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mmon end of every person's education is happiness”(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교육의 목표는 행복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제레미 벤담이 한말이다. 벤담은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행복을 위한 교육을 추구했다. 그러나 당시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대학은 국교도와 재력가들만을 위한 대학이었다.

벤담은 인종과 성별, 종교의 차별을 두지 않는 대학, University College London(이하 UCL)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행복을 위한 교육, 모든 사람을 향하는 교육이 UCL 설립의 목표였다. 벤담의 철학은 개교 200년을 앞둔 UCL에서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영국의 학문공동체 College문화

UCL의 정식 명칭은 University College London. College가 붙는 이유는 UCL이 런던대학교라는 대학연합체 중 하나의 대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대학의 근간인 학문공동체, College(이하 칼리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국대학의 시초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다. 두 대학은 이미 12세기 설립됐다. 12세기 당시 교수와 학생은 대학캠퍼스를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배우고자 했던 많은 학생들이 유능한 교수의 집 주변으로 이사를 왔다. 캠퍼스라는 정해진 공간에서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배울 수 있길 원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숫자는 늘어났고 하나의 자치조직을 꾸릴 수 있게 됐다. 이들은 개개인이 집을 임대하던 방식에서 단체로 건물을 임대할 수 있는 수준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영국에선 이들, 이 자치조직을 바로 칼리지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대학은 칼리지가 모여서 만들어진 University(종합대학)인 것이다. UCL 또한 이런 칼리지의 연합체다. 칼리지란 단어는 미국으로 넘어가 공동체라는 의미보다는 행정조직상의 의미로 사용됐다. 우리가 칼리지를 전문대학, 단과대학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더욱 가까이서 함께 공부 하고자 무리를 지어 살게 된 학생과 그들을 이끄는 교수들. 칼리지는 끊임없이 토론하고 학습하는 그들의 공간이었다. 영국에서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끈끈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UCL힘은 사람을 향하는 면담수업

칼리지 문화는 대학의 시스템이 거대하고 복잡해지면서 Tutorial Class(이하 면담수업)로 이어졌다. 양적 변화 속에서도 학문공동체라는 영국 대학 교육만의 장점을 이어가려는 노력의 한 단면이다. 토론과 학습이라는 대학의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UCL교육의 힘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학생 개개인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쏟는 면담수업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UCL의 면담수업을 간단히 말하면, 3~4명 정도의 학생이 Tutor(이하 튜터)에게 1:1로 지도를 받는 수업을 말한다.

학부과정이 3년인 영국에서는 각 학년 별로 면담수업이 다르다. 학과별로도 조금씩의 차이가 존재한다. 1학년 과정의 면담수업은 매주 1시간씩 열린다. 반면 2, 3학년의 면담수업은 2주에 1시간씩 배정돼 있다. 면담수업은 1학년에 집중돼 있다. 학부과정이 3년이기 때문에 1학년 과정의 적응도는 학부과정 전체의 학업성취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영국은 3학기제로 10월 초쯤이 1학기 개강이다. 개강을 하면, 정규 수업당 보통 3~4명의 학생에 한 명의 튜터가 배정된다.

수업은 대부분 정규수업시간에 내준 과제물이나 수업내용을 토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개강 첫 주와 두 번째 주는 예외다. ‘Reading Week’이라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는 면담수업이 없다. 한 학기의 강의 내용을 충분히 예습해보라는 것이다.

세 번째 주가 되면, 본격적인 면담수업이 시작된다. 면담수업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정규강의의 이해도다. 면담수업의 첫 머리는 정규강의의 수업내용에 대한 체크부터 시작된다. 화공생물공학과 2학년 임진우 군은 “튜터는 항상 정규강의의 내용을 질문한다. 전공 강의의 이해도를 항상 체크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정규강의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제물은 튜터와 함께 풀어본다. 전공의 정규수업 시간에 받은 과제물을 면담수업시간에 제출한다. 단, 같은 문제는 풀어보지 않는다. 비슷한 문제를 함께 풀며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수학과 신린 군은 “문제를 푸는 과정상에서의 실수를 체크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도움이 됐다. 3학년이지만 문제를 들고 튜터를 찾아가는 일은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에세이 같은 경우, 교수의 첨삭이 뒤따른다. 학생 개개인에 대한 첨삭을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지적받고 고치는 작업이 면담수업을 통해 이뤄진다. 많은 학생들은 답보다 답을 찾는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면에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학생들의 학교 적응 역시 튜터가 신경 쓰는 부분이다. 면담수업이 1학년 때 더 자주 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학과 같은 경우, 학생들의 적응도를 살펴보기 위해 1학년 과정이 끝날 때마다 설문조사까지 한다고. 설문조사는 교수와 튜터, 교육과정, 부대시설 등의 만족도와 개선점 등을 담는다고 한다.
수학과 신린 군은 “유학생들 같은 경우 특히 도움을 많이 받는다. 대학뿐만 아니라 영국문화에도 적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세심한 배려가 있어 학교적응이 수월했다”고 말했다. 면담수업뿐 아니라 지도교수 제도마저 개점 휴업한 한국대학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대학원생에겐 더욱 끈질긴 교수

UCL이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는 만큼 대학원 과정의 면담수업은 혹독하기 까지 하다.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배호 군은 교수들의 끈질김에 혀를 내둘렀다.

배 군은 “미국대학보다 UCL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석사과정부터 시작되는 교수와의 상시 면담수업이다. 1년간의 프로젝트를 짜고 담당교수가 정해지면 담당교수와 1주일에 한 번 미팅이 계속된다. 프로젝트에 의문이 생기면 교수가 먼저 면담을 요청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학부 3년보다 교수에게 수시로 문제점을 지적받고 토론했던 석사과정 1년 동안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UCL을 넘어, 영국교육의 핵심이라고 불리던 면담수업은 최근 폐지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지도교수 확보 등으로 재정 부담이 크고, 미국대학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연구역량강화와 연구시설확보가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UCL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국대학들이 면담수업 폐지에 조심스럽다. 영국대학 고유의 장점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최성주 교수는 “대학들이 양적으로 팽창하는 것도 중요한 이슈중 하나다”며 “하지만 UCL이 면담수업을 놓지 못하는 것은 양적성장보다 중요한 교육의 질 문제가 면담수업에 달려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젊고 열정있는 20~30대 튜터들

UCL은 학부생이 만 2천여 명, 대학원생이 9천여 명으로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다. 교수 숫자는 4천여 명으로 우리대학의 10배에 달한다. 교수 1인당 학생 숫자는 1대 5정도다. 면담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교수직은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그리고 연구전담 교수, 면담수업전담 교수로 구분돼있다. 면담수업은 면담수업전담 교수(college fellow)와 조교수들에 의해 이뤄진다. 면담수업은 대부분 2~30대의 젊은 교수들이 참여한다. 면담수업전담 교수들은 대부분 박사과정을 이수하는 대학원생이거나 연구원으로 연구비를 지급받으며 면담수업전담 강사를 겸하고 있다.

경제학과 최성주 교수는 “젊은 대학원생들이 면담수업에 강사로 나선다. 젊다보니 학생들과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토론한다”며 “대학입장에서는 유능한 강사를 발굴해내는 역할까지 가능하니 일석이조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면담수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교원이 많아야 한다. 학생 3,4명의 등록금이라면 교수 1명의 인건비를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영국에서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정부가 분담했다.

정부의 충분한 투자와 투명한 관리

영국대학은 소수의 대학을 제외하곤 모두 공립대학교다. 2008년 UCL 전체 예산 1조 3천억 원 중 3천 9백억 원이 정부의 지원금이다. 전체 예산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는 만큼 대학 예산의 투명한 관리에도 정부가 책임을 다한다. 정부는 대학의 투명한 관리를 위해 매년 엄격한 대학평가를 시행한다. 또 평가결과를 공개하여 대학당국에 학문수준을 지키는 책무성을 강조하고 있다.

제도적으로는 영국 고등교육 기금위원회(HEFCE)에서 대학 평가 등을 통해 학사업무를 감사한다. 또한 예술·인문학연구위원회, 경제·사회연구위원회 등 각 학문분야별로 정부가 지원하는 전문학술기관이 분야별로 예산을 지원한다.

대학별 평가내역은 교육과정의 내용 및 구성, 교수방식과 학습평가, 학생의 학업능력과 학업성취도, 학생 복지 및 지도, 학습자료 구비수준, 교육수준의 질적 강화 및 유지 노력수준 등이다.

UCL은 2008-2009학년도 HEFCE 대학평가에서 연구비 수주 1위를 기록했다. 8136만 파운드를 기록해 케임브리지(7426만 파운드)와 옥스퍼드(5475만 파운드)를 제쳤다.

저소득층에 균등한 교육기회 보장도 영국 정부가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2000년 중하위층 출신 로라 스펜서양이 옥스퍼드대 입학을 거절당한 뒤 미국 하버드대 장학생으로 선발된 적이 있다. 이 사건은 명문대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 계기가 된다.

HEFCE는 2001년 명문가 자녀 중심인 사립고 출신이 명문대를 독식하는 관행을 깨기 위해 ‘참여 확대를 위한 프리미엄’ 조치를 발표했다. 모든 대학에 대해 공립학교 출신학생의 입학비율을 공시토록 하고, 저소득층 거주지 출신 학생을 선발할 경우 그 수에 따라 추가로 재정지원을 해주도록 한 것.

최성주 교수는 이런 시스템은 교육과 연구의 몫이 대학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최 교수는 “ 교육은 균등한 기회 보장과 공공성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영국인들은 생각한다.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와 함께 지식인으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요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어떠한가. 몇 달 전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이 미국 다음으로 높다는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 국공립 대학의 연평균 등록금은 4천717달러, 사립대학은 8천519달러로 미국(국공립 5천666달러, 사립 2만517달러)에 이어 모두 2위를 차지했다. 이 말은 대학의 문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기관 405개 중 353개(87.2%)가 사립학교다. OECD 국가 중 대학 등록금은 2위다. 한국대학가의 현실이다. 민간에게만 맡겨진 고등교육의 앞날에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자유롭지만 스스로 절제하는 학풍

UCL은 자유롭지만 스스로 절제하는 학풍을 가졌다. 면담수업 역시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누리면서도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 절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UCL 학생회관에 있는 Bar(선술집)이다. 이곳은 간단한 식사와 함께 알콜 도수가 낮은 맥주를 판매한다. 우리나라의 생활협동조합과 비슷한 곳에서 운영하는데 수익금으로 장학금도 지급한다고 한다. 학생들을 배려해 맥주가격도 시중가격의 반 정도다. 접근성이 좋은 학내에 그것도 대대적으로 할인된 가격이라면, 이로 인한 문제도 많았을 터. 그렇지만 이곳 학생들은 누군가 술에 취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자유로운 캠퍼스 환경을 제공하지만 학생 스스로의 절제를 요구하는 UCL만의 철학이 담겨있는 사례다.

이런 자유로운 학풍은 영국의 유명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음악을 낳았다. 콜드플레이의 멤버 크리스 마틴과 조니 버클랜드는 1996년 UCL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만난다. 둘의 음악적인 호기심은 Pectoralz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만들었고, 대학시절 동안 밴드활동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운다. 결국 콜드 플레이는 윌 챔피언, 가이 베리맨 이라는 UCL 출신의 두 멤버를 영입하고 1998년 결성된다. 그들은 2008년 680만 장의 판매고로 전 세계 앨범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콜드플레이는 UCL의 학생 활동이 낳은 최고의 스타라고 볼 수 있다.

2008년 QS-Times 세계대학평가 순위 7위, 노벨평화상 역대 수상 동문 20명, 간디와 그레이엄 벨,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모교. UCL 앞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그러나 면담수업이라는 튼튼한 주춧돌이 없었다면 이런 화려한 금자탑을 쌓아 올릴 수 있었을까? UCL의 면담수업은 토론과 학습이라는 대학의 기본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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