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본지에 철학과 홍윤기 교수가 본교에서 현재 진행중인 학과제 추진에 대한 장문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학과제 추진을 비롯한 대학교육제도 문제가 본교에서 깊이 토론해야할 논제라는 사실에 동감해 그대로 싣는다.
홍윤기 교수의 기고문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반론과 다양한 의견을 기대한다.
<편집자>

신임 총장 아래서 학내 구성원들이 체감할 정도의 업무로는 첫 사업에 해당되는 이른바 학부(과)제 개편의 결과 지난 8년간의 학부제를 전면 부인하고 거의 그 이전 수준의 학과제로 전면 회귀하는 하는 것이 불가피해진 것처럼 보인다.
이름만의 학부제에 미력한 이의를 제기한 지 만 5년이 경과한 현 시점에 필자는 이제 당시와는 정반대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상한 또다른 기류를 비판하고자 하는 내 처지에 당혹감을 감출 길 없다.

문제는 앞으로 학과제 하에서 정원이 계속 미달되는 학과에 대해 정원 조정이 예상된다는 부가 조건의 독소성, 그리고 이전 학과제 문제점의 보완을 일단 학과단위 모집 이후에 하겠다는 그 안일한 대처 방식이다. 이 두 문구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의 학과제 회귀 논의가 우리 교육 환경에 대해 얼마나 안이한 인식에 바탕한 것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1999년 4월 필자는 본교 대학원 신문을 통해, 당시 모든 대학을 벌집 쑤신 듯이 들끓게 하고 있던 이른바 ‘학부제 개혁’이 아주 비현실적인 취약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는 점을 비판한 적이 있다.
비판의 요지는 고등학교 때까지 자신의 진로를 놓고 자기 힘으로 의미 있는 선택과 결정을 내린 적이 없던 학생에게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놓고, 그러한 선택이 질적으로 높은 결과에 이르도록 하는, 다시 말해 자유의 질을 보장할 책임 있는 교육 과정은 거의 도외시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뒤 목격한 이른바 학부제 교육 개혁은 교양 과정에서 식상할 정도로 반복되던 일부 중복 강좌나 학과의 틀 안에서 안주하던 몇 개의 구태의연한 전공 강좌가 정비되는 등의 약간의 긍정적 효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전공 필수가 폐지되면서 당연히 보완되었어야 했던 전공 수업 인프라가 강화되기는커녕, 필수 학점 폐지로 인해 전공 수업 시간이 현격하게 단축됨으로써 전공 교육의 질은 도리어 떨어졌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상태에 도달하였다.
교양 교육 역시 학생들이 학점 따기 쉬운 과목에 편중되는 부작용을 제대로 막지 못한 채 대학 교육에서 당연히 달성해야 할 전공기초능력의 배양에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교육 개혁은 교육의 질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아가 광역화된 모집 단위에 상응하는 선택의 다양성은 전혀 발전되지 않고, 학생들은 단지 기존 학과를 놓고 뒤늦은 선택만 하게 됨으로써, 학부제는 무늬만 학부제였지 사실상 잠복된 학과제에 지나지 않았다. 
이름만의 학부제에 미력한 이의를 제기한 지 만 5년이 경과한 현 시점에 필자는 이제 당시와는 정반대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상한 또다른 기류를 비판하고자 하는 내 처지에 당혹감을 감출 길 없다.
이번 3월에 들어선 본교 신임 총장 아래서 학내 구성원들이 체감할 정도의 업무로는 첫 사업에 해당되는 이른바 학부(과)제 개편의 결과 지난 8년간의 학부제를 전면 부인하고 거의 그 이전 수준의 학과제로 전면 회귀하는 하는 것이 불가피해진 것처럼 보인다. 3월 17일 교무처 학사지원실을 통해 단 1주일의 기한을 주고 각 단과대에 하달된 학부(과)제 개편에 대한 단과대별 의견서 제출 요망 건에 대해 거의 3분의 2에 달하는 구성원들이 학과제로의 회귀를 요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과거 학부제로 인해 가장 심한 위기를 겪었다는 피해의식이 팽배한 문과대의 경우, 학과제 회귀 여부에 관한 조급한 결정의 유보를 강력히 요망한 철학과 단 한 과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7개 학과 전체가 학과제로의 즉시 회귀를 요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여론을 업고 단 2차례의 학과장 회의를 거친 문과대는 4월 24일 학과제를 확정하고, 이과대와 더불어 2004학년도부터 신입생을 학과별로 모집한다고 개별 교수들에게 통고했다.
학과제를 열망하는 다수 동료 교수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쓰고 필자가 학내 대세를 거스르는 글을 쓰기로 어렵사리 결심한 첫 동기는 신임 총장의 발의로 이루어진 현 학과제 회귀 논의 방식에 심대한 문제점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과거 학부제가 치밀한 검토와 충분한 보완 조치 없이 단지 교육부 지원금을 목표로 행정명령식으로 졸속 시행되었던 반면, 현재 학과제 논의는 학과제 회귀에 따르는 여러 문제, 특히 과거의 학과제를 복구시키는 것이 앞으로 교육의 질적 개선에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관해 대학다운 사려 깊은 통찰 없이, 단지 학과제가 만능임을 믿는 교수들의 반사적인 여론만 내걸고 조급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 학과제 하에서 정원이 계속 미달되는 학과에 대해 정원 조정이 예상된다는 부가 조건의 독소성, 그리고 이전 학과제 문제점의 보완을 일단 학과단위 모집 이후에 하겠다는 그 안일한 대처 방식이다. 이 두 문구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의 학과제 회귀 논의가 우리 교육 환경에 대해 얼마나 안이한 인식에 바탕한 것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전자의 문구에서는 정원의 계속 미달을 어느 시점 기준으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중요하다. 아예 신입생 모집 때부터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극단적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모집 정원은 채웠다 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학과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학사 기간이나 졸업 때에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학과가 있을 경우 그 학과의 운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례로 서울 시내 모 사립대학에서 국내 유일한 전공을 운영하는 학과의 경우 처음부터 학과제로 모집해 60명 정원으로 출발하였지만 졸업생은 6명밖에 남지 않는 사례도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 학교 문과대 교수의 관찰에 따르면 적어도 정원 채우는 측면에서 학과제의 약발은 3∼4년이라는 자조적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비인기학과일수록 학과제에 목을 걸 경우, 학교측의 재정 운영 문제와 부딪칠 때, 등록금 결손의 직접적 책임을 학과가 떠맡아야 한다는 대단히 난처한 상황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학과제를 일단 실시하고 예전 학과제의 문제점을 사후 보완하겠다는 발상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전임교수진이 고정되어 있는 현행 및 예전 학과체제는 그 전공 차원에서도 새로운 학문 조류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데 심대한 문제가 있으며, 기존 학과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의 요구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치명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학과 교수들이 특단의 결심을 하지 않는 한, 일단 특정 학과에 들어온 학생들은 4년 재학 기간동안 새로이 발전하는 지식의 흐름을 적어도 자기가 다니는 학과를 통해서는 배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본질적 문제는 신입생 모집을 학과제로 할 것인가 학부제로 할 것인가가 아니다. 본질적 문제는 우리 학교 학생이 들어와 4년 지난 뒤 어떻게 변모된 모습으로 이 험한 세상살이에 나갈 것인가를 학교측과 교수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온 학생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그들의 남은 인생 동안 우리 학교에 감사함을 느끼게 할 것인가? 내 학과 하나 살리는 것이 그 답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더욱 슬픈 것은 총장이 바뀌어도 문제에 대한 교수다운 성찰을 학교 운영에 도입하겠다는 의지나 비전이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과제와 학부제를 넘어 학생에 대한 교육의 질적 개선만이 대학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어 전임 총장 아래 어렵사리 모인 교수들이 학술진흥재단의 외부 지원을 얻고 학교의 상응 자금을 받아 1년 넘게 우리 학교 교육 시스템 개선 방안을 연구하고자 한 자발적 움직임이 있었다. 긴 토론과 모색 끝에 이제 학내 구성원들의 토론에 붙일 수준의 구상도를 제시할 단계에 총장이 교체되었고, 이 과제는 새 보직 교수들로 구성된 이른바 검토위원회에서 난폭하게 포기되었다.
과거에는 단 한 사람의 완고함이 일을 그르쳤다면, 지금은 집단의 맹신이 말하는 것조차 거부한다. 동료 교수들의 돌을 맞는 것은 아픈 일이다. 그러나 돌아선 학생들의 차가운 등을 보는 것은 교수로 있을 나머지 인생 내내 고통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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