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태에서 사랑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사랑의 감정도 바뀌고 사랑의 대상도 바뀌어 간다. 자본주의 후기의 소비 단계에 걸맞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개인의 취향, 감정의 끌림에 따라 사랑을 소비한다. 인간의 사랑이 육체적인 끌림, 가문간의 정략결혼 차원에서 벗어나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낭만적이면서 실존적인 사랑을 구가한지 약 천 년(조셉 캠벨의 학설), 이제 사랑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소비의 사랑이 인류의 유토피아로 상승할 지 디스토피아로 하강할지 아직 모른다.

여기서 소개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집은 소비의 사랑이 아니라 보존 즉 사랑의 영원불멸성을 노래하는 소네트 15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4대 비극을 비롯하여 36편의 희곡작품을 창작하여 인류역사상 그 어느 누구도 밟아 보지 못한 영역을 개척(開拓)한 위대한 문호 셰익스피어는 이들 드라마 작품이 없었다고 해도 이 소네트집만으로도 위대한 시인의 반열에 들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에게 사랑은 지고지순(至高至順)하며 일상에서 벗어난 이데아의 세계에 닿아 있어 그 순간은 캡처되어 영원히 보존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사랑에 빠진 순간 우리는 일상을 벗어나며 사랑의 빛 속에서 탈바꿈한 자신과 연인을 마주보게 된다. 그 사랑은 오월 어느 날 오후의 햇살 아래 자신의 이데아가 마음껏 발휘된 장미처럼 슬프도록 아름답다. 곧 그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은 환희의 정점을 지나 시간의 손을 타서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꽃잎은 선홍빛을 내주고 탄력을 잃고 중력에 못 이겨 아래로 무너져 흐르기 시작한다. 천지에 이제 장미는 자취도 없다, 시들기 시작한 꽃은 존재할지 몰라도. 중력에 의해 지상의 존재로 끌어 내려진 장미는 더 이상 장미가 아니다. 그리하여 예술가는 시들기 전 장미를 불멸화할 사명감(使命感)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감으로 셰익스피어는 젊음, 아름다움, 사랑을 노래하며 불멸화하고자 한다. 18번부터 예술을 통한 미, 사랑, 청춘의 불멸화는 다양한 메타포를 거쳐 가면서 소네트 연작의 중핵적인 주제로 부각된다. 예술적 불멸화 작업의 여러 가지 양상 중에서 메타포 등을 통하여 연인과의 데이트, 용모, 관계 내지는 시간, 자연의 이미지 등을 시적 형상화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154편의 소네트 중 많은 시편들이, 연인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가슴을 감싸는 의상으로 비유하는 시(22), 연인의 초상화를 화폭에 담아 “마음의 거실”로 옮겨놓는 시(24), 헤어짐의 슬픔을 자신이 타고 가는 말에 가탁하는 행위(50), 연인과의 데이트를 “진귀하기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축제일에 비유하는 시(52),

연인의 아름다움을 장식이 없는 자연의 꽃이나 “흘러간 시대의 지도”로 비유하는 시(68), 이 세상의 모든 꽃들이 연인의 미모와 향기를 강도질하여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99), 시간에 의해 희롱대는 어릿광대가 아니라 심판일 까지 변치 않는 사랑을 예찬하는 시(116), 시간을 위압적인 석탑에 비유하는 시(123)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현란하면서도 시제와 유기적인 조화를 이룬 메타포를 통해 사랑과 시간의 의미를 절절하게 전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소네트 60에서 노래하길, “시간은 청춘에 드리우진 화려한 치장물을 걷어가 버리고/미인의 이마에 주름 고랑을 패게 하며/절세가인을 파먹어 들어가니/그의 베어가는 낫질에 버틸 존재가 어디 있으랴./허나 나의 시구는 그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며/그의 냉혹한 손길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미래에 버티고 서 있을 것이다.”

요즘 세태에선 사랑의 장미꽃이 시간의 손을 타서 그 꽃잎이 허물어져 내리면 조금 전 누렸던 사랑의 열락을 망각하고 새로운 사랑을 소비한다. 사랑은 기억과 보존, 나아가서 불멸화의 대상이 아니라 구매하기에 좀 아까운 모델이 낡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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