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마냥 정겨운 계절이다.
  따스한 햇살과 졸졸거리는 냇물이 있으며 방실 웃는 꽃이 있는 情感(정감) 넘치는 계절이다. 화창한 어느 봄날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고 잠시만 거닐어 보라.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가의 천진함이 있다. 그러한 천진함을 지켜보는 엄마의 따스한 미소가 있다. 누구네 집 담 밑에 핀 노오란 개나리를 보고는 동요라도 한 곡 불러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리라. 봄에 느끼는 정겨움과 평화로움은 어머니의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포근하고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얼굴이 말이다. 강렬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저 수수하고 정겨울 뿐이다.
  봄은 또 자연스러움의 계절이다.
  농부가 정성들여 뿌린 씨앗을 그대로 싹터 주는 있는 그대로의 계절이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날아오는 새들이 그렇고, 어미 새의 먹이를 기다리는 어린 새의 조바심이 그렇다. 버들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부는 자연스러움이 있고 너울거리는 나비에 한번쯤 손을 뻗쳐 보기도 하는 계절이다. 창문을 열고 묵은 마음을 털어 내는 한 없이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우며 순수한 계절이다. 그런 봄을 거닐다보면 도화지가 없어도 스스로 화가가 될 수 있으며 오선지가 없어도 절로 노래가 나온다.
  봄을 생각하면 누구나 젊어지는 것 같다. 젊은 것보다 조금 더 젊은 초롱초롱함이다. 이른 아침 파드득 거리는 날개 짓에서 초롱초롱한 젊음을 느낀다. 소풍날 아침의 설레임이라고나 할까? 무지개를 쫓아가는 신비함일까? 봄은 누구도 갖지 못한 경쾌한 추진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봄에는 누렇게 시들어가는 뗏장 밑에서 새로 막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신선함이 있다. 청바지를 입고 아침 햇살을 벗 삼아 일터로 나가는 농부의 가슴처럼 가득차 밀려오는 희망스러움이 담겨 있다. 번잡한 도심지를 막 빠져 나와 탁 트인 고속도로에 진입한 순간 같은 짜릿한 행복감이라.
  봄이 이토록 강인한 생명력을 갖추고 있음은 어둡고 시린 기나긴 겨울을 꿋꿋하게 참아낸 인내력이 바탕이 되었음이리라. 왜냐하면 고통과 아픔 없이 이루어진 생명력이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훌륭한 예술작품들을 보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그것을 위하여 쏟은 정성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봄을 생각하면 어머니들의 특히 우리 민족의 어머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온갖 유혹과 모진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희망을 지켜온 우리네 어머님의 얼굴은 산고의 아픔을 접어두고라도 가히 봄의 그 화사한 모습과 못할 것이 없다.
  따뜻하고 인정에 넘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어머님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 바람이 차고 눈이 덜 녹았어도 포근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봄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음미해 보자.
  눈을 감고 졸졸 흐르는 냇물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마음을 함께 하여보자. 힘차고 생기 있게 움직이면서도 결코 흐트러짐이 없는 질서와 리듬이 있다. 쉴 새 없이 大地(대지)를 호흡하고 양분을 빨아들이면서도 한 치의 파격이나 예왼 보이지 않는다.
  봄을 바라봄으로써 人生(인생)을 배우고 진리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뭇 시인의 입에 봄이 그토록 많이 읊어진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人生(인생)의 오묘한 진리를 봄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 서서히 봄이 다가오고 있다.
  개구리도 어둠 속에서 찬란한 태양빛을 보게 될 것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지도 눈을 뜨고 새 생명의 용트림을 할 것이다. 새로이 싹을 틔울 씨앗도 마냥 꿈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대지를 찾아 새들도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젠 희망만이 남은 것이다. 지난날의 모든 쓰라림과 차가움은 겨울의 땅속에 묻혀 질 것이다. 그리고 아장아장 걷는 천진함과 사랑의 미소가 머금어질 것이다. 나도 봄을 맞아야겠다. 방실방실 웃는 꽃보다도 더 정겨운 봄을 맞으리라 묵었던 먼지를 털어내듯 자연스럽게 봄을 맞으리라. 봄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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