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외치는 ‘민주’란 과연 어떤 것일까

  빨간 물감을 흠뻑 적신 붓을 손에 쥐고 뿌리기라도 한 것처럼 군데군데 단풍이 든 남산을 넋없이 바라보던 내게 옆에 있던 친구가 ‘P군의 실명위기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급작스레 물어왔다. 나는 남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어디 걔뿐이냐! 그전에 뇌를 다쳐 반신불구가 될 뻔한 것, 그전에 잇달은 분신사건...’ ‘제3세계에 태어난 게 죄지!’
  그 순간 나의 기억은 새싹이 돋을 때쯤, 연극도 같이 해서 친숙해졌던 H선배가 학교 안에서 억센 손에 의해 무참히 끌려갔던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스크럼이나 짜야 볼 수 있었던 무장한 푸른 제복들이 학생들이 공부하는 강의실 앞마당까지 들어오고, 우리의 강의실이 있는 명진관을 향해 최루탄을 쏘아대던 그때가.. 솔직히 나는 무서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분노를 느꼈다. 그전까지는 그들에게 심한 적대감과 증오심을 품어 보지 못했고 친구들과 얘기한 결론처럼 ‘우리는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어. 그리고 학생은 역시 학생답게 공부를 해야 돼’라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강의실이 유태인을 질식시켜 죽이는 곳처럼 최루탄 가스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곳이 되고 우리의 교정이 제복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 것을 보니 너무도 당혹해 ‘정말 이럴 수 있는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하는 말만이 가슴속에서 응어리져 되풀이 되고 있었다.
  이번 P군 사건을 들었을 때도 역시 똑같은 물음들이 고개를 든다. 방패도 없고 무장도 하지 않은 학생들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인가? 최루탄을 학생의 머리를 향해 명중시켜도 되는 것인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생각해 보았다. 그냥 무심히 지나쳤던 대자보에 무엇이 써 있는지는 모르지만 과연 ‘민주’란 어떤 것이며 친구들이 하는 ‘운동’이란 무엇인가를.
  ‘민주’란 말은 글자 그대로는 백성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한나라가 소수 정치인의 것도, 몇몇 대재벌의 것도 아닌 그 나라에 뿌리박고 사는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이라면 자기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고 큰소리도 칠 수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운동’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자연물은 스스로 운동을 한다. 가까이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을 생각해 보자.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고, 물이 수증기가 되어 증발하여 구름을 만들고, 그 구름이 비를 내려... 단순히 생각하면 그것은 반복이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물은 그 중간과정에서 생명체를 유지시키고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먹는 곡식을 키우고 채소도 자라게 하고, 인체 역시 70%가 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것은 생성적인 의미이고 발전적인 의미이다.
  친구들이 하는 ‘운동’도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단점이 있으면 그것을 고쳐서 보다 나은 인격을 형성하려 노력하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순을 체념으로 돌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선해서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리라. 그러한 의미에서 운동이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로 결론된 주장이 아니라 단군이 이땅에 도읍지를 정하고 개국할 때의 이념을 쫓아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사회로 향하는 발걸음인 것이리라.
  우리 조상은 건국이념으로 ‘홍익인간’을 내세웠고 ‘왕도정치’ ‘덕치주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중요시 여겼다. 그 조상의 후손임이 분명한데 우리나라 정치에서 도시 이런 말을 찾아볼 수가 없지 않은가. 王道(왕도)와 德治(덕치)는 박물관에만 모셔두는 말이 되버린건 아닌가. 학생들의 머리를 향해 최루탄을 명중시키는 것에서, 신성한 학원을 마구 짓밟는 것에서 덕치를 찾아볼 수 있을까?
  그리고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란 말은 ‘수신제가’ 이후에 ‘치국’을 해야 ‘평천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말은 성인의 말로만 꽁꽁 묶어두고 실제로는 한마디 한마디씩 부러져 이산가족처럼 헤어져서만 나타나는 말이 돼버린 것 같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다 ‘수신제가’한 뒤 ‘치국’을 하는 것일까? ‘나’라는 말보다 ‘우리’라는 말을 더 많이 쓰던 우리나라에 실리주의, 이기주의의 물결이 토착화되어 공동체보다 개인이 앞서는 것이 당연한 논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선배, 나의 동료, 그리고 나의 후배들이 스크럼을 짜고 ‘홍익인간’이어야 된다는 正義(정의)와 正治(정치)를 요구할 때 나는 그들을 무심히 지나쳐 도서관에 앉아 책만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자꾸만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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