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안중근을 생각한다. 안중근은 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는가에 대한 10가지 이유 중 첫째로 ‘우리나라의 국모를 죽인 죄’를 들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의거 100주년이 되는 올해, 그리고 경술국치(庚戌國恥) 100년에 즈음하여 항일독립운동의 시발이 된 을미사변이 재조명되고 있다. 일본에 의해 자행된 을미사변, 이른바 명성황후 살해사건과 관련된 일본 기록들을 발굴하고 완역해서 해제를 곁들여 역사의 진실을 밝힌‘조선을 죽이다’가 출간되었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봉선사 혜문 스님이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입수한 자료들을 직접 번역해서 엮었다.

특히 ‘민후조락사건’과 ‘에이조 문서’는 사건의 진실과 관련된 민감한 기록들로 국내 사학계에서도 논쟁이 된 자료들인데 이 책은 그 전문을 발굴하여 수록하고 있다. 명성황후 살해에 직접 가담했던 당시 한성신보사 편집장 고바야카와 히데오가 쓴 수기 ‘민후조락사건’은 일본에서 사건의 배경과 현장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회고록으로 평가받는다.

‘에이조 문서’는 일본에서 소위 ‘조선왕비 능욕설’을 불러일으켜 국내 학계에서도 관심을 가졌으나 그 동안 원문조차 제대로 입수하지 못했던 자료다. 혜문 스님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이 문서가 포함된 ‘조선왕비사건 관계자료’를 찾아서 이 책의 부록에 전문을 영인하여 실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번역서나 학술도서의 범주를 넘어서 있다.

해외에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제자리에 되찾아오기 위한 실천운동 과정에서 나온 대국민 중간보고서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혜문 스님은 2006년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던 오대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 47권의 국내반환에 앞장서서 성사시켰고, 현재 일본 황궁에 소장된 ‘조선왕실의궤’72종의 반환을 남북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의 중심인물이다. 혜문 스님은 이 책에서 ‘조선왕실의궤’ 반환운동과 명성황후의 죽음에 대해 탐구하게 된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에 혜문스님이 역, 저술한 ‘조선을 죽이다’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국모를 죽인 자’들의 고향과 무덤을 누비면서 그들이 남긴 유품과 기록을 찾아 이국의 곳곳을 만행(萬行)한 눈 푸른 납자(衲子)의 비장한 수행 기록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