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별이 내리는 창가에서
바람은 단지 외로운 손짓으로
어둠의 얼굴을 한 잎사귀를 떨구곤 하지만
나의 가슴 언저리에서
그리움의 빛깔로 피어난 바람은
밤마다 기억 속을 맨몸으로 떠돌다가
눈빛 맑은 그녀의 머릿칼에서
가냘픈 몸매를 쓰러뜨린다.
자꾸만 쓰러지는 바람, 일렁이는 머릿칼.


바람이 불면,
그녀는 강으로 가고프다고 했다.
저희들끼리 은밀한 귀엣말로
갈대가 서걱대는 강가에서
바람이 울어대는 소리를 듣자고 했다.
강에서 부는 바람,
그녀의 머릿칼은 물결 위로 흐르고
설레임이 퍼득이는 심장을 훔쳐내어
한번 강으로 떠나간 그녀는
다시 내 가슴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눈물 잃고 슬픔에 갇힌 가슴에
더 이상 바람은 불지도 않고
사건 속에서 박제가 된
그녀의 머릿칼은 일렁이지 않는데
별들이 조금씩 눈빛 흐리는 창문 틈에서
바람은 이윽고, 사랑 잃은 시인의 음성으로
목놓아 울음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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