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부족의 한글 공식문자 사용계기로 본 한글의 창제원리

 

훈민정음학회 노력으로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 문자를 쓰기로 했다고 해서 화제다. 이런 맥락에서는 한글을 한국의 문자로 규정하기보다는 인간의 말소리를 가장 잘 적을 수 있는 인류의 보편 문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한글을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뽑은 것이나 역사학자 존맨이 “모든 문자의 꿈”이라고 한 것은 한글의 보편적 과학성과 우수성의 실체를 정확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자는 통섭 학문의 천재였던 세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종의 사유는 근대 학문과 탈근대 학문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는 소쉬르의 사유를 훨씬 뛰어 넘은 것임을 필자는 “세종과 소쉬르의 통합언어학적 비교 연구(사회언어학 16권 1호)”라는 논문에서 입증한 바 있다.

한글은 그 자체가 문자과학이며 이러한 문자과학은 언어학, 천문과학, 음악, 수학, 역학의 통섭과 융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김슬옹,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한글창제의 핵심은 최소원리

그렇다면 과학성과 우수성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한글 창제 원리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글 창제 원리는 최소 원리, 생성 원리, 천문 원리, 음악 원리, 수학 원리 등으로 풀어낼 수 있다. 최소 원리는 최소 문자소(자소, 자음자, 모음자)를 설정하여 이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원리다.

곧 자음의 문자소는 ‘ㄱ ㄴ ㅁ ㅅ ㅇ’이고 모음의 문자소는 ‘· ㅡ ㅣ’이다. 미국 앨러버마대 김기항 교수는 이런 여덟 자의 문자소조차 점(·)의 집합으로 본다. 한국말에서 발달되어 있는 받침 종성자를 따로 만들지 않고 초성자와 같은 도형 원리를 적용한 것도 최소 원리다. 이러한 최소 원리는 마치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고, 분자가 모여 다양한 물질 현상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이치를 닮았으며 이를 발견해 낸 근대 원자 과학 이치와 같다.

이런 최소 원리는 생성 원리로 이어질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생성 원리는 문자 확장과 음절자 생성에 적용되었다. 문자 확장에서는 기본 문자소에 가획(ㄴ→ㄷ→ㅌ) 원리와 배합(ㄸ) 원리, 합용 원리(ㅏ+ㅣ=ㅐ)를 적용하여 기본 문자 28자와 그밖에 다양한 문자(기본자 포함 모두, 모음자 29, 자음자 40)를 만들어냈다.

또한 초성자와 중성자, 종성자의 조합 원리를 통해 실제 다양한 소리를 적어낼 수 있는 놀라운 수의 음절자를 생성하게 했다. 현대 한글의 경우 초성자 19, 중성자 21, 종성자 27개를 ‘가갸거겨’식으로 조합하면 무려 11,172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15세기에 사용된 문자를 현대식으로 조합하면 3만자가 넘고, 훈민정음 해례본의 조합 원리인 병서법, 연서법, 부서법, 합용법을 모든 문자소에 적용하면 무려 399억여 자(39,856,772,340)가 생성됨을 전산학자인 변정용 교수가 컴퓨터로 계산해 낸 바 있다.(변정용, 한글의 과학성, 함께여는 국어교육 26호).

발음기관의 모양을 상형화

이런 생성 원리 때문에 세종은 닭 울음소리,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 그 어떤 소리도 다 적을 수 있다고 선언했다. 천문 원리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는 선언에서 드러난다. 이는 조잘대는 아이들의 말소리부터 스쳐가는 바람 소리까지 다 적기 위해 우주 천문의 이치를 관찰하여 말소리를 자연과학적으로 정확히 분석해 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세종은 미시 전략을 자음자에 적용하여 자음의 원형 문자를 말소리가 일어나는 발음 기관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상형해 냈고, 거시 전략을 모음자에 적용하여 천지인의 틀 속에서 원형 문자를 상형해 냈다. 이렇게 바른 소리를 제대로 적을 수 있는 정음(바른 소리) 문자를 만들다 보니 과학적인 문자가 되었다. 이러한 천문 원리는 자연스럽게 음악 원리를 아우르게 되었다. 조선 특유의 음악을 정리하게 하고, 그 또한 작곡가이며 절대 음감의 소유자이기도 했던 세종은 ‘궁상각치우’와 같은 자연스런 음악 이치를 문자 창제에 반영하여 음률문자를 만들어 냈다.

한태동 연세대학 명예교수는 피리와 같은 전통 악기와 첨단 기계를 동원하여 한글에 담긴 궁상각치우 원리를 밝혀낸 바 있다.(세종대의 음성학, 연세대출판부, 2003) 음양오행의 역학을 적용한 것도 바로 천문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도형원리등 수학원리도 사용돼

한글 창제에 적용된 수학 원리의 핵심은 유클리드 기하학인 도형 원리와 비유클리드 기학인 위상수학이 적용되었다. (정희성,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위한 과학 이론의 성립) 이를테면 한글은 점과 선과 원만으로 완벽한 대칭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자음자와 모음자의 조합에서 ‘가’의 경우 자음자를 고정시키고 모음자만을 90도씩 틀면 각각 ‘가, 구, 고, 거’ 네 글자가 생성이 되는데 이는 최소의 문자소로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글자를 생성해 내는 위상수학의 원리다. 자음자와 모음자의 도형 원리를 달리하여 위아래 결합 도형을 통하여 가로 적기와 세로적기를 모두 가능하게 한 것은 도형 생성원리의 극치다. 이때의 도형 원리는 곧 예술 원리이기도 하다.

이제 소통 원리로서 창제 원리는 대단원을 장식한다. 문자는 근본적으로 소통을 위한 것이다. 세종은 신분 질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소통 문자를 만들어냈다.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바탕으로 하는 이러한 실용성과 효용성은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제 세종학과 훈민정음학을 제대로 세워 그 기상을 우리 인류가 공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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