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차례

1. 들어가는 글 (이론의 개념정립과 그 의의)
2.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주변부 자본주의론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등 기존제사회구성체 이론의 검토
3. 기존사회구성체이론의 비판과 한국사회 구성체론
4. 모순론(한국사회 구성체의 모순설정)
5. 계급론
6. 끝맺는 글 (한국사회 변혁론의 소개와 그 방향설정)

 

 

Ⅰ. 서론
계급·계급의식에 대하여

  계급이란 사회적 생산의 역사적 일정 체제에서의 인간의 지위와 생산수단에 대한 그들의  관계, 그리고 노동의 사회적 조직에서의 역할에 의해 그들이 차지하는 사회적 부를 수취하는 방식과 그 분량에 의해 구분되는 인간의 큰 집단을 말한다.
  계급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사회적인 체제에서의 인간의 지위가 아니라 사회적 생산체제에서의 인간의 지위인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사회적 지위의 차이도 본질적으로는 경제상의 지위의 차이에서 유래한다.
  또한 경제체제에서의 인간의 지위는 단순히 생산분배의 대소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수단에 의한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 즉 누가 생산수단을 점유하는가에 따라서 근본적으로 계급이 구분된다.
  생산수단을 점유하게 되면 그 지위로부터 타인의 노동을 착취할 수 있다. 이 착취, 피착취의 관계가 계급의 본질적인 관계이다. 이러한 점에서 특정사회의 기본적인 계급관계는 모순적이고 적대적이다.
  인간의 생산은 언제나 사회적 생산인 이상 거기에 법들이 있고 지휘와 복종의 구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 말해 계급은 사회적 생산의 역사적인 일정체제에 있어서의 인간의 지위에 따라 구분되는 인간집단이다.
  사회적 생산체제가 역사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기본적 계급관계도 변화하고 계급 그 자체는 발생 혹은 소멸된다.
  사회를 계급으로 분열시키고, 이것을 필연적이게 하는 것이 일정정도의 생산력 발전이 가져온 것이라면 나아가 생산의 어느 정도 이상의 발달이 계급을 소멸시킨다는 점도 명백하다.
  그러나 생산력의 자연적인 발달은 무계급사회를 가능케 하는 객관적 근거를 주는 것이지 그것을 자연적으로 실현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변혁하려는 자각한 주체의 적극적 행동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것이다.
  진실한 계급의식은 노동자 계급만이 가질 수 있다. 노동자가 상호간에 이해의 연대성을 인식하고 자신들을 서로 동료로 생각하여 공통의 상대에 대치하고 자기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그들과 투쟁한다면 이것은 계급의식을 갖는 투쟁이다.
  노동자는 단순히 자신에게만 주의를 기울이고 자기의 직접적인 계급적 이해를 위해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모든 피압박 계급을 해방시킴으로써 자기를 해방하고 종국적으로 계급 그 자체를 지양한다는 자기의 사명을 진실로 자각하는 경우에 한해서 참된 계급의식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가 자기에게 가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계급에게 가해지는 압박·폭행·학대에 대하여 올바른 계급적 견지에서 대응하는 습관을 지니고 모든 사회·사건에 대하여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고 모든 계급의 움직임으로부터 그 계급의 본질을 정확히 평가하고 이 평가를 실천 속에서 이용할 수 있을 때 비로써 참된 계급의식을 인정할 수 있다.
  노동자의 계급의식은 직접적인 증오로부터 조합의식으로 조합의식에서 참된 계급의식으로 발전하고 이에 상응하는 직접적인 투쟁에서 경제운동으로 경제투쟁에서 의식적인 정치투쟁으로 형태가 발전하며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어야만 한다.


Ⅱ. 본론
한국사회의 계급구성

  역사 변동이란 단적으로 규정하면 ‘주체의 실천을 통한 가능성의 구현화’라고 말할 수 있다.
  객관적 가능성은 역사적 모순구조에 의해 규정되며 모순구조란 그 지양에 있어서 일정한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 모순에 의해 규정당하는 객관적 가능성은 필연성을 함유한다. 그러나 주체의 실천이 없으면 필연성은 스스로 구현화 할 수 없으므로 그 필연성은 가능성인 것이다.
  역사변동이 이렇게 주체의 실천을 통한 가능성의 구현화라면 역사변동의 구체적 과정이란 결국 ‘주체의 구체적 실천 과정’이다.
  한국사회구성체 속에서 근대사를 기점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대립적인 시각이 있어왔다. 하나는 자본의 일반성을 강조한 ‘국·독·자·론’과 자본의 특수성을 강조한 ‘주·자·론’ 입장이 그러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두 입장을 발전시킨 것이 종속적 관료독점 자본주의 = 예속국가독점 자본주의이다.
  한국 자본주의 성격을 종속적인 면에서 자본, 기술 그리고 무역의 미·일에 대한 의존성과 관료적 성격면에서 국가관료에 의한 독점자본의 선호, 저곡가와 저임금, 그리고 노동부문에 대한 통제로 파악하는 입장이다. 종속관료독점자본의 축적의 결과로 독점재벌강화와 중소기업의 몰락, 농업부문의 타부문과의 단절, 그리고 기생적 성격이 두드러져 종속적관료 자본주의 축적기구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통한 이윤착취를 가져온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한국자본주의 성격파악에 따라 계급구조에 관한 상이한 규명으로 이어진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
  한국 자본주의 본질이 지니는 보편성을 강조하는 <국·독·자>론에 따라 한국자본주의를 규정할 경우 현대 한국 사회에 있어서는 기본계급인 자본가와 노동자, 그리고 앞으로 양대 계급으로 분해되어나갈 중산층이 존재한다.

    ①부르조아 혁명
  부르조아혁명도 봉건적 사회 구조에서 자본주의적 사회구조로 전환되는 전부분·전과정을 총칭하며, 자본주의적 질서의 대표자인 부르조아계급의 수중으로 정권이 이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르조아 정치변혁의 기본목적은 부르조아에 의한 권력장악의 장악이고 봉건적 내지 절대주의적인 정치형태 대신 부르조아적 정치지배를 수립하는 것이다.
  경제적 변혁에 대응하여 부르조아 정치변혁에 대응한 부르조아적 정치변혁은 오랫동안 불가피했다. 따라서 이들은 자기본래의 역사적 역할을 상실하고 만다.
  구국가 권력은 봉건적 본질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자본주의 사회구성에 스스로를 적응시킴과 동시에 자기의 물질적인 기초인 봉건적 내지 반봉건적 생산관계가 경제구조 내부에 굳건히 잔존하고 있다. 그리하여 여기서는 변혁의 지도권이 노동자 수중으로 들어가고 노동자계급이 광범한 농민층 및 도시 소부르조아층을 동맹군으로 하여 부르조아적 정치변혁을 수행하는 특수한 사태가 발생한다. 그 정치적 목적은 (한국에 있어서) 군부독재타도 및 사회 경제적 내용이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토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르조아 민주주의혁명이 된다.
  그 반면 혁명의 형태는 민중들이 적극적으로 혁명과정에 참여함으로써 혁명이 승리한 부르조아권력의 수립이 아니라 민중권력수립이 가능하다. 따라서 민중권력의 수립하에 독점자본의 타도 민중의 대기업관리 농업협동하의 추진 등에 의해 본래의 부르조아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한 정치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사회발전의 원동력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서 출발한다. 한국의 상부구조는 생산력을 속박하고 억압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그들의 물질적 토대를 계속적으로 확보하여 도저히 지금의 국가권력으로서는 사회를 유지 발전시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지금 민주주의 혁명을 수립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노동자뿐이다. 이 과정을 통해 구국가권력(군부독재)을 해체하고,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혁명에 참가하는 L·B·G(반동부르조아와는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던 부르조아)를 고립 무력화시키는 농민을 동맹세력으로 결집시켜내야한다. 그러기 위하여 노동자는 스스로를 계급의식적으로 조직하고 훈련 단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②한국사회 변혁주체 설정
  노동자는 원론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한 댓가인 임금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계급이며 주체범주로서 공업, 광업, 운수업, 건설업 등의 산업에 정규적으로 취업하고 있는 노동자를 말한다. 공공부분 및 민간부분의 전문기술직 사무직에 종사하는 계층도 노동자이나 생산직 노동자와는 큰 이질성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지 않는 ‘노동귀족’을 형성하는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사회변혁의 주체범주에서 빠짐. 잠재적 가능성만 내포)
  생산직 노동자는 직접적 노동과정에서 가치를 생산하며 자본을 증식시키는 계층이다. 이생산직 노동자층은 생계비이하의 저임금, 세계 제일의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고용 열악한 노동조건 노동3권의 제약 등 노동관계의 중압하에 놓여 있다. 한국의 생산직 노동자층은 경제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된 채 초과착취 되어왔기 때문에 쁘띠부르조아적 성향이 나타날 물질적 기초가 없으며 따라서 직접자본과 노동관계에 정규적으로 포섭되어 있는 생산직 노동자층은 자본과 보다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이 조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산과정에서 요구되는 질은 숙련노동에서 단순노동으로 대체되고 생산직 노동자 사이의 계층성이 사라지며 동질성이 강해져 노동단결의 조건이 유리해진다. 또한 생산단위의 거대화는 노동의 집결을 초래하여 노동의 힘이 강화될 수 있는 조건을 성숙 시킨다. 즉,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즉 자본주의 기초가 심화되고 넓어질수록, 그것은 자본가는 물론 노동자·농민 전 계급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주체적 조건이 성숙되지 못하였음은 생산력이 발달되어 노동자는 온갖 악조건 속에서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력이 발전되면 노동자는 주체적 조건을 성숙시킬 물질적 기반을 형성한다. 즉, 권력의식 밖으로 내 몰려 철저히 계급 의식적이지 못했던 노동자는 이 과정을 통해 권력의 주체로 자신들을 교육시킬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하에서 억제당하고 있는 생산력을 해방시키고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발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자본가는 자본주의발전이 노동자계급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임무를 불철저하게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본가들과 투쟁해야한다. 농민은 봉건적 생산양식하에서는 계급적 범주를 파악할 수 있으나 현재 한국사회를 자본제적 생산관계가 지배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할 때, 농민이란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농, 중농, 빈농이라는 구분은 일반적으로 농민적경영의 범주이며 생산관계에 따른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의 농민은 역사적으로 토지개혁의 불철저와 독점자본에 의한 일방적 수탈로 양극분해의 가능성이 배제되고 소상품생산자로 광범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내부동질성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부농, 중농, 타인 노동에의 의존도가 높고 좋은 조건아래서 생계비 이상의 경제잉여를 취득할 수가 있어서 자본가적 성향을 짙게 가지고 있다. 소농 빈농은 자기 노동에 의해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거나 농업이외의 임노동, 또는 고용노동으로부터 노임 수입이 없이는 생계유지가 곤란한 계층으로서 저농산물가격, 협상 가격차 등으로 인한 독점자본의 수탈체계의 최말단에 위치한다. 농민은 노동자와 이해관계의 공통적 기반을 형성하여 노동자 지도하에 굳건한 동맹세력이 된다.
  도시빈민은 영세규모의 작업장과 가내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 대기업의 일고노동자, 단순노무자, 임시노동에 종사하는 자유노동자, 판매 노동자, 각종 서비스 노동자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자본제적 생산관계에 직접 포섭되어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노동은 자본에 의해 규정되며 자본의 운동과정을 보완하고 있다. 계급적 관점으로 파악한다면 도시빈민은 쁘띠부르조아층을 구성하며 자본제 생산관계의 진행에 의해 급속히 하강 분해된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이 계층은 제국주의 자본으로부터 하청을 받는 독점자본의 축적위기를 최종적으로 전가 받는 계층으로 생계비이하의 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불안정한 고용 등으로 존립하고 있으며 생산직 노동자층의 저임금을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하고 거대 독점자본이 창출해 내는 산업예비군적 성격을 갖고 있는 계층이다. 물론 이들은 열악한 조건에 있으면서도 자본과 노동관계에 직접적인 자본과 대립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분산성과 룸펜적 성향이 강하다.
  도시빈민은 농민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지도아래 동맹세력을 형성한다.

  ㉡주변부 자본주의론
  이 입장은 도시 비공식 부문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바 도시 비공식부문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애매하고 생산관계적 개념이 아닌 기술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도시 비공부문이란 생산관계적 개념이 아니므로 내부 역동성을 갖지 못하여 정체적, 현상적 개념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으리라 본다.
 

Ⅲ. 결론

  역사 변동은 주체의 실천과정이라는 인식 속에서 볼 때 올바른 역사 변동은 이룩될 수 없다.
  자기지양을 통하여 사회모순의 지양과 그것을 통한 그 사회를 구성하는 전 인간이 지닌 모순의 지양을 이룩할 수 있는 주체가 올바른 주체일 것이다. 따라서 주체는 모순을 지양한다는 의미에서 옳은 이념성을 가져야 하며 모순지양을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역량(힘)이 있어야 한다.
  올바른 이념성은 사회구조 속에 처해있는 자기 위치로부터 자생적으로 인식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구조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에만 올바른 이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주체의 역량도 자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들을 주체로 형성시키려는 의지적 노력이 있을 때에만 주체는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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