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담긴 역사철학

▶함석헌(1901-1989)
·문필가, 시인, 시민운동가, 종교사상가, 역사철학가
·독립운동과 민주화, 인권운동에 공헌
·씨알사상 정립, ‘씨알의 소리’ 창간
·주요저서 : ‘뜻으로 본 한국역사’‘두려워 말고 외치라’‘씨알에게 보내는 편지’‘인간혁명의 철학’등 100여권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1930년대 초 출간된 후, 현재까지 꾸준히 읽혀 온 명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함석헌기념사업회는 이 책의 저술 70년을 기념해 지난 2일, 명동 YWCA 대강당에서 함석헌의 역사관과 역사철학을 집중 조명하는 공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토론된 내용을 바탕으로 함석헌 선생을 가상 인터뷰 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담긴 함석헌의 역사인식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그 의미와 현재성을 짚어본다.

-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는 무엇보다 역사의 의미에 대한 나름대로의 발견을 표현한 부분이 많은 듯 한데요, 일생의 ‘화두’이기도 하셨던 역사와 역사관에 대해 간단히 말씀하신다면.
= 역사는 곧 사관을 말하지. 즉, 세상을 들여다보는 눈이자 관점이야. 역사란 예술의 혼을 가진 장인의 벽화지 재주 많은 사람이 찍어놓은 사진일 수는 없거든. 장인의 눈이자 손이며 마음인 셈이야. 바라보는 방향이 변함에 따라 보이는 바가 서로 다른 법처럼, 결국 어떤 사관으로 역사를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네.

- 40년대 과학적 역사연구로 자부하던 실증주의 사학에 대한 비판도 그러한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는지요.
= 그렇지. 과거의 사실을 기록한다고 하지만, 과거에 있었던 모든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역사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기록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서 나는 역사에서 객관적 사실을 추구하기보다는 해석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보는 거야. 역사적 진리를 자연과학적 기술에 있는 줄로 아는 실증주의 사학을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거든. 일례로 과거의 많은 사가(史家)들이 공정한 역사를 쓰기 위해 해석 없는 사실을 기록하다가 수십 수백권의 이름 목록만을 쓰게 됐다는 이야기도 그러한 문제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해석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거나 과장하려 하지는 않네.

- 그런데 책 제목이 처음 쓰여질 당시에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였다가 60년 대 초 직접 지금의 제목으로 수정하셨다고 들었는데, 그와 함께 달라진 역사인식도 있으신지.
= 일단 30년대 내 사관이 기독교 중심사관이었다면, 기독교 정권(이승만 독재정권)의 폭정을 체험했던 60년대는 좀 더 보편적인 사관으로 변모했다고 할 수 있네. 또한 30년대에는 민족주의적 사조를 강하게 풍겼다면, 민족을 앞세운 국가주의의 멸망과 같은 민족끼리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은 60년대에는 탈민족적 색채를 재검토하게 됐다고 말할 수도 있지.

-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드러난 또 하나의 큰 주제가 나와 민족,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발견인 것 같은데, 대표적인 ‘씨알’ 사상도 그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고요.
= 책의 제목과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해도 바뀌지 않은 일관된 방향성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확립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일세. 가혹한 일제의 폭정 아래에서 한국역사의 정체성 상실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자 세계사의 맥락에서 한국사의 의미를 숙고하고자 했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회복 즉 자아발견은 너무나 중요한 과제였던 거지. 해방 후 역사가 뒷걸음질 친 원인도 씨알 (민중)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 그래서 내게는 씨알의 책임의식, 깨어 있음의 절실함이 있지. 결국 모든 역사적 사건에 자신의 책임의식을 느끼는 것이 인간역사의 방향이라고 나는 믿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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