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사회적 맥락을 거부하는가

과학은 일차적으로 기존 지식에 성찰을 그 기반으로 한다. 당연히 사물이나 사회 그리고 심지어는 인간에 대한 이해에 도전한다. 의심할 수 없는 수학적 논리적 추론에 기반하여 그 합당한 근거와 합리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다.

과학기술과 사회(STS)

과학적 지식은 여타의 다양한 사회적 요소나 이해관계 위에서 순수한 이미지를 가지면서 그 진리성을 과시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유사 이래 그 유래가 없는 독특한 사회적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과학은 인지적, 인식론적 범주나 연구자 개인의 지적 유희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어떤 성격을 지닐까. 과학적 지식의 사회적 본질은 오히려 다른 지식에 비해 과학적 지식이 보다 더 진리에 가까우며 그래서 사회적으로 관철되어야 한다는 정언명령적 믿음이나 헤게모니는 아닐까.
이러한 ‘사회속에서 실제 기능하는 과학’의 본질을 밝히고자 하는 학문분야가 넓은 의미의 ‘과학기술과 사회’(STS)의 한 분야로서 과학사회학이다.
과학은 일반적으로 보편적 차원에서 개념화되고 실험되고 있다. 실제 선진국의 구체적인 사회여건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탈맥락화된 지식체계이다. 그러한 여건에서 대부분 과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맥락에 특수한 과학적 실험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여기며 때문에 과학이 사회속에서 그 지배력을 행사하는 과학사회 영역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거나 무시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사회적 맥락성을 무시할 수 있을까.
첫째, 한국사회적 맥락에서 과학적 실험을 하는 것은 진정한 과학적 실험이 아니라 단순한 폭로이며 무의미한 작업인가. 1996년 정수처리제 사건처럼 안정화된 이산화염소를 사용하여 소독효과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은 우리나라 정수장의 물을 시료로 연구하였을 때 가능하다. 또한 수돗물 불소농도가 미국에서 1ppm를 기준으로 할지라도 우리나라에 맞는 수돗물 불소농도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자연수의 불소농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끓여서 먹는 우리의 음식습관, 녹차 등 다양한 불소섭취량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 등은 한국사회적 맥락에서 과학적 실험이 갖는 직접적인 의미라 할 것이다.    
둘째, 이러한 과학의 보편성(탈맥락성)은 쉽게 의존성으로 귀결된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 과학적 지식의 주변부에서 반주변부로 변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의존성이 높다. 과학지식의 권위가 철저히 의존적이다. 과학지식 자체가 아무리 보편적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과학지식을 활용하고자 할 때 그 과학지식이 형성된 선진국의 사회적 맥락과 상이한 우리 사회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과학지식의 사회적 활용은 선진국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이식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문에 맥락성의 차이로 인하여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의존성은 우리나라 독자적인 과학지식생산기반을 허문다. 지식수입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현상이며 선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분야별 격차가 심하여 자체적인 시너지효과를 얻기 힘들며 전통적인 과학지식의 계승발전기회도 무시된다.     
셋째, 우리 사회의 압축적 근대화는 도구적인 과학화를 낳았다. 과학이 국부의 원천으로 부국강병이나 경제성장의 일환으로 도구화되어 있다. 과학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활세계적인 의미부여가 결여되고 상대적으로 경제적 효율성이 높은 첨단과학을 중시하게 되었다.

‘사회의 과학화’ 왜 필요한가

때문에 과학 자체에 대한 연구자는 있으나 과학의 사회적 영향 등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전문평론가나 기자, 시민들의 이해도도 매우 낮다. 특히 일반국민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한 상식이 매우 낮다. 그러한 점에서 “정부와 국민들이 부국강병의 도구로써 과학기술을 바라보게 되고 과학기술의 본질, 실체 그리고 힘을 진지하게 성찰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고 따라서 과학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수준이 현저하게 낮다.”(김영식, 1998)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학사회논쟁이 언론에 의해 심하게 왜곡되거나 사회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흐지부지한 결론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학의 각 분야에 따라 심하게 불균형하게 이루어졌다. 빠르게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제한된 자원을 전략적이고 정책적 우선순위에 따라 선별적으로 과학화에 자원을 집중하였다. 때문에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여 체계발전에 직접 기여하는 과학은 집중지원으로 인하여 선진국 수준에 이르는 경향이 있지만 반면 생활세계에서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지니지만 경제적 가치창출에 직접 기여하지 않는, 생활세계의 과학은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1980년대 후반이래 경제성장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민주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한국 ‘사회의 과학화’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시민단체의 역할과 대항전문가의 양성, 정책결정에서 전문가주의 극복 및 시민참여, 시민 과학교육 등 다양한 과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서 탈근대론, 반성적 근대론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과학과 사회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한 것으로 과학사회학의 중요한 기여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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