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잠을 깨 듯 뒤엉키고 상큼함을 잃어버린 듯 어설펐던 大學(대학) 1년의 봄. 마냥 찌들고 멍들어 버린 사람처럼 엉겁결에 이어지던, 리듬을 갖지 못했던 生活(생활)에서 나는 大學(대학)의 첫 학기를 맞았다.
  바람에 잠시 스치던 맺어지던 인연들. 어떤 그룹들이 형성되어 가면서 새로운 면을 심어주던 학우들.
  어떤 有機的(유기적)인 포석에 자꾸만 왜소해지고 明暗(명암)에 약간은 둔화된 듯도 했던 사고의 빈곤과 채워지지 않는 몸에 엉키고 그렇듯 어지럽게 일그러졌던 저능아의 육신에 격한 요동이 일고 있었다. 욕망과 현실의 무능에 쩔쩔매고 대학이란 테두리의 아이러니에 적응되지 않는 안타까움을 별개의 연이라 명명지우려 애쓰던 時間(시간)들.
  世態(세태)를 논하고 人生(인생)을 말하고 삶의 가치를 얻어야 한다고 절규하듯 외쳐대던 작은 몸둥이는 무교동 거리의 인파에 휩싸여 주막을 찾고 몇 권의 책을 옆구리에 끼고 밤거리를 허위적 거리기도 했다.
  어쩌다 보면 그냥 무심결에 지나쳐 갈지도 모르는 4年(년)의 여로에 잠시 멈짓되고 닿지 않는 線(선)에 손을 휘저어 보기도 하는 염문을 어쩜 特權(특권)이라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흙내음이 좋아 農大(농대)를 택했고 그 豊饒(풍요)속에 묻혀 이제 3年(년)째를 맞는다.
  내 大學 生活(대학 생활)도 이제 조금은 成熟(성숙)해져 있지 않나 싶다.
  肥沃(비옥)한 土壤(토양)에서 有機物(유기물)이 용탈되듯 내게 잠재되어 있던 삶의 原素(원소)들은 날 유혹하는 천연덕스런 불빛과 慾望(욕망)에 酸化(산화)되어 大氣(대기)속으로 사라지고 어떤 자만심과 허영만이 꿈틀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나의 大學生活(대학생활)에는 작은 인연이 있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결에 살며시 외투깃을 세우던 어느 季節(계절)의 문턱에서 난 커다란 祝福(축복)을 감지했다.
  우리 주위에 접해있는 많은 인연들 微細(미세)한 無生物(무생물)에서 人間(인간)들에 이르기까지의 갖가지 인연들을 우린 때로 소홀히 처리해 버리고 있는 듯싶다.
  만남을 어떤 감각조차도 없이 흘려보내고 인연의 가치를 인정할 줄 모르는 매몰 속에 社會(사회)의 기회주의 속에 하나의 部品(부품)으로 전락해가고 있지는 않은지 現代 社會(현대 사회)를 살면서 젊음을 잃어 가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나는 이런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조금은 病弱(병약)해지고 흐트러지는 젊음들이 있는 것 같다.
  어떤 無言(무언)의 억압, 社會(사회)에 부여되어 있는 빈곤한 터전에의 불안감, 한껏 달아있는 젊음을 발산하기에 너무 부족하다는 인식 이런 것들이 젊음들을 움추려들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들이 재고 수놓아야할 설계도는 얼마든지 펼쳐있다.
  미래에 대한 공연한 허황보다는 내게 부여된 현실에의 적응이 더 절실한 게 아닌가 한다.
  삶이란 인연들의 연속이 아닐런지. 부모와의 연, 동료들과의 연, 자연들과의 만남이 우리가 엮어가는 生活(생활)인 것이다.
  마당의 동나무에 어느듯 자그만 잎사귀가 돗았다.
  메마른 가지를 이슬비가 촉촉이 적시듯 우리들의 마음도 이렇듯 젖어 드는 풍요를 누릴 수는 없는 건지.
  늦은 밤 두려움이 날 감쌀 때 어느 자그만 애의 글을 읽으며 인연에의 인연에 난 生(생)의 의미를 감득해간다. 요즘의 大學(대학)은 우리 선배님들이 누렸던 아치와 낭만이 조금은 가시고 있는 듯 싶다.
  어떤 틀 속에 조여들고 있는 듯한 안타까움에 서글픔이 있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의 
章(장)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게 아닌가한다.
  이것도 우리에게 닿은 인연일 테니까, 봄이면 난 大學1年(대학1년)의 어설프고 떨떠름했던 기억을 되뇌인다.
  후회라기보다는 이런 思考(사고)속에서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보상일런지도 모른다.
  가끔은 둘레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꾸도록 하자.
  내게 닿아 있는 綠(녹)들에 아기자기한 情(정)을 나누며 멀어져가는 정서에의 복귀를 외쳐보자.
  비가 내린다.
  솜털처럼 가지런이 일어가는 저 자연 속에 날 맡기고 어디고 한없이 걷고 싶다.
  우리 先祖(선조)들의 풍류와 따뜻했던 품을 더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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