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창극 <적벽>

정달영 교수
필자는 1998년부터 공연계에 몸을 담기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부모님에게 효도의 일환으로 공연을 보여드리고 있다.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H. Maslow)가 주장한 ‘인간욕구(欲求)계층’(Hierarchy of Human Needs)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하위 욕구의 충족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좀 더 높은 욕구를 추구(追求)하려는 동기(Motivation)가 생긴다고 한다.

즉, 하위 욕구인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가 충족되어야 보다 상위의 안전의 욕구(Safety Needs)를 추구하고, 그 다음으로 사회적 욕구(Social Needs), 존중의 욕구(Esteem Needs), 자아실현의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 순으로 추구한다는 것이다.

1930년대에 태어난 필자의 부모님과 그 세대 중 공연관람이라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킨 분들이 얼마나 될까? 소수를 제외하고는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를 보내신 분들에게 하위의 생존(生存)과 안전의 욕구만을 충족하기에도 힘들지 않았을까 한다.

공연과 상관없는 일을 하시고 은퇴하신 분들에게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공연보다는 당신들께서 즐겁게 보실만한 공연을 선택하였다. 최근 필자는 보여드렸던 공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부모님께 여쭸더니 ‘완판창극 수궁가’라고 하셨다. 2000년 5월 국립창극단이 제작하였으며, 당시에도 부모님께서 보시고 무척 재밌어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았다.

필자도 이듬해 난생처음으로 ‘완판창극 흥보가’를 보게 되었는데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뻔한 스토리’에 해학적(諧謔的) 요소로 살을 붙이고, 노래는 판소리로, 전통악기에 한국무용을 가미했는데, 유명 서양 뮤지컬보다 훨씬 재미와 볼거리가 풍부하였다.

위와 같은 부모님과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극 ‘적벽’을 추천하고자 한다. 창극 ‘적벽’은 국립창극단의 ‘우리시대의 창극’ 시리즈 네 번째 작품으로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가장 남성적 소리로 알려진 ‘적벽가’에 극적요소와 대형 무대로 다시 태어났다. 본 시리즈는 창극의 대중화와 세계화란 명제 앞에 기획되었다.

추천 사유로는 먼저, 대형 뮤지컬과 오페라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도 찬탄(讚歎)을 할 만큼의 역동적이고도 화려한 무대이다. 창극이 판소리를 뿌리로 한다고 해서 움직임이 작고, 노래와 음악이 단순하다거나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이 일시에 날아갈 것이다.

다음으로는 올망졸망한 군사들이 보여주는 현실의 고단함과 해학이 펼쳐지는 장면이다. 이름 없는 군사들의 노래와 연희를 통해 민중의 고단함과 전쟁반대운동이 ‘군사설움타령’이나 ‘군사점고 대목’이 극중극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해학적으로 그려지는 이 장면이 창극의 백미를 느끼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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