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아시아 政策(정책)’이란 題上(제상)의 크라우스 폰 마이메(Klausvon Beyme·西獨(서독) 하이델베르크大(대) 교수·政治學(정치학))박사의 초청강연회가 지난 4日(일) 본교 종합세미나실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서 세계政治學會副會長(정치학회부회장)인 바이메 박사는 ‘소련은 남북한 양 진영에 다 같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은 남한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었다. 다음은 이 날의 강연 요지이다.…◎

  소련의 외교정책을 단순히 서술적 방법이상으로 分析(분석)하려면 외교정책형성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기본적인 要素(요소)들에 대하여 長期的(장기적)인 양상의 분석에서부터 시작하여야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세단계로 나누어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
  첫째는 소련외교정책의 이념적 기초로서 혁명이후 외교정책에서 이론상의 차이는 크게 찾아볼 수 없다. 즉 ‘트로츠키’의 외교정책에서도 혁명우선 및 사회주의건설기간의 내정제일의 원칙과 전문화된 밀사외교대신 공개외교원칙 그리고 직업화된 외교가 아닌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인민외교의 원칙이라는 세 가지 원칙은 그대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이론상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상으로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즉 전문화된 외교관에 의한 거대한 조직을 요구하게 되었고, 국제관계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이 요구되어 ‘막스’의 혁명이론에 입각한 자본주의국가와의 관계와, ‘레닌’에 의한 제국주의이론에 입각한 제3세계국가와의 관계를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게 되었다.
  둘째로 제3세계국가에 대한 소련의 외교관계이론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외교관계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社會主義指向(사회주의지향)’국가라는 새로운 용어로서 제3세계를 두 종류로 분류할 필요가 있는바, 이에는 대중조직에 의한 혁명적인 변혁을 시도하는 국가와 군부정예분자에 의해서 변혁을 이룩해 가려는 국가로 나누어진다.
  제3세계를 이와 같이 규정하여 다소간 개별적인 바탕에서 그들의 외교관계이론이 개발되는 것으로 외교정책결정자들의 태도는 이념적인 일관성에서보다는 中共(중공)과의 경쟁관계와 제3세계에서의 미국고립화라는 측면에서 그 윤곽이 정해진다.
  셋째로는 아세아지역에서 있어서 소련외교정책의 수단을 들 수 있다. 소련은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지역에서 점진적으로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의 관여는 어느 정도 아시아에서의 실패에 대한 보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소련 외교정책형태를 설명하려면 두 가지 관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하나는 미국과의 대결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중공과의 대결을 고려해야 한다.
  즉 이들과의 대결에서 세 가지 분야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분야로는 외교적인 주도권으로, 이를 위한 전략으로는 ①親西方(친서방) 제휴와 나토나 아세안과 같은 지역적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시도나, ②미국과 서방세계의 동맹관계에 있는 아세아 국가들과의 쌍무적인 관계의 개선, ③‘인도네시아’와 ‘버마’와 같은 非同盟(비동맹)국가에 대한 노력의 집중 ④COMECON에서의 발전도상국가의 수의 확대 ⑤지역체제에 대한 대치로서의 집단안보에 대한 아세아의 단결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분야로는 무역과 외원에 있어서의 경제적 주도권의 장악을 들 수 있다. 세 번째 분야에서는 군사원조를 들 수 있다. 소련 외교정책의 신조는 평화공전의 이름하에 전쟁을 불식하나 민족해방전쟁에서의 무력의 사용은 제3세계에 있어서의 제국주의의 간섭을 피한다는 소련의 외교정책의 신조로 정당화되고 있다. 더욱이 소련은 제3세계에서 NLF의 경우와 같이 직접적인 군수물자로서 제3세계의 게릴라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앞에서 지적한 세 가지의 접근단계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의 도출이 가능해진다. 이념적 협착성에도 불구하고 전후 소련의 외교정책노선은 새로운 진전에 대처해나가는데 잘 적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방세력과 중공의 영향을 역전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아시아에서 그들의 세력권에 있는 反蘇同盟帶(반소동맹대)를 깨뜨렸으며 개발도상국에서의 무기경쟁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중공의 영향권에 있던 월남, 캄보디아 및 南(남)예맨 등과 같은 새로운 위성국가를 얻을 수 있었고, 공산당들이 소련편에 서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과 같은 아시아에서의 중요한 발전국가들과의 무역을 늘리는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들이 서방세력과 그 영향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으나 다음의 관점에 비추어보아 그렇게 그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즉 이러한 성공들은 단지 이전에 미국의 교과서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세력균형을 이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 세계를 통한 해군팽창주의를 포함하는 군사력균형에서의 선취가 무역, 외원, 고도의 기술에 대한 매력이나 문화 및 현대생활의 다채로운 성취와 같은 제 분야에서 미국과의 경쟁자가 되기에는 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쿠바 월남 및 ‘이디오피아’와 같은 새 위성국가들은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있어 세계의 어느 한 부분을 형성하거나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또한 주로 인도, 아프가니스탄 및 이란등지의 아세아에서의 소련의 투자는 의지할만한 세력기지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인도는 소련의 원조에는 소련에 가까울 수 있으나 공산주의관념에는 거리가 멀어져 있으며,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보수지배체제를 혁명적으로 넘어뜨렸으나 결과는 소련의 승리와는 동떨어져 있다.
  아랍진영에서의 소련의 영향은 최근에 와서 괄목할만한 진전을 보여왔으나 성공적인 전쟁은 러시아의 결정적인 실패를 낳았는바 ‘사다트’에 의한 친서방으로의 편향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이스라엘에 대한 사다트의 평화정책에서 많은 보수적인 국가들을 소외시켰지만 이러한 국가들에서 친소련을 지향하도록 만들지는 않았다. 모스크바의 가장 믿을만한 동맹국인 이란이나 시리아도 보다 그들 자신의 독자적인 정책을 추구하게 되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의 소련세력의 확장은 아랍국가들에게는 하나의 신경적 긴장이 되었다. 소련당국은 이란의 영토를 경유해서 지원물자를 아프리카로 보낼 수 있는 권한을 얻어내기 위해서 이란을 협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南(남)예맨에서와 같이 소련의 간섭사건은 주변 국가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낳도록 했다. 親(친)소련 쿠데타에 관한 ‘루머’는 소련지향의 관리에 대한 대량적인 보복을 불러 일으켰고 소련과 이란과의 관계를 약화시켰다. 다만 시리아와의 관계에서 ‘이집트’의 정책에 대한 공통적 적개심이 모스코와의 주요한 공통적 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랍 내부분쟁에서 보면 이라크의 지원을 받고 있는 급진파에 대항하는 ‘아라파트’ 민족해방전선을 위한 시리아의 支援(지원)은 모스크바와 새로운 분쟁을 불러일으킬 잠재력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亞細亞(아세아)에서 평화의 보루라고 자칭하는 소련이지만 집단안보를 지지하고 있는 서방동맹정책에 대치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외에 소련은 무기판매에서 강점하고 있으나 제3국이 필요로 하는 고도로 발달된 기술이라는 면에서는 서방의 우위를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서방과 협조의 증가와 이러한 복합적인 공모가 유해한 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후진국가들이 감지하게 되었다. 또 몇몇 국가들에 있어서 소련은 오랫동안 성공적일 수 없었다.
  아프리카地域(지역)에서도 오히려 그전의 동맹관계를 상실하게 되었다. 前(전)포루트갈 식민지에서의 소련의 요새는 햄머와 낫의 소련국기의 상징과 쿠바의 유니폼이라고 가장하는 콩고問題(문제)를 낳고 있다. 앙골라에서의 ‘유니타’와 같은 대항조치는 중공과 서방원조의 옳지 못한 동맹으로 지지되고 있다. 개발도상국가 사이에서의 경쟁은 인도, 파키스탄, 이란, 이집트, 시리아와의 관계에서 보여준 것처럼 장기적인 투자를 위태롭게 해주고 있다. 더욱이 자치적인 문화적 종교적 전통의 재생은 막스레닌주의적 유혹을 멈추게 했고, 國號(국호)적인 맑스주의의 혼합으로부터 토착적인 합리적 전통에 의해서 냉각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미루어 보아 소련의 영향이 확대되는 것을 주의 깊게 볼 충분한 理由(이유)가 있으나 혼란에 빠지거나 아세아에서의 서방영향의 유지에 대한 소련의 관심이 정당하다고 인식하고 ‘심판의 날’을 향한 단계로서 모스크바지역에서 나오는 모든 정치적 행동을 고려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선전자에 가담할 충분한 이유도 없다.
  끝으로 캄보디아에서 예멘에 이르는 소련외교정책의 지원을 받는 많은 혁명적인 공격이 있어왔다. 그러나 영속적인 분쟁선에서 보면 소련은 때때로 한국에서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온건 정책을 행사했던 것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아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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