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서지방의 문화·민속은 中部地方(중부지방)과 흡사

◇ 글 싣는 차례
1. 연재를 시작하며
2. 충청지방에 있어 백제권 문화
3. 전라지방의 역사와 지명관계
4. 강원도일대의 민속자료
5. 경기도 일대의 전래동화
6. 경상도의 사찰구조 및 현황
7. 연재를 마치며

  ‘百里不同風(백리불동풍)’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서로의 거리가 백리만 떨어져 있어도 이 두 지점 사이에는 풍속이 다르다는 내용의 말로 같은 강원도라 할지라도, 기후, 풍토, 역사가 같지 아니한 곳이 많아 한 마디로 논하기는 어려운 데가 있으나, 강원도의 민속을 다른 도와 비교하면 강원도는 강원도 나름대로 동질의 것이 발견된다.
  民俗(민속)은 곧 그 고장 사람들의 생활사로 강원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느냐하는 삶의 양태이다.
  그런데 생활이라는 것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생활이기에 한시도 정체되었던 적이 없이 유전하여 왔으며, 공간적으로는 강원도라는 넓은 행정단위를 무대로 하고 있음으로 서로 같지 아니한 데가 더러 있으나 강원도내에서의 생활사 형성의 시간과 공간을 縮約(축약)하여 보면 강원도 나름의 특질이 발견되어질 것이다.
  한 고장 사람들의 생활사를 크게 나누면 정신 생활사와 물질 생활사로 대별이 되고, 정신생활사의 주축은 그 고장 사람들의 종교나 신앙에 있고, 물질생활사의 주축은 그 고장의 지정적 여건에 있다. 따라서 강원도의 생활사는 강원도의 종교나 신앙의 양상과 강원도의 지정적 특성을 살피면 그 특질의 대강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강원도의 신앙이 다른 지방에는 없는 특수한 신앙이 있는 것은 아니다. 토속신앙으로서의 무속이나 部落祭儀(부낙제의)로서의 山神祭(산신제), 城隍祭(성황제), 海神祭(해신제)가 다 있고, 이들 부락제의는 아직도 연중행사로 행하여지고 있으며 외래종교로서의 불교, 기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조 5백년 동안의 지배사상이였던 유교도 다른 지방에 없는 것이 이 지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강원도는 산이 많고 들이 적으며 동쪽은 해안선을 끼고 있다는 지리적 특수성에서 온 신앙생활의 특성내지는 의식구조의 특수성을 생각할 수 있다.
  토속신앙은 원시인뿐만 아니라 오늘도 일부 이 고장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귀의처로 되어있다.
  따라서 강원도 내외 농촌지역에는 아직도 山神堂 城隍堂(산신당 성황당)이 자연부락별로 많이 남아 있고 매년 祭事(제사)도 치루어지고 있다. 새마을 사업으로 일부부락에서는 철훼한 곳이 있기는 하나 아직도 산간 부락에는 많이 남아 있으며 祭事儀式(제사의식)도 古例(고례)에 따르고 있다.
  강원도 동해안 어촌의 성황당이나 海神堂(해신당)은 山村(산촌)의 山神堂(산신당)이나 성황당보다 더 잘 보존되어있고 제행도 거의 古例(고례)를 준하고 있다. 새마을 운동때 山村(산촌)의 성황당이나 산신당은 철훼된 것이 더러있으나 어촌의 성황당은 철훼한 것이 거의 없다. 이것은 산촌에서의 성황당에 대한 관념적 의의보다 어촌의 그것이 더운 강한데 연유할 뿐만 아니라, 어촌에서는 어업의 풍흉외에 出漁時(출어시)의 漁民(어민)의 생명과 직결 되어 있다는 俗信(속신)이 있음으로 같은 土俗(토속)신앙이면서도 산촌보다 어촌의 토속신앙의 강도가 훨씬 강하게 나타나 있다.
  불교는 강원도가 산이 많기에 사찰이 많고 대찰로 알려진 사찰이 많아 불교사상이 풍미하던 시대는 말 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불교가 천시 되던 시대에도 토착화한 그 사상은 이 곳 사람들의 의식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유교사상 역시 이곳은 기조학파의 宗師(종사)인 栗谷(율곡)의 고장인 탓으로 그의 학풍이 영행 했으며 이러한 學統(학통)은 조선조 말기 이곳 유림에 의한 대항일운동이 일게된다.
  이상은 정신적인 면에서의 이 곳 사람들의 생활사의 줄기다. 동국여지승람에 강원도 지방에 속신이 강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신앙성이 깊었고 불교나 유교 역전술한 바와 같은 상황이니 한마디로 강원도민의 생활사중 정신사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뿌리 깊은 신앙성이 있음을 찾을 수 있다.
  강원도의 지정적 여건을 대별하면 해안지대와 평야지대, 산간지대로 대별이 되고, 이러한 생활환경은 그 나름의 생활문화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강원도는 지리적으로 太白(태백)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어 이 태백산의 분수력을 중심으로 嶺東西(영동서)로 나누고 영동서의 생활 문화가 다른데가 있어, 속설로는 같은 강원도이면서 嶺東文北(영동문북), 嶺西北化(영서북화)로 나누고 있다. 이것은 영동서의 자연 조건이 다르고 기후 풍토가 다른데서 이루어진 생활의 차이에서 연유한 것으로 강원도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문화현상이다. 따라서 같은 강원도라고 하여 다 같은 문화 현상은 아니고, 嶺西(영서)지방의 문화현상이나 민속은 中部內陸(중부내륙)의 그것과 닮은 데가 많고, 강원도 동해안 쪽은 해안선을 따라 강원도 내륙보다는 인적 道(도)의 해안문화나 생활에 훨씬 가깝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문화현상을 바탕으로한 이곳의 생활사는 행정구역상으로만 생활에 훨씬 가깝다는 특징이 있다.
  더욱이 강원도는 험준한 산이 많아 예부터 교통이 불편했던 곳으로, 이 교통의 불편은 외래문화의 이입에 장애가 되어왔고 이러한 지정적 여건은 그 나름의 독자적 생활문화를 창출하기에 이르러, 강원도의 산간부락의 생활문화는 소박한대로 독창적인 데가 있다.
  앞서 생업을 중심으로 한 간원도의 생활권을 해안, 평야, 산간으로 나누었거니와 같이 농경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산간과 평야의 농경속도 같은 강원도라 하여 같은 것은 아니다. 그 한 예를 들면 밭갈이에 있어 평야지대에서는 소 한 마리에 멍에를 메워 밭갈이를 하나 산간지대에서는 두 마리의 소를 함께 쓰고 있다. 이러한 예는 밭갈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생활습속이나 民具(민구) 즉 생활용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해안에 산재하여 있는 어촌에서의 생활습속을 生業(생업)의 대상이 농업이 아니므로 비교할 수가 없으나 평야지 농촌과 산간 농촌은 같은 농업이면서도 방법이나 습속이 같지 아니하다.
  문화나 습속은 필요에 의하여 창출되되 거기에는 환경성이 크게 작용한다. 지금은 강원도 내에 나무조각이나 굴피로 지붕을 하고 있는 가옥이 민속자료로 지정된 三陟(삼척)의 新理外(신리외)에는 완전히 없어졌으나 수십 년 전만 하여도 강원도 산간가옥에는 너와집, 굴피집이 허다하였다. 산간 부락에는 이러한 가옥이 있으나 평야지대에는 이러한 가옥은 없다. 평야지대는 논이 많아 논농사에서 오는 볏집의 이용이 가능했던 탓으로 초가가 가옥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데 비해 산간에는 논농사가 적어 지붕을 이을 볏집이 없는 대신 생활 주변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나무판자와 너와나무껍질인 굴피이기에 저절로 너와집이 많게 마련이다.
  이것은 문화는 필요에 의하여 창출되지마는 거기에는 환경성이 작용한다는 하나의 예이고, 강원도 생활사는 바로 이 예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러한 생활현상은 결혼에까지 관련지어지고 있어 자유연애결혼 이전의 결혼풍조에서 강원도의 婚路(혼로)는 크게 어촌, 평야, 산간의 세 부류로 구별이 된다. 이것은 同類(동류)의 생활습속을 갖은 사람끼리의 결혼을 뜻하는 것인데, 이곳의 혼로가 이렇게 동일 생활습속을 찾아 맺어졌다는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어촌 출신이 산촌으로 가서 그 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렵고, 농촌출신이 어촌에 가서 그 생활에 적응 된다는 것도 어려운 일로, 이는 지난날의 계층의식에 앞선 생활의 적응문제이다 보니 자연 혼로는 類(류)를 찾아 맺어지게 마련이고 그 결과는 부류별 고착성을 공고히하여 강원도내의 상기 세 생활권은 서로의 交關性(교관성)을 갖지 못한채 굳어져만 가서 각기 그 나름의 권역의 생활사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생활권역 중심의 생활사 현상은 물질적 생활에만 국한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생활이나 신앙생활에 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락신앙에 있어 성황당은 일반화되어 있는 것으로 농어촌을 가릴 것 ㅇ벗이 널리 퍼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신당이나 해신당까지를 성황당으로 통칭하고 있을 정도로 일반적으로는 부락 토속신앙을 성황으로 부르는 수가 많으나 강원도에서 실제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평야지의 부락제당은 성황신이 대부분이고, 산간지는 산신이 대종을 이루고 있으며 해안지역에는 부르기는 성황당으로 부르고 있으나 해신이나 용왕신이 많다 강원도내의 토속신앙의 神體(신체)가 같은 도내에서도 이렇게 유별이 되는 것은 지정적여건에 의한 생활권역의 차이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이 지정적 생활권역 문제는 세부적인 면에서는 생활사까지를 달리하기에 이르렀다.
  강원도의 생활사는 태백산맥으로 인한 동서의 문화적 권역의 형성으로 크게 나누면 영동과 영서로 나누키고 산이 많은 곳이기에 외부문화와의 交關(교관)이 잦지 못하여 생활의 필요에 의한 고유생활사가 형성되었으며 이 고유성은 교통이 불편 했던 관계로 오래도록 유지 되어 생활사나 민속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거의 조료의 보고라 이를만한 곳이다. 한편 강원도의 생활사를 크게는 태백산맥을 중심하여 영동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을 다시 생업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는 해안, 평야, 산촌의 세 가지로 구분이 되고 이 세 부류를 생업의 영위 방법이나 기술은 말할 것이 없고 심지어는 신앙생활에서의 神體(신체)까지를 달리하고 있어 같은 행정단위에서 살고 있으면서 그 부류 나름의 특징 있는 민속을 이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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