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里氏(김동리씨)와의 우연한 만남이 作家(작가)로

◇앞으로 연재된 ‘작가면담기’는 국문과생들이 ‘현존작가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 글임. <편집자주>

◇면담자 金眞英(김진영)․朴贊斗(박찬두)

  전화번호와 정릉근방에 산다는 것만 알고 그날 학교에서 방문연락을 했더니 와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떠날 때도 내리던 비는 강도를 더하여 내리고 있었다. 집은 금방 찾을 수가 있었다. 아담한 집, 정원을 들어서자 정원이랄 것은 못되지만 몇그루 서있는 정원수들, 담장안으로 들어선 뒷산때문인지 수석들이 몇 개 정원을 메우고 있었다. 안내되어 문안으로 들어서자 브라운색의 원피스를 헐렁하게 차려입은,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않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을 한, 그러나 우리를 맞는 반가움의 엷은 미소를 띄우며 반갑게 맞는 사람, 우리는 그가 곧 박경리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현대문학의 <計算(계산)> <黑黑白白(흑흑백백)>으로 등단한 이래 30여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그중에 反抗意識(반항의식)과 告發意識(고발의식)이 모티브가 된 <不信時代(불신시대)>와 <暗黑時代(암흑시대)>가 우리에게 잘 알려졌고, 장편으론 歷史意識(역사의식)의 場(장)으로서 가족이라는 최소단위로 한말부터 시작되는 민족의 수난과 더불어 제도의 붕괴, 여성의 사회적지위와 기존관념의 충돌들을 테마로 한 <金藥局(김약국)의 딸들>, 한국전쟁의 傷痕(상흔)을 문학유산으로 남긴 <市場(시장)과 戰場(전장)>등 많은 작품을 발표한 名作(명작)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때도 비가 몹시 내려 서로 얘기하는 것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처음 글을 쓰시게된 동기 (작가가 된 동기)라도 있으셨는지요?
▲文學(문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진 않았어요. 우연찮게 金東里(김동리)씨를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어 소설을 쓰게 됐어요.
라며 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차분하게 얘길 했다. ‘罪(죄)와 罰(벌)’을 읽기 위해서 여학교시절에 학교까지 빠진 일이며 그가 좋아 했던 작가 도스또예프스키, 윌리암․포오크너, 울프등을 읽던 시절을 회고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선 선전적인 재질과 후천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후천적인 노력은 어떻게 하여야 하며 인접분야에서 특히 작가가 되기위하여 반드시 공부해야할 분야는 어떠한 것인지요?
▲작가가 되기 위해선 선천적인 재질도 중요하겠지만 후천적인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선천적인 재질이라면 대상을 받아들이는 감성과 판단하는 작가적 안목(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작가적 재질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겠죠. 사회과학이나 역사, 종교, 철학, 음악, 미술등 인접분야의 기초적인 공부는 해둬야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20대 전후에 작가적인 역량의 기틀이 잡힌다고 봐요. 그 이후엔 기둥에 벽돌을 쌓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얼마전에 문학잡지에선 선생님께서는 문학은 고통을 주는 문학이 진정한 문학이다라고 하셨는데 거기에 대해서 좀 더 말씀 좀 해주시죠.
▲文學(문학)은 苦痛(고통)을 주는 文學(문학)이 진정한 文學(문학)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悲壯美(비장미)로 昇華(승화)되어 人間靈魂(인간영혼)의 구원에까지 이르러야 文學(문학)의 使命(사명)을 완주했다고 할수 있어요. 요즈음 오락과 흥미위주의 전락된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것은 文學(문학)을 物質化(물질화)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文學世界(문학세계)는 투철한 歷史意識(역사의식)으로 대변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土地(토지)>는 1, 2部(부)가 10권으로 출판되었고 3部(부)가 현재 ‘主婦生活(주부생활)’에 연재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쓰러져가는 윤참판댁을 등장시켜 한말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은 동학난 갑오경장, 일제식민시대까지 역사적 사건과 배경을 통해 수 많은 인물을 등장시켜 많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제도와 윤리의 붕괴와 새로운 가치창조, 만주에서의 의병활동, 만주의 국토 인식문제등 여러문제 속에서 우리 선조의 생활과 따스한 인정과 각양 각생의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었고 그 문체면에 있어서 간결하면서도 방언과 사투리의 적절하고 유창한 구사를 통하여 敍情的(서정적) 散文詩(산문시)이면서 民族(민족)의 自畵像(자화상)이자 受難史(수난사)인 大敍事詩(대서사시)로서 大河小說(대하소설)의 면모를 보여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大作(대작)을 쓰시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으시다면 어떤 점이 있으신지요.
▲우선 몸이 건강칠 못해서 건강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제 3部(부)에서는 思想(사상)과 理念(이념)의 문제까지 다룰려고 합니다. 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신중을 기하고 있읍니다만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도 힘들고 수집했으나 실지로 소설 속에서 소화하는 과정도 또한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소설을 읽다보니까 경상도는 물론이거니와 평안도 함경도사투리까지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고향이 경상도니까 경상도는 그리 어렵지 않으나 함경도는 어려워 안수길씨의 ‘北間島(북간도)’를 몇 번 읽고 쓰다가 막히면 다시 읽고 합니다.

-선생님께선 글을 쓰시는데 소재의 선택과 체험에 관해서 말씀좀 해주세요.
▲모든 것이 다 소재가 될수 있습니다. 소재가 없어서 글을 못쓴다는 사람은 이해가 가질 않아요. 그것은 돌 중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으려니까 그래요. 작가는 돌을 가지고 다이아몬드를 만들어야합니다. 친구가 소재를 준다고 하기에, 난 내 얘기도 다 못 쓰고 죽을텐데 남의 얘기 쓸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어요. 체험도 작가적인 눈과 감성이 있으면 남다른 체험이라든가 좋은 체험은 작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글 쓰실 때 버릇같은 거라도 가지고 계시면…(웃음)
▲글쓰는 일은 저에겐 2중의 고통을 줍니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정원에 나가 땅을 판다든가, 축대를 쌓는다든가 잔디 녹을 벗긴다든가 조각을 한다든가해서 땀을 흘리고 나서야 다시 글이 써집니다. 그래서 2중의 고통을 겪어요. 또 하나 버릇이 있다면 잠잘 때 머리맡에 볶은 콩과 오징어등을 놓고 자면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하나도 없어요. 먹은 줄도 모르게 다 없어진 겁니다(웃음). 육체는 참 신기합니다.

  거의 두시간 동안 여러 가지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우리 인간의 위대성을 생각했다. 이 조그만 방안에서 위대한 문학이 더군다나 연약한 여자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리라.
  그때까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집을 나섰다. <强者(강자)란 孤獨(고독)한 사람을 말한다>라는 쉴러의 말과, <이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란 孤獨(고독)한 사람을 말한다>라는 입센의 말과, <偉人(위인)이란 독수리와 같은 것이고, 그 집을 孤獨(고독)에 짓는 사람이다>라는 세익스피어의 말과 <아름다움과 집념은 孤獨(고독)이다>라는 그의 말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10여년동안 외부와의 단절 속에서 孤獨(고독)과 苦痛(고통)을 이기며 文學(문학)에 全生(전생)을 던지는 그의 모습과 목소리를 다시 챙겨 넣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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