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해방 위한 사명감 높여야

Ⅰ. 머리말

  최근 들어 해인사 전국 승려대회를 비롯한 불교계의 일련의 움직임이 사회에 던져준 충격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는 이제껏 타율과 오욕의 역사로 점철되어온 한국불교가 자주화를 겨냥한 힘찬 포효였다는 점에서 기존사회의 불교인식을 뒤집어엎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自利(자리)에만 급급하던 승가와 利他(이타)에 편중적이던 재가 불자들의 공동의 목표에 대한 통일적인 투쟁은 불교의 대사회적 위치에 있어서 새로운 자리 잡음의 계기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외부적 강제에 의해 형성된 이지러진 모습에서 탈피하여 上求菩提 下化衆生(상구보제 하화중생)의 대승적 이념을 조화롭게 실천하기 위한 거보가 이 땅의 고통 받는 민중 가운데로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동안의 民家佛敎運動(민가불교운동)의 자그마한 成果(성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政治的(정치적) 혼돈 속에서 치러지는 아시아 경기대회를 맞이하여 민주화 투쟁이 더욱 가멸차게 전개될 것임을 감안할 때, 또한 교묘한 정치적 산술로서 진행되는 개헌국면을 되씹어볼 때, 최근 불교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불교의 自主(자주)선언은 그 意味(의미)를 더욱 부여시키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민중불교운동으로 대표되는 불교운동이 뿌려놓은 민중속으로의 회향정신을 차제에 어떻게 조화롭게 이루어내느냐 하는 문제는 정치적 사회적 혼돈기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비중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대적투쟁에 있어 적의 취약부를 강타하는 것이 승리의 기본 전술임을 생각해 보면, 민중불교운동은 불교 내적으로 대중적 열기를 기반으로 한 주체적 역량의 고양과 함께 승가와 재가의 통일된 의식을 도출해내는 것이 당면의 과제인 셈이다. 또 불교외적으로는 점증하는 민주화요구에 주체적 참여를 함으로써 불교적 시각을 토대로 정토 건설의 참다운 담당자가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상고한 전열을 점검하고 불퇴전의 각오로써 반외세 민족자주화와 민중해방투쟁에 임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민중불교운동의 당면과제를 상기하면서 지금까지의 민중불교운동의 개괄적 전개와 아울러 미흡하나마 앞으로의 방향에 대하여 개진해 볼 것이다.


Ⅱ. 민중불교운동의 객관적 전개

  1. 민불련 창립 이전(70년대중반~85.5)

  일제하 만해사상과 해방 후 불교혁신운동을 근간으로하는 민중불교적 뿌리는 70년대 중반 군사독재아래에서 다시 태동하기 시작하여 그동안 예속과 타율에 익숙한 종단풍토 속에서 내외적 억제를 감내하며 선도적 외침을 수행해왔다. 유신말기, 이들 진보적 지식인에의 한 민중불교의 이론적 탐구와 실천적 노력은 규모에 있어서는 빈약하였으나 의식적 작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한 사회상황의 변동을 반영한 불교는 자체내의 반성과 더불어 민중불교 이념의 창출에 힘쓰게 되었다.
  80년대 후 불교적 활동가의 배출이 증가함에 따라 민중불교운동은 점차 조직화 되어가기 시작했으며 이론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권층의 마수는 81년 사원화 사건을 계기로 그 폭력적 본질을 드러내면서 민중불교운동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당시의 탄압은 민중불교운동에 막대한 손실을 던져주었지만 반면 조직의 재건과 투쟁 경험의 축적을 가져다줌으로써 한 차원 높은 운동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83년 대학생불교연합이 그 질을 강화하면서 민중불교운동은 그 규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이론서의 대량보급과 함께 질적 고양을 나타냈다. 85년 5월 드디어 사회 공개운동 단체로서 불교내에서의 역량을 바탕으로 민중불교운동연합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이시기에 있어 민중불교운동은 70년대의 소수 개별적 성격을 극복하고 점차 조직과 이론적 체계에 눈을 뜸으로써 타부분운동과의 교류에도 활발히 함은 물론 실천적 노력으로 나아가려한 시기였다. 다만 종단의 민중불교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인한 불협화음은 대량의 불교적 활동가배출의 가능성을 질곡하여 자체적 재생산구조를 확립할 수밖에 없었던 난점이 있었다.

  2. 민불련 창립이후 (85·5이후)

  민중불교연합(민불련)의 탄생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과 에네르기의 필연적인 성과물이다. 비록 창립당시의 상황은 외적으로는 대통령의 방미 후 규제가 노골화되는 일종의 전환기였고, 불교내적으로는 인적·물적 토대가 충분치 않았고, 민중불교운동에 대한 내부적인 통일인식이 부족한 상태였으나 80년 민중운동력의 고양은 불교운동에 있어서 준비론적 사고나 개량적인 활동 실천과 유리된 관념적 논의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아픈 반성에서 다양한 관점을 일시적으로 유보한 체 결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민중불교운동은 석존이 깨달음을 얻은 뒤 우리에게 준 행동의 지침으로서의 팔정도(八正道)와 그 지향점인 동체대비사상을 바탕으로 제도적 종교가 빚어내는 현실의 제반 악폐를 제거하고 고통 받는 민중과 하나가 되는 현실성을 통하여 이웃과 하나가 되고, 세상과 하나가 되는 공동체의 창출을 궁극의 목표로 삼고, 그 실천과정에 있어서는 조화와 통일을 꾀한다. 즉 민중불교운동은 上求菩提 下化衆生(상구보제 하화중생)의 대승적 이념이 제시하는 신앙적 충전행위와 역사와 민중에 대한 과학적 통찰로 정토 건설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민중불교운동은 ‘이론만 강조하고 실천을 망각하는 문자법사를 거부하며 실천만을 우위에 세우고 이론적 충전작업을 게을리 하는 암증선사도 거부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결국 민중불교운동은 진리로서의 종교를 신용하는 진리파지 운동임과 동시에 민중해방투쟁을 자기화함으로써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게 하는 본원인 것이다.
  이와같이 민중불교운동은 민불련 창립이후 불교활동가들의 꾸준한 논의와 실천을 통해 운동의 방식, 연대의 범위, 활동의 위상에 대한 인식격차를 좁히는 한편 대내외적으로는 실천적 투쟁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 내적으로는 불교적 세계관 내지 실천관을 사회과학적으로 해석해 냄으로ㅆ 불교 언어의 추사성을 구체적인 역사현실 속에서 극복해 나왔으며 외적으로는 우리사회의 제반부조리에 대해서 종교의 대사회적인 참여라는 기치 하에 이 땅의 가장 고통 받는 민중들과 함께 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실천해 온 것이다.
  이제까지의 민중불교운동은 불교의 자기혁신을 도모해야 한다는 종교혁신운동으로서의 성격과 전체 운동틀 속에서 부분운동으로서 그 위치를 겸한다는 점에서 2중적인 성격을 지닌다. 비민중적인 山中(산중)불교나 반민중적인 호국불교를 타파하고 보수적·개량주의적 불교흐름 극복의 과제를 수행해야하는 이념 체계를 가지고 불교 내부적으로 대중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불교권내의 각 운동세력간의 因子(인자)·기구간 통일적인 전선을 구축해야하며 사회운동과도 어깨를 나란히 해나가야 하는 고충 속에서 민중불교운동은 몸부림쳐 온 것이다.

Ⅲ. 전망

  현재 한국사회의 성격은 신식민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를 그 본질적 토대로 하며 그 필연적 귀결로서 반민족적·반민중적·반민주적사회성격을 띄고 있다. 이는 일제의 신민지적 경략과 일제의 뒤를 이은 미국에 의해 규정된 신식민주의하에서 전제적 정치체제가 성립되었다. 이러한 때 제3세계 신식민지 국가의 민중으로서 한국 민중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기초적 모순인 계급모순과 더불어 모순의 결과로 중층적 모순의 전가를 받았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순 속에서 민중불교운동은 민족종교로서의 자기역할을 하고 민중들의 고통에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줄 수 있어야만 그 존재의의를 부여받을 수 있다.
  이제 민중불교운동은 이제까지의 여러 가지 이론적 제작업과 실천적 행위들 속에서 자기정립을 할 때인 것이다. 민중과 더불어 자기규정을 해나가며 동시에 우리민족의 주요모순인 민족해방을 위해 信敎民族主義(신교민족주의)를 내걸고 自主化(자주화)로 나아가야한다. 그리하여 이 땅이 더 이상 외세에 예속되지 않고 民族主體(민족주체)로서 세계 속에서 자기목소리를 할 때 우리의 민족통일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자주성의 확립이야말로 우리민족과 민중불교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