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권리 위해 동분서주 … 수배로 건강 등 어려움 겪어

수업이나 평일·공휴일 등에 상관없이 언제나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총련 소속대학의 단과대 학생회장에 선출됐다는 이유로, 총학생회장이나 부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는 이유로 수배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생활하고 있는 학생 대표자들이다.
“집회에도 나가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싶기도 한데 한총련이 이적단체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오선임(국교4) 양. 그는 지난해 사범대 학생회장에 선출돼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이유로 정치 수배자가 된 후 현재는 총학생회에서 학원자주화투쟁위원장(이하 학자투 위원장)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지난 2일.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8시경에 일어나 신문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오 양은 다음으로 공간소 위원회 간사인 김윤길 기획인사처 과장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면담시간을 정했다. 구 중앙도서관 리모델링 후 공간배치와 관련해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면담시간은 10시 30분, 그는 남는 시간을 활용해 학내 곳곳에 붙일 선전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 전 중앙도서관 흡연실에 환풍기가 설치된 것과 관련해 화장실에서 담배피지 않기, 휴게실 깨끗이 쓰기 등의 캠페인을 벌일 생각이기 때문이다. 면담, 회의 등 특정한 일이 계획돼 있는 시간 외에도 본교 학생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요즘 이러한 캠페인뿐만 아니라 35대 총학생회의 공약 사항이었던 ‘좋은 수업 만들기’를 실행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김윤길 과장과의 면담을 끝마친 후 그의 발걸음은 정각원 앞으로 향했다. 각 단과대의 학생들이 봄 농민학생연대활동(이하 농활)을 위해 출발하는 것을 지켜보고 격려하기 위해서다. “오늘 아침 예전에 농활을 가서 만났던 어른들한테 전화가 와서 꼭 찾아뵙고 싶었는데 요즘 한총련 수배자 특별 검거 기간이라는 정보 때문에 참가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오 양의 마음은 이미 농활을 하는 장소인 충북 제천으로 떠난 듯했다. 하지만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없게 강요하는 한총련 수배자라는 낙인 때문에 몸은 학교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얼마 전 연세대에서 진행된 한총련 수배자들과 가족들의 상봉자리인 ‘새봄, 첫 만남’ 행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학자투 위원장으로서 해야할 일이 있었을 뿐 아니라 수배자라는 신분 때문에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조심스러워 행사장에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딸을 기다리다가 고향으로 내려가시려는 부모님을 행사장 문 앞에서 만나 안부만 확인한 채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농활대를 배웅하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됐다. 오늘 점심은 농활대원들이 남기고 간 도시락이다.
오선임 총학생회 학자투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본교 한총련 수배자들은 총학생회실에서 직접 밥을 하거나 학교 식당에서, 행사 후 남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따뜻한 밥은 정치 수배자가 된 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점심식사를 마친 오 양의 손에는 한약이 쥐어져 있었다. 지난 3월 경희대에서 진행된 서울지역 한총련 수배자들의 공개 건강검진에서 검진을 받은 후 처방 받은 약이었다.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그에게 위와 같은 행사는 건강을 좀 더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이후 오 양은 각 과 학생회장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일(6일) 총학생회에서 좋은 수업 만들기 관련 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번 회의는 학생회가 오는 27일 학교측과 진행될 공개토론회에서 제시할 입장을 정리하는 초석이 되는 중요한 회의여서 많은 학과의 참여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 학생회장들은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결국 직접 학과 학생회실로 찾아가 학생회장이나 학생들에게 말을 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사범대, 사과대 등의 과 학생회 15여 곳을 방문하고 회의에 대해 알리자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일과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후발대로 농활에 참석하는 학생들을 배웅하고 총학생회로 돌아가면 한총련 사업계획과 5, 6월 본교 총학생회 일정에 대해 논의하는 총학생회 중앙 집행부 회의 등의 일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같은 길을 걷는 선·후배의 격려가 있기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는 오선임 총학생회 학자투 위원장. 최근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한총련 합법화에 대한 논의가 하루 빨리 결실을 맺어 그가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 사회와 학생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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