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귀족’에게 던지는 아웃사이더의 쓴소리

책을 통해 학생들에게 학문적 혹은 교양적 지식을 전해 준 저자. 그리고 그 책을 열심히 읽어 나름의 지식을 얻게 된 독자.
이들의 만남이 이뤄진다면 분명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이에 학술면에서는 3회에 거쳐 저자와 학생 독자의 특별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다.
<편집자>


‘사회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산다는 것’이란 부재에서도 알 수 있듯,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하 악역을…)’의 저자,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씨의 눈에 한국사회는 민주공화국이기보다는 사회귀족의 나라에 더 가깝다. 그래서 슬프지만 악역을 자처하고 그 성채를 정면 비판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사회귀족들이 그들만의 성채를 공고히 해온 방법과 역사, 그것을 돕는 지식인의 침묵 또는 언론의 지지 등을 낱낱히 파헤친다.
또한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극우 헤게모니 세력의 정체를 분명히 알아야 하며, 진보적 지식인의 적극적인 참여와 투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주5일 근무제, 주택정책, 교육비의 국가부담 등 귀 기울여 볼 만한 여러 제도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에서부터 최근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까지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씨의 글이라면 모두 섭렵했다는 김민수 군과 함께 지난 11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지식인의 역할과 언론개혁 등에 대해 논하는 그들의 대화를 들여다보자.

‘점잖은’ 지식인을 꼬집다

김민수(이하 김) = 책 제목이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인데 선생님은 왜 ‘악역을 맡은 자’를 자처하시는지요.

홍세화(이하 홍) = 요즘 지식인들은 좋은 역할만 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 다수의 지식인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악역’을 맡은 것은 너무나 ‘점잖은’ 지식인들의 모습을 꼬집는 일종의 반어법이라 할 수 있지요.

김 = 지식인의 역할에 큰 비중을 두시는데요, 그렇다면 지식인의 바람직한 행동과 의식을 어떻게 규정짓고 있으신지요.

홍 = 지식인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와 자신과의 관계, 그 바탕에서 신념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식인의 역할이어야 할 비판과 참여의 모습이 퇴색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즉, 현실에 있기보다 현실 위에서 관조하며 양비론을 펼치는 행동과 지식인들끼리 이런 행동을 서로 감싸주는 풍토는 그런 퇴색된 모습을 잘 드러내 줍니다.

김 = 노무현 정부가 수립된 후 선생님이 강조하시는 것처럼, 언론개혁과 ‘공화주의’의 실현, 진보진영의 도약 등을 위해 한국사회에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될 것 같아요. 특히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족벌언론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 같고요.

홍 = 조선일보는 친일행위와 유신·군사정권을 찬양하는 등의 반민족·반민주행위를 수없이 저질러 왔지만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신문을 수단 삼아 자본과 권력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언론개혁대상으로 조선일보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조선일보가 많은 문제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지식인들은 이를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구성원의 이론적·실천적 지표를 제시해야할 지식인의 역할로 볼 때 권력과 자본에 휩쓸리고 있는 몇몇 지식인은 그들의 역할을 방관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공화주의’ 없는 공화국

김 = 선생님이 ‘악역을…’에서 언급하셨듯이 우리나라는 공화국임에도 ‘공화주의’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진정한 공화국을 위한 공공성이 아직 확보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장이 유연해지고 민영화바람이 거세게 부는 등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공공성 확보는 더욱 축소되었습니다. 공화국으로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홍 = 대한민국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화국에 대한 토론이 얼마나 이뤄졌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민주화에 대해서는 ‘독재’라는 대항적 실체가 있어서 토론과 논쟁이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공화국에 대해서는 토론이나 논쟁이 거의 벌어지지 않죠.
공화국으로 올바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한 올바른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애국조회와 두발·복장 단속 등 일제 군국주의 때부터 이뤄진 국가주의교육이 여전히 잔존해 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국가주의와 반공체제에 순응하는 존재로 형성되곤 합니다. 공익을 추구하고 자기정체성을 인식하는 교육을 받음으로써 사회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공화국으로 나아가는 길인 것 같습니다.

김 = 보수층에 의해 잔존한 국가주의적 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보적 지식인 등이 목소리를 높여 국가주의에 순응해온 한국사람들의 의식을 점차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악역을…’에서 한국 진보진영의 기반이 아직 다져지지 않았을 뿐더러 진보진영끼리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개탄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진보진영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홍 = 우선 우리사회에서 진보운동의 역사는 매우 짧기 때문에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지 사회주류를 형성하는 보수세력과 이념적으로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진보’인 것처럼 표출하려는 의식은 바꿔야 합니다. 진보는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보진영은 극복해야 하는 대상과 용인할 수 있는 대상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진보진영은 독재사회를 겪는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수구세력의 견해를 무조건 부정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지금까지 이어져 견해가 달라도 서로 인정하려는 모습이 부족합니다. 이런 배타적인 의식 때문에 진정한 보수세력과 연합하지 못했고 심지어 진보세력들간에도 의견차이를 드러내며 분열했습니다. 진보진영은 의견이 다른 세력을 극복대상으로 여긴다는 생각을 바꾸고 서로 용인하면서 견제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김 = 선생님은 프랑스 사회를 ‘거울’삼아 그들의 공화국 또는 평등적인 모습을 통해 한국사회의 변화를 제기하셨는데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프랑스사회에도 모순이 존재하는데 좋은 모습만 부각시켜 프랑스사회를 이상화하고 환상을 갖게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홍 =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사회제도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들여왔고, 그나마 들여온 것도 제대로 된 내용물보다 ‘껍데기’만 가져온 실정입니다. 프랑스사회와 자주 비교하는 이유는 프랑스사회가 이상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예를 통해 그 속에 담긴 내용물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 제시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프랑스는 프랑스인이 만들어가는 사회이고 한국은 한국사람의 언어와 문화적 정서로 만들어 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환상을 가질 필요는 물론 없지요.

김 = 프랑스의 경우, 기부문화가 활성화돼 시민운동이 활발하다고 하셨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운동에 뛰어들면 생활의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거든요. 제 주위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고요. 시민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홍 = 우리나라에서는 생존에 대한 불안 때문에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아실현을 하는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생존은 자아실현을 위한 조건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싶다면 두려움을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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