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群像(군상)

눈이 올 것 같았다. 하늘은 어느새 잔뜩 찌푸려 있었다. 무리지어 몰려온 거무끄럼한 구름에 앞산이 점점 먹혀들어갔다. 골짜기를 타고 엷은 구름이 안개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따금씩 고개를 내밀곤 하던 산마루도 완전히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겨버렸다.
  나는 멀리 던져두었던 눈길을 거둬들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 나절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경수가 거니채기 전에 어디서든 쌀을 꾸어와야 했다. 바닥을 거의다 드러낸 쌀독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신발을 끄는 소리에 툇마루밑에서 옹송거리고 졸고 있던 누렁이가 기어나오더니 개개 풀어진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겉보기에도 늙수그러한 도사견인 누렁이는 동생 경수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깨깨 여위어 꺼부러진 몸과 거슴츠레한 눈에는 옛날, 제왕으로서의 위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곤 걸레쪽처럼 찢어져 너덜거리는 귀와 온몸을 거머리처럼 기어다니는 흉터뿐이었다. 누렁이는 힘없이 다가와서 나의 다리에 머리를 비벼대었다. 그래, 지금까지 우리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건 너 하나뿐이구나. 나는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리광을 부리듯 누렁이는 꼬리를 흔들며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대문을 나서자 골목길을 달려온 바람이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앞서 걸어가는 누렁이의 하얀 입김이 뿔뿔이 흩어졌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에서 비닐 조각이 너저분하게 발겨진채 바람에 거푼거리고 있었다. 길 양편으로 줄지어 늘어선 포플라나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카로운 신음소리를 밭으며 여윈 몸을 비틀어대었다. 그루터기만 남은 논바닥은 얼음이 꽁꽁 얼어 있었다. 논두렁이 드문드문 널브러진 농약병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 논바닥 위로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세차게 도리질을 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경숙이 왔나? 웬일이고?’
  이장집 앞 가게로 주뼛주뼛 돌아서자 방문이 열리며 주인이 자라목을 내밀었다. 요즘 읍내에서 술집 마담하고 딴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이 있는 아저씨였다. 나는 가게에 피워놓은 난로불을 쬐는 척하며 속으로 망설였다. 지난번에 외상으로 라면 한 박스를 살 때 내 손등에 착 달라붙던 그 끈적끈적한 손바닥이 생각났다. 주닌의 눈길이 순식간에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뭐 사러 왔나? 뭐주꼬?’
  ‘그게 아니라, 저, 아저씨, 나중에 갚을……’
  간신히 말머리를 꺼내자 마자 방안에서 왁자그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노? 박서방 니 차롄데 안칠게가? 고가 시돕이가 퍼뜩 안 치고 뭐 하노?
  ‘고마 기다리거라. 손님 안 왔나? 쪼매 기다린다고 화토짱이 지발로 어딜 가기나 해쌌나, 와 그리 보채노?’
  방안을 향해서 냅다 고함을 지르고 고개를 돌린 주인의 얼굴은 어느새 능글능글 웃는 표정이었다.
  ‘그래, 뭔 일이고? 계속 캐봐라’
  재빨리 표정을 바꾼 주인의 얼굴을 본 순간, 먼저와는 달리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혹시 경수 여기 안 왔다 갔어요?’
  주인의 얼굴에 가벼운 실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늘은 한 번도 안 왔는데, 와?’
  ‘그냥요’
  ‘엄마가 없으이 고생이많제? 아이까이 엄마한테서 연락 없나? 참, 요새 양식은 안 떨어지고? 내가 좀 도와주까?’
  ‘아뇨, 괜찮아요…… 충분히 있어요.’
  ‘쯧쯧 우야자꼬 애들만 놔두고…… 죄 없는 너거들만 고생이다’
  혀를 끌끌 차는 주인의 눈길이 다시 한번 내 몸 위를 오르내렸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 소름이 돋고 느글한 거위침이 넘어왔다.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들릴께요’
  내뱉듯 말하고 몸을 돌렸다. 가게문을 닫고 나오는데 왁시글 떠드는 소리가 뒷덜미를 잡아챘다. 화토 치던 사람이 뭔 볼일이 그리 기노? 아따 길만하이길제 고것 참 사람 죽이네. 하이튼 요새 기집아들은 어떠큼 빨리 크는지 저거 어마시를 닮아가 중삼짜리치고는 가슴하고 엉덩이가 얼매나…… 고마 발키라 마그카다 복상사하것다. 하하하
  아버지! 나는 이를 앙다물었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아버지가 있었다면 억지로 눈물을 참지 않고, 아버지의 목에 매달려 엉엉 소리내어 울 수도 있었으리라. 나는 언듯 떠오르는 아버지 생각에 두 팔로 가슴을 감싸안았다. 나의 온몸에 바람이 세차게 부딪쳐왔다. 하늘은 땅에 닿을 듯 낮게 내려와 있었다. 금방이라도 하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나는 멀리 산을 향해 눈길을 던졌다. 겨울잠을 자는 산 언제 보아도 당당한 위엄을 지닌 산은 아버지의 가슴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지금은 백발의 머리로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지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계곡물은 다시 흐를 것이었다. 봄이 오면.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장승에 이르자 아버지는 그 앞의 돌무지를 향해 돌멩이 하나를 집어 던졌다. 내가 경수만큼이나 어렸을 때였다.
  ‘아버지, 거기가 돌은 왜 던져요?’ 장승을 바라보며 누렁이에게 뭐라고 귀엣말로 주문같은 것을 중얼거리던 아버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지거든.’
  ‘무슨 소원을 빌었는데요?’
  ‘누렁이가 꼭 이기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지.’
  ‘소원을 빌면 다 이루어져요?’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묻는 나에게 아버지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는 장승에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지. 글쎄, 하지만 여태까지 빌었을 그 많은 소원들이 다 이루어지기야 했겠니? 중요한 건, 소원이 있으면 그걸 반드시 이루려는 마음과 노력하는 것이겠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경숙이도 아빠만큼 크면 알게 될거야’
  ‘아버지만큼요? 어휴, 언제 그만큼 커요’
  발돋움을 하는 나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웃는 아버지의 어께가 유난히 높아 보였다. 나에게 아버지는 하나의 거대한 산이었다. 나도 그런 아버지만큼 크고 싶었다.
  아버지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러고 떠난 며칠 뒤 아버지는 송아지 한 마리를 이끌고 돌아왔다. 이글이글 타오르는듯한 눈빛의 누렁이에게는 또 몇 개의 상처가 더 늘어나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장승에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아버지가 그 빚더미를 지고 동분서주할때도, 아버지를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을때도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미신일 뿐이었다.
  장승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발머리를 어디로 향할지 잠시 망설였다.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동네 아줌마들에게 손을 내밀기가 죄송스러웠다. 처음에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어깨를 다독거려 주던 그들조차 번번이 손을 내미는 나에게 억지웃음을 지으며 어색한 거절을 하도록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뒷전에 숨어서 입방아나 찧어댈 가납사니들에게 나의 구차한 모습을 보이기도 싫었다. 할 일없이 외삼촌댁에 다시 들르는 길밖에 없었다. 벌써부터 나의 마음을 가늠하고 있었다는 듯 누렁이는 저만치 앞서서 강마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산을 끼고 돌아서자 건너 저편강이 눈앞을 가로 막았다. 강건너편 둔덕에는 버드나무가 귀살스럽게 머리칼을 드리우고 있고 썰렁한 포도밭에는 한쪽으로 거우듬한 원두막이 동그마니 서 있었다.
  오래 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나루터는 거무튀튀하게 곰삭은 나무가 바람이 볼때마다 삐걱거리고 있었다. 강위에는 동네아이들 몇몇이서 썰매를 지치고 있었다.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얼음판 위를 위태롭게 달려왔다. 경수였다.
  ‘누나 어디가?’
  ‘외삼촌 댁에’
  ‘뭐하러 가는데?’
  숨을 헉헉거리는 경수의 입술에서 더운 입김이 피어났다.
  ‘전번에 외삼촌댁에서 다시 집으로 옮겨온 다음에는 한 번도 안 찾아뵈었잖아. 그래서 인사 드리러, 영철오빠가 어떻게 되었나도 궁금하고’
  ‘형이 풀려났어야 할텐데…… 나도 따라가면 안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수는 금방 풀죽은 모습을 했다. 그러나 가리사니 없는 동생이 보는 앞에서 외숙모에게 아쉬운 부탁을 할 수는 없었다.
  ‘추운데 감기 들라. 늦기전에 어서 집에 돌아가. 너, 아직 방학 숙제 덜했잖아? 외삼촌댁에 다녀와서 누나가 도와줄게. 참, 그리고 아궁이에 솥가리랑 삭정이 좀 넣어둬, 알았지?’
  ‘응, 대신에 숙제 꼭 도와줘야 돼. 빨리 갔다와’
  강바닥으로 뛰어내려가는 동생을 보자, 몇 번씩 뒤돌아보며 눈가를 훔치던 엄마가 생각났다. 돌부지에 돌을 던져넣으며, 돈벌어서 꼭 돌아오겠다던 엄마, 몸빼 자락을 검질기게 물고 늘어져 보내주지 않는 누렁이를 끌어안고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엄마가 사준 과자 먹기에 정신이 없던 경수도 덩달아 울어버리고 말았었지. 뛰어가는 경수의 뒷모습이 갑자기 흐릿해지며 눈앞이 가마득해졌다.
  외삼촌댁의 까만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도 먼저 누렁이가 외삼촌댁 마당으로 들어섰다. 나를 맞는 외숙모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동안 몰라보게 여윈 것 같았다.
  ‘요새 지내긴 불편한 게 없나? 경수는 어데 아픈데 없고? 아무래도 여기 있을때보단 불편하제?’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어요’
  ‘참, 내 정신 좀 봐라, 하마 언제부터 갖다준다는기…. 여있다. 올캐 한테서 편지가 왔더라’
  외숙모는 장롱 빼닫이를 뒤지더니 편지를 꺼내 주었다. ‘서울시 중구 장충동…’ 동생 경수의 글씨보다도 볼품없는, 그러나 한자 한자 정성들여 쓴 엄마의 글씨가 눈에 아프게 와 박혔다. 나는 편지를 조심스레 주머니속에 갈무리해 넣었다.
  ‘지금 읽어보지 와? 서울 어디선가 파찰부로 일한다 카던데’
  ‘나중에 읽어보죠 뭐, 그런데 외삼촌은 어디 가셨나요?’
  나는 말머리를 돌렸다.
  ‘영철이 면회 안 갔나.’
  ‘오빠는 어떻게......?’
  영철오빠의 이야기에 외숙모는 담배를 꺼내물었다.
  ‘말도 마라, 가 때문에 내 복창이 다 내려앉았다. 합의를 할려거든 이백만원을 내놓으라 카는데, 이런 시골 구석에, 그것도 한 겨울에 무슨 재간으로 이백만원씩 구하노? 벌써 농협에 빚낸기 얼만데, 그러이 내 속만 팍팍 썩어들어가제.’
  외숙모는 담배연기를 한번길게 내뿜더니 옷고름으로 눈초리를 훔쳤다.
  ‘영철이는 이백만원씩 주고 합의하느니 차라리 몸으로 때아뿐다 카지만 옆에서 보기야 어디 그렇나? 돈이사 우야든 사람부터 건져야제 어이그, 미친놈의 자식, 소팔러 갔으믄 소값이사 적게주든 많이주든 지아부지 하는데로 보고 있다가 그냥 올일이제, 만다고 자기눈이 뒤지피가 도끼를 꺼둘러가소 죽이고 사람 다치노? 너거 아부지나 영철이나 모지리 소가 원수라, 그 놈의 소가...’
  외사촌 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언니는 서울서 공장에 다니다가 몇 달전 텔레비전에서도 크게 났던 일 때문에 공장을 그만두고 집에 내려와 쉬고 있었다. 그 일을 두고 외숙모는 동생 공부 잘 시키라고 같이 보냈더니 지가 먼저 미쳐가지고 날 뛰다가 그 꼴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언니는 방문을 담고 외숙모옆에 앉아서 아무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뼈 빠지게 농사 지어가 서울 보내줬으믄 공부나 할 일이제. 지가 무슨 대통령이나 된다꼬 세상이 바뀌야 된다 캐샀디, 사람 패고 감옥소 가믄 세상이 바뀌나?’
  ‘….’
  ‘너거 외삼촌도 그렇제, 고마 영철이 가 휴학하고 군대 간다 칼 때 가마이 있으만 될낀데, 우야든동 등록금은 마련해가 공부는 마쳐준다. 카미소 끌고 나가디, 결국 이 꼬라지 아이가. 아, 요새 소값만 못한거는 다 아는 일인데 그걸 눈 뜨고는 못 본다꼬 눈이 뒤지피가....’
  그 때였다. 마당에서 닭들이 죽어라고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틀림없이 누렁이의 짓거리일 거였다. 숙모가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누렁이가 마당을 휘저으며 닭들을 쫒아다니고 있었다. 기겁을 한 닭들이 혼줄이 빠져 홰를치며 달아나고 있었다.
  ‘저런 병신같은 개새끼 저러다 닭 다 잡아묵겠다. 전번에도 저래가 며칠동안 알도 못 까게 하디…’
  언니가 나서서 닭들을 닭장안에 가두고 누렁이를 이끌어 왔다. 그걸 지켜보며 외숙모가 혀를 끌글 찼다.
  ‘쯧쯧 옛날에는 쌈이라도 잘해가 씨값만 해도 쌀 한 가마는 벌더니만 늙어가지고 비루먹은 꼴이라곤 요즘같이 소값이 개값만 못한 때에 개 값도 못하는 못난 개새끼같으니라고’
  괜히 서먹서먹한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아무래도 쌀이 떨어졌다는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외숙모 저 이만 가볼께요’
  ‘와? 더 놀다가 삶은 감자라도 묵고 가지’
  ‘경수가 혼자 기다리잖아요. 이제 가봐야죠. 추운데 멀리 나오지 마세요’
  언니가 골목길까지 따라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땅만 보고 걷는 나에게 언니가 물어왔다.
  ‘경숙아, 집에 쌀이 떨어졌지?’
  응, 아니, 서로 엇갈린 두가지 대답이 동시에 입안에서 맴돌았다. 아무 말 않고 발끝만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언니가 무엇인가를 건네주었다. 꼬깃꼬깃했다. 돈일 거였다. 갑자기 땅바닥이 아슴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언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수 없었다. 달아나듯 골목길을 달려왔다.
  눈이 올 것 같았다.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어왔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마을 어귀에서 누렁이를 먼저 돌려보내고 나는 아버지를 찾아 가팔막을 오르기시작했다.
  산골짝을 달려내려오던 냇물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나무들은 한결같이 발가벗은채 추위에 몸을 떨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 마다 나뭇잎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산을 오를수록 꽂꽂하게 굳었던 몸이 조금씩 풀려왔다.
  ‘어먹니는 아직 안오셨냐?’
  오늘도 그 사람은 집안을 기웃거렸다. 그는 읍내에 사는 빚쟁이였다. 아버지 말고도 그 사람에게 돈을 빌어쓰고 망한 사람이 읍내에도 수두룩하다고들 했다. 소를 팔때도 각통질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사람이 뭐라고 묻든 나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사람도 내 기분을 짐작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는지 나의대꾸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툇마루에 걸터앉아 두꺼운 외투의 모자를 뒤로 제끼더니 담배에 불을 당겼다.
  ‘어이, 날씨 한번 오지게 춥다’
  그 사람이 처음 우리집을 찾은 것은 농협직원이 다녀간 뒤 며칠 있지 않아서였다. 나는 그사람과 농협직원을 동시에 떠올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그런지 설명을 할 수는 없는데 그사람과 농협직원의 모습은 늘 한묶음으로 붙어다니곤 했다.
  ‘이렇게 날씨가 차서야 어디 사람이 살겠나?’
  안방에서는 아버지와 농협직원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안방의 이야기에 귀를 곧추세웠다.
  임선생님 사정이야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저야 위에서 시키는대로 말만 전하는 것뿐이지요.
  아, 그때야 선거철이니까 그랬죠. 하여튼 원금상환이 어려우면 이자라도 갚아야 할텐데  이자 밀린 것만 벌써 몇 달쨉니까? 다른 집에야 그래도 몇 백이니까 괜찮다 치더라고 임선생님 경우야 천 단위가 넘어가는데……, 설마하니 임선생님같은 알부자가 그 정도쯤이야……. 계속해서 뭐라고 직원을 설득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방문을 타고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결코 사정하지는 않았다. 농협이 앞장서서 축산을 권장하고 자금을 대여해줄 때와 거두어갈 때를 비교하며 조리있게 따지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몇 번 말해야 알아들으십니까? 그건 제 소관이 아니라니까요.
  하여튼 이번 기간을 넘기면 법적조치를 취한다니까 신경 좀 써주십시오. 우리도 실적을 못 올리면 추궁봤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랍니다. 아버지의 말씀에서 직원은 쫓기듯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날, 직접 농협에까지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온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모든 일이 벌써 아버지의 손을 떠나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어머니는 언제쯤 한 번 오신다더냐? 벌써 약속한 날짜가 몇 달이니 매정스럽게 길바닥으로 내쫓을 수도 없고, 참 이렇게 딱한 일이……’
  빚쟁이는 디딤돌 위에다 담뱃재를 톡톡 털어내며 말했다.
  농협직원이 다녀간 며칠 뒤, 빚쟁이는 우사(牛舍)의 소를 모두 차로 싣고 가버렸다. 이미 포도밭과 농장이 농협빚으로 날아가 버린 뒤였다.
  빚쟁이는 대문에서 아버지의 문패를 떼어내더니 차압딱지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버지의 발밑으로 던졌다. 일차로 소를 모두 가져가요. 약속날짜까지 꼭 돈을 마련하시오. 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 등기이전은 그 때까지 미뤄주겠소. 하지만 약속날짜를 꼭 지켜야 해요. 집문서가 내 수중에 있다는 걸 명심하시오. 되찾고 싶으면 돈을 갚아요, 돈을. 그런 그에게 누렁이가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었다가 따라온 청년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그 사람이 소를 싣고 돌아갈 때 까지 아버지는 아무말도 없었다. 누렁이가 아버지의 발밑까지 기어가 머리를 비비대었으나 아버지는 아무런 몸짓도 보이지 않았다. 마당에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운 아버지의 어께가 왠지 작아보였다. 아버지는 주먹을 움켜쥐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희들이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땅을 떠나지 않아. 그 순간, 아버지의 그림자가 엄청나게 커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이만 가볼란다. 네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전해라. 나도 인정이 있는 사람이라, 이번 겨울은 이 집에서 나도 좋지만 올봄에는 꼭 집을 비워줘야 한다더라고’
  그건 틀림없이 내가 들으라고 하는 소리일 거였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운 그는 마루에 붙였던 엉덩이를 떼었다. 무거운 몸을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자 아버지의 그 높다란 어깨가 유난히 그리워졌다.
  아버지는 도래솔도 둘러 서 있지 않은 고즈넉한 산비탈에 누워 있었다. ‘平潭林氏根壽公之墓(평담임씨근수공지묘)’라고 쓴, 그 흔한 묘비도 없고 떼도 입히지 않은 흙더미속에서 아버지는 잠들고 있었다. 겨울잠. 아버지는 겨울잠을 자고 있는 거였다. 봄이 오면 언제고 다시 부스스 일어나 겨울내 언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할 거였다.
  ‘아버지, 엄마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나는 주머니 속에 갈무리해두었던 편지를 꺼내서 읽어내려갔다. 경숙이 경수에게 이 추운날씨에… 외삼촌 외숙모 말씀 잘듣고… 서울서 자리 잡히면 너희들 데리러… 엄마가 보고 싶지? 엄마도 너희들이 보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자국에 글씨가 얼룩져 있지 않더라도 나는 더 이상 읽어내려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편지를 접어넣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눈안에 가득 일렁거리는 하늘이 금새라도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씩 눈을 깜박거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까 가슴이 가라앉았다.
  나는 아버지 무덤 앞에 옹송거리고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마을앞 강은 은빛 허리를 꺽어서 굽이 돌고, 마을에서는 드문드문 실안개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겉보기에는 평화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가 버려져 있고, 저녁이 와도 불이 켜지지 않을 빈 집들이 마을 곳곳에 숨어 있었다. 서서히 땅거미가 내리고 산비탈이나 그늘진 곳에는 어둠이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다. 강 건너 저 멀리 읍내 쪽에서는 벌써부터 하나 둘 네온싸인 불빛이 피어올랐다. 산마루에서 달려 내려온 바람이 머리칼을 헝클어 놓고 달아났다. 눈밭이 성깃성깃 나부끼고 있었다. 나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라면 두 개를 샀다. 주인 아줌마의 눈자위가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초저녁부터 읍내로 술을 마시러 나가는 아저씨를 말리다가 또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한 송이 두송이 나부끼던 눈발이,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함박눈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어깨와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내는데 경수가 배가 고프다고 앙살을 부렸다. 독바닥까지 긁어 낸 쌀로 저녁 준비를 했다.
  ‘왜 밥 다 안 먹니?’
  경수의 밥공기에는 밥이 반남짓 남아 있었다.
  ‘왜? 건건이뿐이라서 밥맛이 없니?’
  경수는 고개를 잘레잘레 흔들었다.
  ‘누렁이가 아직 저녁을 안먹었잖아.’
  순간, 마지막 술을 들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누나가 누룽지를 남겨두었어. 남은거 마저 먹어.’
  나는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누렁이가 여태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동안 누렁이에 대해 무심했던 스스로를 꾸짖었다. 아까 산으로 갈 때 먼저 돌려보냈는데 누렁이는 어디로 간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누렁이는 끼니때마다 이따금씩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던 것 같았다.
  누렁이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개다리소반을 물릴 때쯤 되어서야 누렁이가 어슬렁거리며 돌아왔다. 입에는 죽은 쥐 한 마리를 물고서였다. 등에 쌓인 눈을 부르르 털고 있는 누렁이를 향해 나는 누룽지 그릇을 집어던졌다. 누렁이는 슬쩍 몸을 던져 피했다. 부지깽이를 들고 누렁이에게 다가갔다. 나의 서슬에 누렁이는 고발 사이로 꼬리를 감추고 슬금슬금 가재걸음질쳤다.
  ‘거기 서, 당장!’
  누렁이는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죽은 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애원하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무등을 타고 돌아올 때면 늘 늠름한 모습으로 앞장 서던 누렁이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병신같은 게, 너는 자존심도 체면도 없니?’
  나는 마구잡이로 부지깽이를 휘둘렀다. 누렁이는 매를 맞으면서도 달아나질 않았다. 주인의 매질을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더니 결국 다리를 휘청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옛날의 누렁이같으면 이 정도의 매질에는 끄떡도 없었을 것이다.
  급히 달려온 경수가 누렁이의 몸을 감싸안고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난 죄없는 누렁이는 왜 때려? 누나가 언제 밥이라도 제대로 줘봤어? 누렁이는 안 먹고도 사는줄 알아? 자기 잘못은 모르고 괜히 죄없는 누렁이만 때리고 그래.’
  경수의 어깨가 들먹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울분을 참지 못하겠는지 내손에서 부지깽이를 빼앗더니 발로 밟아 부러뜨려 놓았다. 몸을 감싸쥐었던 경수의 손을 벗어나자 누렁이는 허영거리며 일어서서 대문밖으로 걸어나갔다.
  늙은 누렁이의 꺼부러진 뒷모습은 더없이 처량해보였다.
  누렁이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나는 누렁이를 찾아 나섰다. 누렁아, 누렁아, 내가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되어 어두운 골목길로 흩어졌다. 어둠속에서 나부끼는 눈이 머리와 어께에 계속 쌓이고 있었다. 나는 손이 시려워 주머니속에 집어넣었다. 차가운 눈보라에 볼이 얼얼했다. 나는 동구밖까지 나가보았다. 거기서도 못찾으면 그냥 돌아올 참이었다.
  한참동안 누렁이를 부르다가 나는 읍내쪽에서 오는길에서 인기척을 들었다. 누렁이니? 거무스님한 윤곽이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누렁이니? 아무런 대답이없었다. 누렁이니? 나도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었다. 누구세요? 대답이없었다. 나는 마을 쪽으로 조심스레 발머리를 돌렸다. 소름이 돋았다.
  그 때 갑자기 시커먼 그림자가 뛰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달아나지 못하고 발을 허방짚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시커먼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시큼한 술냄새가 풍겼다. 사람 살려요. 목소리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세포들이 곤두서는 듯했다. 얼음장같은 손이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장승의 시커먼 윤곽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뺨위로 눈이 차갑게 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집에까지 달아났는지 도무지 정신이 없었다. 밤이 무서웠다. 일초라도 빨리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나는 온몸을 떨며 긴밤을 세웠다. 문풍지가 떨며 바람이 울음소리를 내었다. 동네 개들이 컹컹 짖어대는 소리가 산을 돌아 메아리쳤다. 폭설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경수야 일어나 어서. 어서 일어나’
  젖은 옷을 갈아입고 대강 짐을 간종거린 나는 경수를 흔들어 깨웠다. 밤 사이 눈이 그치고 어느새 날이 갓밝아오고 있었다.
  ‘으응, 조금만 더 자고’
  경수는 몸을 뒤척이더니 다시 돌아누웠다. 경수의 뺨을 가볍게 때렸다.
  ‘일어나라니까 어서!’
  ‘이잉, 자는데 왜그래?’
  ‘어서 일어나 짐 챙겨. 서울로 가자’
  ‘서울로? 엄마한테?’
  ‘엄마가 빨리 서울로 오라고 편지를 보냈어’
  ‘정말?’
  ‘……’
  경수는 후다닥 일어나더니 옷을 갈아입고 개숫물로 얼굴을 훔쳤다. 이불을 개키고 나서 나는 편지를 꺼내어 조소를 머릿속으로 외었다.
  누렁이가 먹을수 있도록 남은 반찬과 밥 찌꺼기를 모두 그릇에 담아 툇마루 밑에 넣어두고 집을 나섰다. 산너머로 동이트고 있었다. 눈덮힌 산이 노을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늘 귀퉁이의 몇조각 구름은 붉게 불타오르고 하늘 다른쪽은 아직도 푸르퉁퉁한 빛을 띠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집쪽을 바라보았다. 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이 아슴아슴거렸다. 한걸음씩 걸어갈 때마다 산들도 한걸음씩 뒤쫓아 오는 것 같았다. 아무리 걸어가도 산은 내곁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나는 애써 산을 외면하고 발앞만 보고 걸었다. 눈길에 발목까지 푹푹 빠져 들었다.
  ‘누나, 장승 앞에 돌 안던지고 가?’
  경수가 손을 잡아 이끌며 말했다. 나는 장승을 올려다보았다. 누르스름하게 색이 바래고 발목근처에는 이끼가 자라던 자국이 푸르께하게 남아 있었다. 장승은 커다란 키로 나를 굽어보며 험상궂은 딱부리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왠지 어제의 그 사내는 바로 장승이었고 나는 꿈을 꾼것인지도 모른다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 엄마 만나서 같이 집에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어야지.’
  ‘그럴 필요 없어, 그런건 미신이야.’
  ‘그래도 난 빌거야.’
  앞서 걸어가는 나의 등뒤에서 경수가 돌멩이를 집어던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승님, 엄마랑 같이 집에 돌아올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누렁이가 굶지않게 해 주시고요’
  이젠 됐다고 빙긋이 웃는 경수의 눈빛에서 나는 어린 날의 내모습을 볼 것 같았다.
  우리는 읍내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거기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갈 참이었다. 경수는 엄마를 만난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좋은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고향을 떠나는게 못내 아쉬운지 계속 뒤돌아보며 걸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무엇인가 물컹한 물체가 발에 밟히더니 나를 걸어넘어뜨렸다. 옷을 털고 일어나 나는 나를 넘어뜨린 것의 정체를 살펴보았다. 무엇인가가 길 가운데에서 눈에 덮혀 있었다.
  설마! 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눈을 치워나갔다. 가슬가슬 가칠한 감촉이 손가락 끝에 느껴졌다. 누렁이였다. 누렁이는 이미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엄마가 떠날때도 옷자락을 물고 놓아주지 않던 누렁이가 길을 막고 나를 걸어넘어 뜨린 것이었다.
  경수가 누렁이의 머리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산 너머로 막 떠오른 태양이 누렁이의 이마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걸어온 길을 되짚어 뛰어갔다. 눈속에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돌무지에다 집어던졌다. 장승이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은,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던날 누렁이의 이글거리던 눈빛이었다.
  농협창고에 불을 지르고 농약을 마신 아버지, 마지막까지도 눈을 감지 못하고 부릅떠 있던 아버지의 눈빛이었다. 휘청거리는 다리를 추스르며 나는 몸을 돌려 읍내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잠자던 온산, 온나무들이 거대한 어깨를 일으켜 세우고 뒤쫓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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