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이때가 되면 나는 시의 절창들이 그리워진다. 내 젊은 날 가장 절절하게 읊었던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의 『미당시전집』을 학생들과 함께 읽고 싶다. 미당은 한국어의 연금술사이자 한국 현대시의 고전이다. 동시에 그는 자타가 공인(公認)하는 20세기 한국시의 태산(泰山)이다.
한국어는 세칭 ‘부족방언의 요술사’이자 ‘시인부락의 족장’인 미당의 손을 거쳐 비로소 찬란(燦爛)해졌다. 미당은 오랫동안 ‘시(언어)의 정부’로 인식(認識)되어 왔다. 현대 한국 시인들은 그 정부의 국민이 되어 시세계를 키워왔다.
그런데 그의 생평에는 항일(抗日)과 친일(親日)이 혼재한다.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일정한 포폄이 존재한다. 민주화시대에 미당은 철저히 부정되었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그는 한국시의 맹주로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당의 시집 15권을 집대성한 이 전집에는 ‘화사집’, ‘귀촉도’, ‘서정주시선’, ‘신라초’, ‘동천’, ‘서정주문학전집’,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西으로 가는 달처럼’,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안 잊히는 노래’, ‘노래’, ‘팔 할이 바람’, ‘산시’, ‘늙은 떠돌이의 시’ 등에 실린 851편의 시들이 담겨져 있다. 그는 이들 시집 속에다 숱한 ‘명구’와 ‘명시’를 담아냈다. 미당의 시는 수많은 가곡들과 책제목으로도 환생했다. 그의 시는 ‘은유적 사고의 대담성’과 ‘언어의 황홀한 율동’에 기반(基盤)하여 장중한 호흡과 리듬, 파격적인 가락과 운율, 영매적인 직관과 통찰을 담아내었다. 이러한 개성들을 통해 그는 한국 현대시의 고전이 되었고 수많은 시인들을 절망케 했다.
미당의 명구는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다’(자화상), ‘한번 가선 소식 없든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부활),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귀촉도),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푸르른 날), ‘잔치는 끝났드라’(행진곡),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같은 제목),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무등을 보며), ‘보라, 옥빛 꼭두선이’(학),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국화옆에서),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으라’(신록), ‘떼 과부의 무리들’(풀리는 한강 가에서), ‘괜, 찮, 타,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꽃밭의 독백) 등으로 꽃피었다. 그의 발화는 셀 수 없는 절창과 고전이 되었고, 또 다른 시인의 화법(話法)으로 복제되어 환생을 거듭했다.
시는 삶의 정수다. 시 속에는 산문(散文)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정신의 고갱이가 있다. 그것은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직관의 힘이다. 직관에서 빚어진 시는 언어 너머 혹은 언어 이전의 세계를 통찰해 낸다. 언어와 언어 이전의 경계가 삶의 비의를 드러내는 시와 불교의 접점이다. 미당은 이름 그대로 60여 년 동안 ‘피 냄새’와 ‘이슬방울’과 ‘귀기(鬼氣)어린 웃음’으로 시의 집을 지어왔으면서도 ‘아직 다 짓지 못했다’ 했다. 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기 위해 ‘중앙일보’는 미당문학상(2001~ )을 제정하여 가장 권위(權威)있는 상으로 자리매김 시켜가고 있다. 국화꽃이 향기를 더해가는 이 가을 학생들은 미당시를 통해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현대시의 고전미를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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