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몸담았던 東岳(동악)… 餘生(여생)도 기우려

 

“서운하지만은 않아… 40년 교직”

  교직생활 40여년, 길다면 길도 짧다면 짦은 세월이다.
  45년 京都商大(경도상대) 法學部(법학부)를 졸업하고 63년 본교 법정대학 강단에 선뒤 줄곧 동악의 학문증진에 힘쓰신 교수님은 비록 정년퇴임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물러 나지만 그다지 서운하지는 않다면서 짜여진 시간 속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참다운 연구와 좀 더 세련된 논문을 작성할 수 있어 좋을 뿐 아니라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아직은 강의를 계속할 수 있으므로 퇴임했다는 느낌이 그리 절실하지는 않단다.
  등산을 매우 좋아해서 주일마다 근교의 산을 오른 탓인지 거의 半白(반백)이 된 교수님은 아직도 정정하시다. 학계에 몸담으면서 한번도 교수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껴보지 않은 교수님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타직업보다 못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고 또 훌륭한 제자들이 속출될 때 누구보다도 보람을 느끼므로 교직은 天職(천직)이라고 하신다.
  그동안 ‘유가증권 법리’, ‘주석어음수표법’등 14권의 책을 저술한 바 있는 교수님은 69년부터 71년까지 도서관장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관리직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전형적인 學者(학자)타입.
  평소에 근면검소하고 남과의 타협을 모르며 강의시간에는 매우 엄격하지만 개인적으로 접촉해보면 그 인격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주변의 평인데 학점이 짜기로 유명하기도 했다고.
  당신의 학창시절과 비교해 볼 때 요즘의 대학생들은 총명하고 실용적이지만 학문에 대한 진지성이 부족한 것 같다면서 ‘매사에 충실하고 학문에 열중해서 사회의 유능한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퇴임인사를 대신하셨다.
  체력이 허용할 때까지 연구활동을 계속하시겠다는 교수님은 환갑이 넘은 얼굴에도 학문에의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徐廷甲(서정갑) (前法政大(전법정대) 法學科敎授(법학과교수))


“미진했던 회화교육 아쉬워”

  1952년 본교에 부임하신 이래 금년 8월31일로 정년퇴임하시는 외국어교육원장 吳碩奎(오석규)(문리대영문과) 교수님.
  ‘근30년간 몸담았던 곳을 떠나는 것이 섭섭하나 자기충실을 기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은 것으로 자위한다’고 퇴임소감을 밝히시는 노학자님은 깊은 회상에 잠기시는 듯 앞으로의 계획에 ‘이제까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분주한 생활을 했는데 직책을 떠난 이후로는 못다한 자기학문․정신적인 충족감을 위해서 시간에 쫓기는 생활이 아니라, 쫓는 생활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신다.
  73년 외국어교육원장에 취임하신 이래 7년동안 외국어교육원일을 해오신 교수님은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외국어숙달의 정상적인 방법은 회화를 먼저 배우고 글을 배워야 하는데 이것을 정상화하는 방안이 나의 소신이고 교육계의 방침이므로 미력을 다했으나 시설부족․요원부족․커리큘럼상의 애로 때문에 충분한 회화교육을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하신다. 요즘처럼 국제정세․경제적인 어려움에 대처하는 현대 대학생의 바람직한 상에 대해 ‘학생들이 시대에 부화뇌동하기 보다는 조국의 세계적․문화적 위치 경제적사정등 모든 것을 깊이 깨달아서 좀더 진지하고 적극적이고 학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학생상’을 피력.
  본교 재직시 가장 인상깊었던 일은 ‘4․19직전, 본교발전에 앞장선 많은 교수들과 학생들이 학교당국에 각성을 촉구하는 대대적인 운동을 벌였던 일’ 이라고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셨다. 일제지배하서 학창시절을 보낸 교수님이 민족교육을 통감하고 교육계에 투신한지 4십여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나, ‘조금도 후회없이 자랑스러울 뿐’이라며 정년퇴임을 아쉬워 하시는 듯 했다.

吳碩奎(오석규) (前(전) 文理大(문리대) 英文科敎授(영문과교수))


“나는 영원한 學生(학생)…․英語(영어)공부 시작할 터”

  東國(동국)이 낳은 世界詩人(세계시인)으로서 30여년간 모교에서 후진양성에 몸 바쳐온 未堂(미당) 徐廷柱(서정주)교수는 동악을 떠나면서도 그의 정신적 삶의 ‘永生(영생)’을 피력했다.
  ‘육신은 늙어 소멸하지만, 정신의 생명은 자손에 의해 혹은 제자에 의해 영생합니다. 후배이며 제자인 여러분들에게 바친 30년은 섭섭하지 않아요. 저는 여러분들에 의해 영생하니까요.’
  끊임없는 시세계의 변신을 거듭해온 그는 최근 자신의 작품경향을 ‘사건지’로 요약한다.
  ‘현대인은 행동에 굶주려 있읍니다. 자연스런 본질적 삶이 위축된 채 일상적 생활만을 반복할 뿐이죠. 詩(시)가 행동과 스토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현대사회의 요청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詩(시)는 스토리가 있는 서사시였다는 점과 小說(소설)은 사건을 다루되 ‘수사학적 디테일이 너무 수다스럽다’고 덧붙인다. 요는 이런 스타일의 시가 ‘최소한 하나의 문제거리는 된다’는 말이다.
  ‘문제성있는, 새로운 시. 생명있는 시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합니다.’ 또는 ‘그래야 한다는 자각만이라도 가져주었으면 한다’는 것이 文學(문학)을 하려는 후배들에 대한 당부.
  ‘무엇보다도 건강에 유의해야해요. 젊은 시절의 暴飮(폭음)습관은 나이들면 후회합니다’라며 ‘전철’을 밟지 말아달라는 웃음 띤 충고를 남기기도.
  ‘이제 ‘自由人(자유인)’이 됐읍니다.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英語(영어)공부를 시작할 생각이에요’ 그리고는 유치원에 입학한 ‘영원한 학생’임을 다짐한다.
  이제 未堂(미당)은 55년부터 밟았던 東國(동국)의 강단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우리 東國人(동국인)의 가슴 속에서 ‘영생’할 것이다.

徐廷柱(서정주) (前(전) 文理大(문리대) 국문과敎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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