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20도쯤 경사진 비탈길을 터덜터덜 내려오고 있는 친구가 하나 있다. 비탈길을 내려올 때는 시선이 자연히 아래쪽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런 사실에 미처 주의가 못 미쳤던 사람이라도 비탈길을 한번쯤 걸어 내려와 본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수긍할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가 비탈길을 내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면 인간의 이런 보편적인 현상을 마치 거부라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허공을 헤매는 듯한 몽롱한 시선과 함께 턱은 위쪽으로 들려져있고 맥 빠진 걸음걸이는 걷는다기보다는 다리를 되는대로 던져놓는다는 표현이 더 들어 맞을 것이다.
  수영 팬티 차림에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사서 걸친 듯한 썬캡 그리고 흰색 호루라기를 하나 그는 목에 걸고 있다. 얼마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차림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그에게 친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우리의 동료이다. 우리는 이 곳 천국 해수욕장에 고용된 구조원들인 것이다.
  저 친구가 걸어 내려오고 있는 비탈길의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 지는 우리들은 물론이고 이 해수욕장의 피서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곳에는 천국 해수욕장의 관리 사무실이 있고 그 안에는 관리인 영감이 파이프를 입에 문 채 ‘꿈과 낭만의 천국 해수욕장’이란 상투적인 문구가 들어있는 포스터 앞에서 졸고 있다. 우리가 처음 이 해수욕장에 와서 관리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은 우선 관리 사무실에 등록을 해야만 한다-우리들의 목적은 일반적인 모든 피서객과 동일했다. 바로 피서가 우리의 목적이었다. 이 해수욕장에서 익사사고가 빈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중의 한 친구가 ‘천국 해수욕장이라…그것 참 암시적인 이름인데’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별로 이상한 말은 아니었다. ‘암시적이라기 보다는 직설적이지 않을까?’ 하고 또 다른 한 친구가 말했으며 우리가 암시적이니 직설적이니 하는 것으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을 때 ‘친애하는 구조원 여러분’ 이란 아주 커다란 관리인 영감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해서 우리들은 이 곳 천국 해수욕장의 구조원으로 고용되었다.
  우리들이 이곳의 구조원으로 고용되기 이전부터 구조원 노릇을 하던 사람이 하나 있다.
  지금 비탈길을 내려오는 친구가 바로 그 사람이다. ‘어이, 어떻게 됐나?’ 우리들 중의 한 친구가 묻고 있지만 물어보나마나 뻔한 일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바다를 내 호주머니에 집어넣을 수만 있다면 이 해수욕장에서 다시는 익사사고가 일어나지 않을텐데’ 이런 그의 말을 우리가 처음 들었을 때는 그의 머리가 약간 정상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요 며칠동안 그 방법을 실제로 연구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가 불치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단정짓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그가 구조작업을 거의 도외시 했다는데 있다. 이래놓으니 관리인 영감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가 해고당할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우리의 물음에 그는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하루면 완성될거야.’ 우리들 중의 한 친구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아무 것도 안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나 한번 연구해 보쇼.’ 벌써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해가 떠서 질 때 까지가 우리의 근무시간이므로 우리는 감시탑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녁에 관리인 영감이 우리들의 숙소로 찾아왔다. 까닭은 그의 해고를 알림과 동시에 해고 이유를 밝힘으로써 우리들의 주의를 환기하려는 듯했다. ‘친애하는 구조원 여러분’ 하고 영감이 말했고 우리들 중의 한 친구가 ‘태양을 등지고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여’라고 중얼댔으며 우리들 모두는 낄낄대고 웃었다. 우리는 그때 모두 잠자리에 누워 천정에 매달린 20와트짜리 써클형 형광등과 그 근처를 오락가락하는 모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을 등지고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라고 느닷없이 그가-지금 지배인 영감이 열을 내서 떠드는 이야기의 주인공인-오늘 해고당한 우리의 동료는 소리 쳤다.
  관리인 영감이 주장한 그의 해고 이유를 요약하면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이 직무태만이고 둘째 바다는 인간의 호주머니 따위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보편적인 사실을 그가 무시하려했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우리는 잠자리에 누워,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를 바라보며 보편적인 사실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뜰 무렵에 우리의 일터인 바다로 나가려고 했을 때 우리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바다가 없어진 것이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관리인 영감은 해변가-이젠 바다가 없어져버려 해변가라는 명칭이 과연 타당한지는 의문이지만-에 엎어져서 모래 바닥을 파헤치며 울부짖었다. 피서객들은 모두 이웃 해수욕장으로 옮아가버렸고 그곳은 이곳 천국해수욕장만큼 익사사고가 그렇게 심각하진 않은 곳이었으므로 우리 모두는 실직을 하게 되었다. 우리들 중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 바다만 훔쳐간 게 아니라 우리들 일자리까지 가져가 버렸군.’
  바다가 없어져서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느냐 고는 묻지 말아달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도통 믿기지 않는 노릇이고 지금 우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애초의 목적대로 올리브유로 온몸을 번쩍이면서 해변가-이곳은 바다가 있는 진짜 해변가다-를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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