧(사종삼매), 二十五方便(이십오방편), 十乘觀法(십승관법)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六祖諶然(육조심연)(711-782)때에 起信論(기신론)의 綠起論思想(녹기론사상)과 또 禪宗(선종)의 영향을 받아서 다른 宗派(종파)와 경쟁 속에서 宗派觀念(종파관념)이 확립된다. 원래 華嚴思想(화엄사상), 淨土思想(정토사상), 禪(선) 등을 포용하는 것이 天台思想(천태사상)인데 8C 이후에 타종파와의 알력이 격화되면서 소위<法華超八(법화초팔)>의 사상이 나타나 五時(오시)·八敎(팔교)의 敎相判釋(교상판석)이 定立(정립)된다.
  그러나 唐末(당말)의 5대의 戰亂(전란) 때문에 天台敎學(천태교학)의 연구는 쇠퇴하고, 10C경 義寂(의적)을 중심으로 高麗(고려)출신의 義通(의통), 智宗(지종), 諦觀(체관) 등에 의해 다시 부흥되었다. 11C 四明知禮(사명지례)를 중심한 학파를 정통으로 한 山家派(산가파)와 그 밖에 山外派(산외파)의 이론적 논쟁은 격렬해진다.
  전자인 산가파는 상상론, 후자는 唯心論(유심론)을 주장한다. 하나인 마음인 一心(일심)의 개념을 규정하기를 산가파는 <妄心(망심)>이라고 하고, 후자는 <眞心(진심)>이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하면 산가파는 모든 현상의 진실한 모습(諸法實相(제법실상))을 그대로 진리로 보고, 산외파는 모든 현상은 오직 마음(諸法唯心(제법유심))에서 이룩된다고 본다. 이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印度(인도) 이후의 원시·部派佛敎(부파불교)·大乘佛敎(대승불교)를 모두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歷史的(역사적)인 전개를 하고 있는 체계를 한 시대 만에 국한시킨다는 것은 韓國(한국)의 天台思想(천태사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므로, 通時代的(통시대적)으로 金石文(금석문) 및 文獻資料(문헌자료)가 남아있는 것을 三國(삼국)·新羅(신라)·高麗(고려)·朝鮮時代(조선시대)로 고찰하였다.
  韓國(한국)에서의 天台思想(천태사상)의 始源(시원)은 統一新羅(통일신라)(676-753)때까지 소급된다. 모든 佛敎思想(불교사상)을 섭렵하고 있는 元曉(원효)(617-686)의 저술에서 보여주는 思想(사상)의 결론은 法華思想(법화사상)이다. 일찍이 法華經(법화경)과 접근할 기회를 가졌던 元曉(원효)는 <法華宗要(법화종요)>라고 하는 法華經(법화경)의 要約書(요약서)를 비롯하여 法華經關係(법화경관계) 저술을 네 권이나 남긴 것은 그만한 여건이 신라에 갖춰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智顗(지의)의 天台三大部(천태삼대부)인 <法華玄義(법화현의)>를 강의한 것이 593년이고 <摩詞止觀(마사지관)>은 594년 <法華文句(법화문구)>는 587년이다. 그러나 元曉(원효)의 著述年代(저술연대)는 유감스럽게 確定(확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法華宗要(법화종요)>의 著述(저술)시기를 그가 생존한 686년까지 下限(하한)을 설정한다면, <法華玄義(법화현의)>를 지의의 제자 章安灌頂(장안관정)이 정리한 시기 (597~602)와는 80년의 간격이 있다. 元曉(원효)는 <涅槃宗要(열반종요)> 끝에 智顗(지의)의 敎判(교판)에 관해 언급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보면, 思想交流(사상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法華宗要(법화종요)>와 지의의 <법화현의>를 비교한 결과 兩書(양서)는 똑같이 羅什(나집)이 번역한 妙法蓮華經(묘법연화경)을 原書(원서)로 채택하고 있다. 解釋方法(해석방법)도 智顗(지의)가 다섯 가지 主題(주제) (五重玄義(오중현의))를 나누어 해석하고 있는 것과 같은 범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智顗(지의)의 사상은 광범하고도 번쇄한 哲學體系(철학체계)인데 元曉(원효)의 저술은 간락하고 요점을 槪論化(개론화)하고 있다.
  <法華宗要(법화종요)>의 내용을 보아도 법화경의 근본목적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즉 하나의 진실한 모습인 일승실상(一乘實相)을 밝히는 것이며 이 ‘일승실상’에는 능동적으로 깨달아 들어가는 (悟人(오인)) 根機(근기)가 있고, 수동적으로 열어 보여지는 (開示(개시) 진리가 있다고 한다. 이때 능동적인 근기를 일승의 사람(一乘人)이라고 한다. 달리 표현하여 일불승인(一佛乘人)이라고 한다. 이 말은 모든 중생이 불자이고 菩薩(보살)이고 궁극적으로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며 이것은 無性有情(무성유정) (迷惑(미혹)의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 存在(존재))까지도 成佛(성불)함을 뜻한다.
  또 열어 보여지는 진리 (所乘法(소승법))로서 一乘(일승)을 넷으로 나누는데, 이것을 智顗(지의)는 ‘四一(사일)’이라는 慣用語(관용어)를 쓰고 있다.
  첫째 一乘(일승)의 眞理(진리) ‘一乘理(일승리)’는 하나인 法(법)의 世界(세계) ‘一法界(일법계)’이고 법의 몸 ‘法身(법신)’이며 如來茂性(여래무성)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세 가지로 하는 진리 ‘三乘法(삼승법)’를 설명하는 것은 하는 種類(종류)에 差別(차별)이 있어서가 아니라 衆生(중생)을 救濟(구제)하기 위한 方便(방편)이라고 하며 如來(여래)의 性品(성품)이나 如來(여래)인 眞理(진리)의 몸 ‘如來法身(여래법신)’은 모든 衆生(중생)이 所有(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둘째는 일승의 가르침 ‘一乘敎(일승교)’인데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 남김없이 衆生(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지혜의 땅 ‘一切智顗(일체지의)’에 이르도록 하기 때문에 一乘(일승)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셋째 일승의 원인 ‘一乘因(일승인)’인데 다시 둘로 나눈다. 性因(성인)은 모든 중생이 다 가지고 있는 佛性(불성)이 그대로 三身(삼신) (法(법)·報(보)·應(응)·身(신))의 結果(결과)를 가져오는 原因(원인)이란 것이다.
  또 작용이란 凡夫(범부)와 聖人(성인) 및 불교의 진리를 닦는 사람, 혹 外道(외도)를 포괄하여 모든 착한 根機(근기)의 사람이 행하는 예배·합장·염불 등이 모두 무상의 菩提(보제)(지혜)를 성취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넷째는 여래가 진실 그대로 三界(삼계) (욕망·물질·정신의 세계)의 모습을 보고 아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하나의 진실한 모습’ (一乘(일승))을 밝히고 다음으로 그것을 ‘세 가지로 타는 진리’ (三乘法(삼승법))와 회통시키고 있다. 法華經(법화경)사상의 기본적 논리인 會三歸一(회삼귀일)인 것이다. 즉 세 가지로 타는 것 (三乘(삼승))의 방편은 하나의 타는 것 (一乘(일승))의 진실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원효사상의 핵심은 바로 여기 있으며 法華宗要(법화종요)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상이 교학적인 측면에서 본 것이고, 실천적인 측면에서 관심문을 살펴본다면 止觀(지관) (Samather Vipasyana)이 天台(천태)의 실천 방법이다.
  6C경 慧恩(혜은)의 門人(문인) 玄光(현광)이 처음 法華三昧(법화삼매)를 證得(증득)하고 귀국한 적이 있고 智顗(지의)의 門人(문인) 綠光(녹광)이 天台妙觀(천태묘관)을 修行(수행)하고 大悟(대오)한 후 新羅(신라)로 돌아와서 天台(천태)의 灌法(관법)을 弘布(홍포)하였다. 元曉(원효)의 實踐行(실천행)과 理論展開(이론전개)의 배경이 성숙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元曉(원효)의 止觀(지관)의 理論(이론)은 <無量萬經宗要(무양만경종요)>에서는 16觀(관)을 제시하고 <金剛三昧經論(금강삼매경론)>에서는 經(경)을 綜合的(종합적)으로 밝히는 要諦(요체)를 ‘一味觀行(일미관행)’으로 표현한다. <大乘起信論疎(대승기신론소)>에는 <天台小止觀(천태소지관)>의 修行方法(수행방법)인 二十五方便(이십오방편) 중에 있는 다섯 가지 因緣(인연)을 갖추는 법 (具五緣(구오연))을 충실히 해석하고 止(지)를 닦는 방법과 坐禪(좌선)하여 마음 닦는 법을 설명한다.
  <금강삼매경론>에서는 三昧(삼매)를 正思(정사)라고 하고 이를 바르게 通察(통찰)하는 것이며 또 하나의 境界(경계)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하면서 棔沈(혼침)도 沈(침)울도 아니라고 한다.
  定(정)의 意味(의미)를 분석하면서 점차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止觀(지관) 三昧(삼매) 禪定(선정)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止觀雙運(지관쌍운)’이란 표현은 많이 발견된다. 이 점에서 元曉思想(원효사상)은 天台敎學體系(천태교학체계)가 고정화한 六祖湛然以前(육조담연이전)의 초기사상의 형태를 전승한다고 보여진다.
  新羅末(신라말)부터의 禪(선)과 敎(교)의 대립은, 高麗初(고려초)에 와서 교선일치사상의 체계가 확립된 天台敎學(천태교학)에 의하여 사상적 혼란이 지양 통합되었다. 光宗(광종) 12年(년)(96) 宋(송)의 吳越國王(오월국왕)인 錢俶(전숙)이 보물을 보내면서 天台關係(천태관계)의 서적을 요청해 온 사실과 諦觀(체관)이 渡宋(도송)할 때 몇 개의 天台論疏(천태론소)가 國外(국외)반출이 금지되었던 것은 고려천태교학의 위치를 잘 시사하고 있다. 渡宋(도송)한지 10년에 義寂(의적)의 門下(문하)에서 敎觀(교관)을 익히고 <天台四敎儀(천태사교의)> 二卷(이권)을 남겼는데 내용은 湛然(담연)의 敎學(교학)의 傳統(전통)을 繼承(계승)하고 있다.
  敎理(교리)체계는 五時(오시)·八敎(팔교)의 敎判(교판)으로 설명하고 실천체계는 二十五方便(이십오방편), 十乘灌法(십승관법)으로 分類(분류)하여 要約(요약)하고 있다. 五時(오시)는 華單(화단)·鹿苑(녹원)·方等(방등)·般若(반약)·法華涅槃時(법화열반시)로 나누고 佛陀(불타)의 說法時期(설법시기)를 말한다. 八敎(팔교)는 佛陀(불타)의 교육방법을 化儀四敎(화의사교)라 이름하고 頓(돈), 漸(점), 秘密(비밀), 不定(부정)의 네 가르침을 말한다. 또 敎育內容(교육내용)은 蓮(연), 通(통), 別(별), 圓敎(원교)의 化法四敎(화법사교)라고 이름한다. 十乘灌法(십승관법)은 不可思議(불가사의)한 境界(경계)를 觀(관)하는 것이다. 즉 一念(일념)에서 三千(삼천)의 世界(세계)를 主體的(주체적)으로 觀(관)하여 體得(체득)하는 것, 곧 빈 것인 即室(즉실), 곧 거짓인 것인 即假中(즉가중)의 세 진리인 三諦(삼체)의 對象(대상)을 體驗(체험)하여 證得(증득)한다. 이를 主觀(주관)으로 볼 때 三觀(삼관)이라고도 表現(표현)한다.
  이 <天台四敎儀(천태사교의)>는 諦觀(체관)이 가지고 간 다른 典籍(전적)과 함께 趙宗(조종) 天台敎學(천태교학)을 크게 復興(부흥)시켰다. 그 후 中國(중국)과 日本(일본)에서는 이 책에 대한 解釋書(해석서) 73種(종)이고 그것에 대한 末疏(말소)도 1백30가지나 된다.
  우리나라에는 大覺(대각)의 주석서 3권분이지만 그나마 전하지 않는다. 現代日本佛敎學界(현대일본불교학계)에서도 이 책에 대한 새로운 問題(문제)를 提起(제기)하여 激論(격론)을 展開(전개)시킨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天台宗(천태종)이 宗派(종파)로 創立(창립)된 것은 義天大覺國師(의천대각국사)(1055~1101)이다. 그는 元曉(원효)의 會通(회통). 和諍思想(화쟁사상)을 理解(이해)한 최초의 韓國(한국)의 知識人(지식인)이었다. 義天(의천)이 天台宗(천태종)을 開立(개립)한 것은 元曉(원효)의 和諍思想(화쟁사상)의 근거인 法華經(법화경)의 ‘會三歸一(회삼귀일)’ 思想(사상)을 高麗佛敎思想界(고려불교사상계)에 定立(정립)함을 課題(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물론 王子出身(왕자출신)의 義天(의천)이 政治社會的(정치사회적)인 安定(안정)을 위해, 思想(사상)의 混亂(혼란)을 止掦(지척)하여 統合(통합)하기 위함이었음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禪宗(선종)과 敎宗(교종)을 調和(조화)하기 위하여 天台宗(천태종)을 開立(개립)한 것이지, 다른 宗派(종파)를 消滅(소멸)시키려는 의도는 없었다. 敎學的(교학적)인 知識(지식)의 理解(이해)만을 主張(주장)하는 華嚴宗(화엄종)이나, 盲目的(맹목적)인 實踐(실천)만을 강조하는 禪宗(선종)의 缺點(결점)을 잘 補完(보완)해주는 天台宗思想(천태종사상)을 歷史的(역사적)인 現實(현실)로 表面化(표면화)한 것이 숙종 6년 (1101)의 天台宗(천태종) 창립이다.
  義天(의천)이 華嚴敎學(화엄교학)을 天台敎學(천태교학)과 大同(대동)하다고 보았던 것은 敎理的(교리적)인 側面(측면)에서의 發想(발상)이라고 보여진다. 그는 禪宗(선종)의 實證的(실증적)인 결함을 天台正觀(천태정관)의 法門(법문)에 의하여 補完(보완)하려고 노력하였음은 <新編諸宗敎藏總錄(신편제종교장총록)>의 收錄內容(수록내용)이 잘 말해준다.
  義天(의천)이후 100여년이 지나면 萬德山 白蓮社(만덕산 백련사)가 天台宗(천태종) 中興寺刹(중흥사찰)로 등장한다. 圓妙國師(원묘국사) 3世(세)(1163-1245)가 희종 7년(1211)에 修道道場(수도도장)으로 經營(경영)하고, 法華三昧(법화삼매)를 實踐修行(실천수행)하는 普賢道場(보현도장)을 開設(개설)하였다. 天台宗(천태종)이 正統(정통)의 修行敎團(수행교단)으로서 名實共(명실공)히 體裁(체재)를 갖춘다. 3世(세)는 白蓮社 第一世 法主(백련사 제1세 법주)로서 禪觀(선관)과, 淮提神呪(회제신주), 阿彌陀佛(아미타불)을 念頌(염송)하면서 極樂淨士(극락정사)에 往生(왕생)하기를 誓願(서원)하였다. 더불어 四明知禮(사명지례)의 <觀無量壽經妙宗鈔(관무양수경묘종초)를 大衆(대중)에게 강의하며 懺悔行(참회행)을 實踐(실천)한 法華者(법화자)였다.
第二世(제2세) 天因(천인)이 高宗(고종) 15年(년)(1228) 몽고의 난을 피해 다른 儒生(유생)과 더불어 白蓮社(백련사)에 입사하므로서 白蓮社(백련사)는 天台(천태)의 실천교단의 역할을 강화한다. 普賢道場(보현도장)에서는 법화경의 기본적 修學(수학)과 더불어 法華三昧(법화삼매) 즉 四種三昧(사종삼매) 가운데 半行半坐三昧(반행반좌삼매)를 실행하였다. 달리 法華懺法(법화참법)이라고도 하는 이 수행법은 수많은 대중을 發心(발심)시켰고 3世(세)를 중심한 법화경을 讀訟(독송)하는 인구가 1천여 명, 제자 38명, 白蓮社(백련사)의 결사운동에 참가한 道伴(도반)이 3백여 명이었다. 이들은 당시에 中央高官(중앙고관)과 지방관리가 다수 포함된 四部大衆(사부대중)이었다. 10C경 중국의 本如(본여)가 慧遠(혜원)을 모방하여 결사한 운동과도 유사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交流(교류)의 자취는 찾을 수 없다. <天台二大部節要(천태이대부절요)>를 지어 板刻(판각)하여 유포시켰으나 傳(전)하지 않는다. 이 3世(세)의 法(법)을 계승한 天因(천인)은 靜明國師(정명국사)라고 號(호)를 받았다. 3世(세)가 松廣山(송광산)의 牧牛子(목우자)와 禪(선)의 교류를 가졌던 例(례)와 흡사히 송광산 第二世(제이세) 慧湛(혜침)과 교류하고 曺溪禪(조계선)의 요령을 체득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第(제) 4年(년) 天頙(천책), 그리고 法孫(법손)인 無寄(무기)로 이어지는 전통으로서, 南宋(남송)의 당시의 불교사상계의 경향을 방불케 하고 있다. 天因(천인)은 당대의 권력자인 崔氏(최씨)정권의 깊은 歸依(귀의)를 받았고 白蓮禮(백련례)의 結禮同人(결례동인)이기도 하다. 그 외 著(저) <靜明國師後集法華經讚(정명국사후집법화경찬)>의 序文(서문)에 있는 法華懺法(법화참법)의 儀禮文(의례문)은 日本天台敎團(일본천태교단)의 儀禮文(의례문)과 동일한 것을 보면, 白蓮禮(백련례)의 普賢道場(보현도장)에서 시행하였던 것으로 간주된다.
  다음 第4世 眞靜國師天頙(제4세 진정국사천책)의 사상에서도 3世(세)와 天因(천인)과 같이 曺溪禪(조계선)과의 교류를 가지면서 禪關係(선관계) 저술을 짓고 있다. 그는 天台山外派(천태산외파)의 從義(종의)의 天台敎觀思想(천태교관사상)을, ‘禪誦一如(선송일여)’로 전개시킨 독창성을 보여준다. 法華經(법화경)의 本旨(본지)를 禪(선)을 통해 體觀(체관)시킨다. 智顗(지의)의 <觀心誦經法(관심송경법)>의 一心三觀思想(일심삼관사상)에 의하여 ‘刹郡(찰군)의 一念(일념)이 하나의 큰 因緣法(인연법)과 같다’라고 말한다.
  그가 “經(경)의 가르침이 곧 禪(선)”이라고 하는 것은 이 經(경)에 의거한 것이다. 또 “三世(삼세)의 부처님이 모두 이 經(경)에서 나온다”고 引用(인용)한다. 그의 <禪門寶藏錄(선문보장록)>은 敎(교)와 禪(선) 卽(즉) 經(경)과 心(심)이 둘이 아닌 하나라고 敎禪一如(교선일여)의 理論(이론)을 전개시킨다.
  여기에는 天頙(천책)이 禪敎一元觀(선교일원관)에 서서, 敎學者(교학자)를 설득시키려는 뜻이 잘 나타나 있다. 義天(의천)이 敎學(교학)쪽에 기울어서 禪師(선사)를 설득시키려하였다면, 天頙(천책)은 禪(선)편에 서서 敎學者(교학자)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 點(점)이 高麗佛敎史(고려불교사)에 있어서 天台敎觀思想(천태교관사상)이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될 歷史的(역사적)인 과제였다. 天頙(천책)의 敎(교)·禪(선)·密(밀)의 一充觀(일충관)은 그의 독창성이기도 하며 동시에 韓國佛敎(한국불교)의 특색을 잘 부각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三敎一元觀(삼교일원관)은 그 후의 韓國佛敎(한국불교)에 깊이 영향을 준 超宗派的(초종파적)인 實踐理論(실천이론)의 形態(형태)가 되었다. 白蓮社(백련사)의 그 후 法孫(법손)으로 浮菴(부암) 無寄(무기)가 있다.
  天賴(천뢰)의 敎禪一元觀(교선일원관)을 더욱 구체적으로 論證(논증)하려고 노력한 그는 “拈花示之(염화시지)” (꽃을 들어 보임)이 든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그의 敎學(교학)은 諦觀(체관)의 <천태四敎儀(사교의)>와 智顗(지의)의 <三大部(삼대부)>에 의거하고 있는데 그가 지은 <釋迦如來行蹟頌(석가여래행적송)>은 五時八敎(오시팔교)의 敎判(교판)을 잘 소화하고 기록한 부처님의 一代記(일대기)이다. 특히 주의할 점은 佛敎史(불교사)를 槪觀(개관)하면서 慧恩(혜은)의 正(정)·像(상)·末法觀(말법관)의 佛敎史觀(불교사관)을 적용하는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을, 불교의 단순한 지식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신앙인의 태도로 임한 것은 무기의 대담한 시도였다. 中國(중국)의 法難(법난)은 客觀的(객관적) 역사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고, 佛敎敎團(불교교단) 및 불교인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지적한 “사자 몸에서 나온 벌레”의 비유는 그의 卓見(탁견)이라 하겠다. 高麗末(고려말)의 사회적 불안을 잘 암시하는 것이다.
  天台宋(천태송)의 無寄(무기)가 宗敎人 本然(종교인 본연)의 자태를 지키기 위해 기록한 사실은 韓國佛敎史(한국불교사)에서 볼 수 없는 異彩(이채)로운 일이다.
  (朝鮮天台(조선천태)의 命脈(명맥)은 省略(생략))


  韓國佛敎史(한국불교사)에서 天台思想(천태사상)은 敎禪(교선)의 統合(통합)·止掦(지척)의 歷史的(역사적) 課題(과제)를, 天台敎觀思想(천태교관사상)에 의하여 수행하였다. 때로는 華嚴敎學(화엄교학)과 相互補完關係(상호보완관계)에 있으면서 禪宗(선종)을 包容(포용)하였고 때에 따라서는 曺溪山(조계산)의 禪宗(선종)과 相互交流(상호교류)하면서 禪觀(선관)을 實踐(실천)하였다. 3世(세), 天因(천인), 天頙(천책), 無寄(무기)로 이어지는 敎觀一如(교관일여)의 傳統(전통)은 淨土密敎信仰(정토밀교신앙)도 잘 調和(조화)시켜 韓國佛敎(한국불교)의 根幹(근간)을 구축하였다. 元曉(원효) 以後(이후), 煩惱(번뇌)한 天台敎學體系(천태교학체계)를 槪論的(개론적)으로 摘出(적출)한 會通思想(회통사상)의 展開(전개)는, 韓國天台思想(한국천태사상)의 特色(특색)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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