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득히 이 나라 노여움이로다.
소위 가을이라는 것조차
그냥 가지 않는다.
다 지어놓은 곡식 젖어버리다
하루내내 농부도 젖어버린다.
누구에게 묻겠느냐 누구에게 대답이 있겠느냐
아 이시대의 재난이여
또다시
이 재난 속에서 너를 기념한다
왜놈의 제국주의와 싸운 광주학생의 날을
그날을
11월의 낙옆 흩어지는 날을 기념한다.
돌아다 본다 오래동안 우리는 울음을 잊어먹었다
두 토막 끊은 땅에서
역사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최루탄 펑 터지는 거리에서
짓밟힌 마당에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러나 울음을 잊어먹었다
노여움으로 달려갔다 잡혀갔다
8·15이후 얼마나 많은 항쟁이었느냐
얼마나 많은 탄압이었느냐
4월혁명 이래
6·3 이래
유신시대 이래
1980년 5월 이래
이 땅의 역사가 몸 뿐인 학생운동사일진저
오늘 매카시즘의 때로라
재난이로다
가을비 온다
그야말로 우산도 없이
거적데기도 없이
민주주의 세상
통일 세상 만드는 판 젖어버린다
그리고 온다 군대처럼 온다
우리에게 무지막지한 겨울이 온다 보라
아무리 막아도
우리들의 뼈가 얼어붙는다
우리들의 정강이 뼈가 얼어붙는다
이 땅에서 무엇이냐
학생의 날
아직도 그 날 이래 그 싸움 아니냐
오늘 울자
세찬 뱃고동처럼
몸 팔아 돈 버는 누이처럼
울자
울음만이 자유 만끽 아니냐
이 울음만이 권리 하나 행사하기 위해서
일제 식민지 1929년 11월 3일 이래 오늘에 이르렀다
울자
울음으로 제사 지내자
울음으로 기념하자
그리하여
썩 숫총각 숫처녀로 태어나자꾸나
이 나라 위해
너와 나 하나하나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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