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계층 존재양식의 표현場(장)

  오늘도 날씨는 무덥고,
  도처엔 파리떼만 웅성거리는데
  세상은 너무 배부르고,
  채워진 술잔에는 파도 한번
  일렁이지 않는다.

  울적한 기분을 달래볼까해서 기어올라가 본 연극이 결과적으로 내 기분에 의문의 물음표 더하는 꼴이되어 여기 연극평을 빙자한 나의 넋두리를 늘어 놓을까 한다.
  우리 시대상들이 빚어낸 인간 상실성의 큰 조류는 이제 그 힘을 최고도에 도달케 하고 있다. 고뇌속의 희열.
  연극 ‘품바’는 일제 압박하의 식민지시대를 시작으로 썩은 내나는 자유당말까지 전국을 떠돌며 방랑하다 죽어 간 한 각설이패, 대장의 일대기를 모노드라마로 조명시켜 각설이 타령이 안고 있는 한과 해학을 밀도 짙게 조명한 전국순회 5년동안 천회를 돌파한 사실이 말해주듯 우리네 심금에 리듬을 부여하는 작품이다.
  작품속에서 ‘천사의 집’을 배경으로 ‘천장근’이라는 역사적이고 전형적인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며 암울한 사회상과 물신적 풍조에 찌든 폭력의 횡포성을 이른바 소외된 계층의 응어리진 한과 비애를 통해 암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존재양식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배우의 비범하고도 건강한 시선으로 나타내려고 애쓰고 있음을 알 수있다.
  생각해보자. 가진 것 빈 깡통뿐이며 언제나 꼬마애들에게까지 조롱의 대상인 각설이의 삶의 한계상황은 철학자 야스퍼스의 상투적 구절을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자명하지 않는가.
  해학과 풍자가 쏟아내는 흥겨움은 그냥 웃음으로 끝내기는 아쉽고 서글픈 내면의 울음바다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퍼런 칼날인 양 다가와 섬뜩하게 내리치는 시선이 그곳에는 있으며 날카로운 비판의 침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억압받는자와 억압하는자간의 현실시대에서의 모순속에는 누구나 조금만 깊은 관찰력을 동원한다면 해학이 스며있음을 엿볼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연극의 예술성이나 가치도 그 연극이 단순한 지적유희나 일회적인 자위에 그치지 않는데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다같이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족한 것이다.

  이놈들아!
  사람이란 누구에게나 서로 얻어 묵고 사는 법이여! 거렁뱅이 있은께 너희가 우쭐대고 모자라는자 있은께 너희들이 웃을 여유라도 있어야! (극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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