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있어 단절되지 않을 광주의 ‘역사’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 /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광주학살의 잔혹성을 재현, 고발하는 이 시는 87년 무렵 쓰여진 김남주 시인의 ‘학살1’의 일부로 광주항쟁 관련 시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이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광주항쟁이 종료된 직후, 김준태 시인이 쓴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의 일부다. 항쟁의 처절함이 표현된 이 시에는 ‘죽음으로써 다시 삶을 찾으려는’ 부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광주항쟁이 패배로 끝나지 않았다는 항쟁의 의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광주항쟁과 관련된 문학작품들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라는 역사적 과제와 무관할 수 없었다. 80년대 광주를 주제로 한 창작활동이 광주학살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세력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광주항쟁은 80년대 양심적 문인들에게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광주 문제에 대한 언급이나 담론은 금기였기 때문에 광주항쟁을 글로써 복구하는 작업은 자유롭지 못했다. 광주를 다룬 초기 문학작품들이 우회적 표현이나 부분적 묘사가 거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때문에 비유적·은유적 표현을 빌린 시 창작활동만이 주를 이뤘다. △곽재구의 ‘그리운 남쪽’ △김남주의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하종오의 ‘사월에서 오월로’ 등의 시작품들이 그 예로, 당시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저항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80년대 후반, 군부독재 정권이 무력화되면서 관련 창작활동은 상대적으로 활발해졌다. △광주학살의 잔혹성을 고발한 김남주의 ‘학살’ △선동적인 어조로 광주항쟁을 떠올리는 백무산의 ‘오월은 어디에 있는가’ △광주항쟁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임동확의 연작시 ‘매장시편’과 김희수의 서사시 ‘오늘은 꽃잎으로 누울지라도’ 등의 시작품들이 그렇다.
또한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모순의 연장선에서 광주항쟁을 바라본 문순태의 ‘일어서는 땅’과 한승원의 ‘당신들의 몬도가네’ △살아남은 자의 시선을 통해 광주의 비극과 참담함을 묘사한 박호재의 ‘다시 그 거리에 서면’과 윤정모의 ‘밤길’ △광주항쟁의 표면적 가해자인 공수부대원을 등장시킨 정도상의 ‘십오방 이야기’ 등의 소설도 광주항쟁을 폭로하고 고발한 대표적 작품들이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선 이후 광주항쟁은 문인들의 ‘화두’에서 멀어져 간 것이 사실이다. “광주항쟁은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현실’에서, 잊혀져 가는 한낱 ‘과거’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한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때문에 몇 년 전 ‘광주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장편소설 ‘봄날’과 ‘그들의 새벽’이 등장한 것은 더욱 의미있는 일이었다.
‘봄날’은 ‘직선과 독가스’‘사산하는 여름’ 등 일관되게 광주를 소재로 소설을 썼던 작가 임철우가 지난 98년 발표한 소설로 광주항쟁을 사실적으로 증언, 재현한 보고문학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그들의 새벽’은 광주를 지키는 작가로 불리우는 문순태가 광주항쟁 20주년을 맞아 쓴 소설로 하층민의 시각으로 광주항쟁의 실체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와 관련해 문학평론가 이성욱 씨는 “이 소설들은 광주항쟁을 ‘읽게’하는 것이 아닌 ‘겪게’만드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지금까지는 광주 ‘안’의 총체적 구현 작업이었다면 이제는 광주 안팎의 총체적 지평에 도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진정 그렇게 될 때, 80년 5월의 광주는 단절되지 않는 ‘우리의 역사’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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